며칠전부터 아내가 아팠다. 몸에 열이 있고 힘이 없고 코가 막히는 것이 전형적인 감기 증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병원에 한 번 다녀오라고만 얘기했다. 아내는 참을성이 강해서 왠만큼 아프지 않으면 아프다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가 아프다고 했는데도 나는 무관심했다.
4월 11일, 이날은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었다. 이미 아내에게 1박2일 야유회를 간다는 사실을 통보했었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바로 이날 문제가 터졌다. 하필이면 내가 안면도로 야유회 가고 없는 날아내가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었다. 아내는 이날 몸이 몹시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누구 하나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아는 사람에게 수소문해서 독산동의 희명병원에 입원을 했다. 마땅히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급한 김에 혼자 입원수속을 다 마쳤다. 나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장모님 생신이 다가 온 것을 깨닫고 안부전화를 했다가 장모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들었다.
"자네는 아무리 회사 야유회가 중요하다고 해도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아닌가. 자네 처남이 아침 일찍 울면서 전화와서 난리친 것 아는가. 나도 몸이 아파 꼼짝달짝 못하는데 자네라도 신경 써야할 것 아닌가."
장모님의 그 말씀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야유회를 간 그날 아내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그 즉시 아내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입원할 정도로 몸이 아팠으면 내게 말했어야지. 난 당신이 그렇게 많이 아픈 줄 전혀 몰랐어. 단순 감기인 줄로만 알았어. 장모님께 전화했더니 그런 말씀해주셔서 알게 됐어. 그래 어디가 어떻게 아픈거야? 어서 말해봐."
"됐어.괜히 관심있는 척 하지 말고 야유회나 즐겁게 보내셔. 언제 내가 아프다고 야유회 안 갈 위인이 아니니까."
사실 그랬다. 나는 아내가 큰애를 출산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야유회를 갔었으니까. 1995년도의 일을 근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내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나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어디가 아픈건데? 검사는 해봤어?"
나는 몹시 아내의 병이 궁금해서 재차 물었다.
"간 수치가 높데. 스트레스, 피로가 가중됐나봐. 일주일 이상 입원 진료를 받아야 된데."
"아니! 뭐라고? 단순한 병이 아니네. 내가 그러길래 평소 몸관리 잘하라고 했잖아. 내일 가능한한 일찍 올라갈게."
나는 어떻게든 아내를 위로해야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던 회사 야유회였는데 아내의 일로 계속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아내로부터 바로 전화가 왔다.
"어차피 떠난 야유회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재미나게 놀다와."
아내의 그 말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알았어. 고마워. 잘 놀다 올게."
아내의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몹시 편하게 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의 말대로 야유회 왔으니 즐겁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놀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꼭 내가 여행을 간다거나 하면 무슨 일이 생긴다. 갑자기 누가 아프다던가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신다든가 하는 일이다. 좋은 일이야 겹치면 좋다. 하지만 나쁜 일이 생기면 이도저도 못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상대방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게 된다.
이번 일로 나는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좀더 아내와 아이들과 대화를 자주 갖고 고민을 들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