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자서전 에피소드 구합니다
1인칭시점
아버지 함자는 시직 으로 대원군에게 참봉 벼슬을 받았다
3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일꾼들을 부리며 쌀 보리 콩 팥 감 밤 수수외에도 잡곡 임산물등 농사를 지으며 소를 닭등을 키우고 한학 서적도 읽었다
큰형님 작은 형님과 힘을 모아 아랫마을에 새집을 지었다
사금 파리를 가지고 놀고 물장구 치고 메뚜기 잡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산에서 나무하기 지게질 하기 농사일 하기도 하며 점점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어갔다
좌익 우익 편갈라 싸우며 정치적 혼란기에 공비가 출몰 하여 문경 한씨네 집에서 일을 하며 지냈다
한씨네 여사님은 매우 친절하였다 그래서 형님과 나는 있는 힘껏 일을 했다
예천이 외가집 이어서 인연이 닿아서 예천사는 아내를 맞이 하였다
아내는 걸어서 하리 여우목 을 지나 마을로 왔다 1950년 5월 21일 결혼식을 올렸다
볼에 연지를 찍고 버선발로 멍석 위에 .. 부러질듯한 상다리ㆍ 주위의 왁자지껄한소리 그리고 일배ㆍㆍㆍ
다음달
6,25사변이 났다
북괴군이 문경을 지나갔으나 마루 아래서 하루 피신 하고 고요리 단산 아래서 보름간 피신 하였다
1사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제주도서
백일 훈련 받고 2사단에 소속되었다
군대에는 도둑도 많았다
소총의 주요 부품은 숨기고 잠들기도 하였다
어떤이는 휴가를 보내달라고 하더니 복귀하여 쇠 벼르는 일을 하였다
대장장이 였나 보다
동네 같이 사는 몇몇도 군에 와서 잠시 보기도 하였다
백마고지 등에서 싸우고 군생활 4년을 하였다
백마고지는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곳이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우리 부대가 산을 향하여 갈 때 포탄이 아군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중대장은 그것을 이유로 한시간 진격을 지체 하였다
산위에 올라갔을때는 동료들이 많이 안보였다
일개 중대분의 식량이 보급되었다
어둠이 찾아오자 공포가 몰려왔다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3명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산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명은 한의사이고 한명은 농부이다
휴가를 왔을때 어머니 아내는 교회에 다니며 무사귀환을 빌었었고 된장독에 된장이 고추장독에 고추장이 없었다
여비를 받아 도리어 된장독에 두고 군복귀 했다
마지막에는 짚차를 타고 휴전선을 순찰 하는 것이 일과 였다
거짓말처럼 포성이 멈추고 곤충소리가 들리고 휴전이 찾아왔다
제대후 소를 키워 거름을 만들어 농사일을 시작 했다
국군참전용사로 7만원씩 받다가 근래 국가 유공자란 문패를 국가보훈처로 부터 받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큰형은 충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째 딸이 최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또 다른 둘째형이 북한에서 실종됐다. 4째아들은 그의 입양아가 될 뻔했다 한국 전쟁 때 난 백마 고지에 참석 m1을 들고 전투를 한 반면에 아들들은 k1 k2 m16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돈도 백마고지 출신인것은 똑같다. 다만 그는 첫아들이 장가들고 국가보훈 대상자가 되었고 나는 참전용사가 되었다 ㅡ 내 생각에는 전쟁의 대가는 잔인합니다. 평화의 대가는 매우 비쌉니다.(값을 매길 수 없음)
정씨네 집의 농자 천하지대본 은 큰 형님 글씨다
박정희 정권때 풀베기가 한창 이었다
마을입구 큰 바위가 있다
풀을베어 큰 바위를 덮었다
큰집에서는 한학을 하고 이장을 하고 바둑을 두고 농사를 지었다
한번은 중국에서 이마을에 먼 친척이 왔다 옆 마을로 갔는데 한학자 비슷한 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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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뒤 공유 목표
오타ㆍ에피소드ㆍ정정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