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0월 9일 월요일 맑음
“여보, 오늘 하루 더 쉬었다 가면 안 돼 ?” 안사람이 마음을 흔든다.
‘왜 아니겠나. 마누라 자식들과 함께 하는 내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나.’ 마음이 꿈틀대며 발걸음을 흔든다. ‘아니다. 미망을 끊어야지’
“안 돼. 밤 수매가 곧 끝날 텐데, 그 전에 밤줍기를 마쳐야지. 그리고 버섯이 나기 시작하니 아침, 저녁으로 따야지. 바쁜 일 마치고 오래 있을 게. 충희, 충정이를 부탁 해” 에리베이터 앞까지 나와서 배웅을 하는 안사람 얼굴이 문이 닫힌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집 떠날 때마다 가슴을 할퀴어 놓는 아쉬움은 언제나 사라질까 ?
모처럼 거름을 싣지 않고, 의자 두 개와 반닫이 하나만 올려놓은 트렁크가 썰렁하다. 고속도로에서 날아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바를 칭칭 동여매고, 그물망까지 덧 씌웠다. 두 번의 실패는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긴 연휴 동안 몸살을 앓던 고속도로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뒤에 실은 물건 때문에 속도도 마음껏 내지 못하고, 수시로 백미러를 살폈다.
지난 번 사고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다.
정산에 도착해서야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창고부터 들렸는데, 발바닥에 뭐가 쩍쩍 늘어붙는다. ‘어허 이 게 뭐야 ?’ 아직 마르지 않은 페인트에 내 발자욱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아침 일찍 방수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이 다녀갔는가 보다. 그럼 줄을 쳐 놓던지, 들어가지 말라고 말을 해 놓던지....
저 쪽에 장모님 발짝도 찍혀 있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거다. 우리 거라고 도장을 찍은 셈이지. 곧 수도 배관을 하시는 분이 도착하셨다.
유천동에 사신다네. 건축회사 사장님이 대전 분이라 대전 분들을 여럿 만난다.
이것 저것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정성껏 공사를 해 주신다. 대전 분들은 다르더라. 믿을 수 있는 분이라 생각되어 순간온수기도 부탁을 드렸다.
마지막 밤줍기에 들어갔다. 이제는 밤나무에 달린 밤들이 다 떨어졌다. 한 번 더 줍기만 하면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고, 내년을 기약하는 거지. 늦밤나무를 찾아다니며 샅샅이 훑는다. 그래도 제법 주을 것이 눈에 띈다.
겨울에 다람쥐나 멧돼지들이 먹을 것 정도는 남겨두어야 하는 데 욕심이 가로 막는다. 벌레 먹은 밤, 쭈그러진 밤, 갈라진 밤, 작은 밤, 검은 점이 찍힌 밤들은 남겨두었지. 참 알뜰하게 주웠다.
점심 때를 맞추어 집으로 들어오니 장모님께서 안 계시다. 내가 밥상을 차리는데 “아이구 허리 아퍼”를 연신 하시며 들어오신다. 굽은 허리가 더 굽으셨다.
“어머니 뭐하셨어요 ?” “들깨 볐지” “쉬어가면서 하셔야죠”
나 바쁘다고 도와드리지 못함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어떡해.
내 코가 석자이니 어쩔 수 없지.
“어머니 나중에 들깨 떨을 때는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럴 새가 있어 ?”
“밤줍기가 끝나면 여유가 있을 테죠” “뭘, 고구마 캐야지, 은행 줍고, 아산 가서 벼 바심해야 하고, 메밀은 또 어떡할려구. 아산 고구마도 캔대매..”
하긴 그렇다. 줄줄이 사탕이네. 그래도 하루는 도와드려야지.
오후에도 밤줍기다. 날씨가 제법 따땄하니 땀이 흐른다.
찬물 한 모금 마시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먼 산을 바라본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들판의 모습은 언제나 평화롭다. 이젠 온 들판이 벼 베는 콤바인 소리로 그득할 테지.
인생이 영원한 것처럼 계획하고, 죽음이 가까운 것처럼 하루를 살라고 했다.
유난히 지루한 날이 있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고통의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인생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언제나 아쉽고, 젊음은 초여름 나무에 물드는 연록색처럼 너무나 짧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고, 남은 날들을 온전하고, 아름답게 보낼 기회는 여전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