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22장 11절~ 14절, 제목 : 천국과 예복
샬롬! 축복합니다.
옆 분에게 덕담 한마디 합시다.
오늘 이렇게 했으면 합니다,▶ 기도마다 응답받고, 하는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라고...
다시한번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한번 더 해 봅시다.
"기도마다 응답받고, 하는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예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왜 혼인잔치에 참여 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방을 당했나...
왕은 분명 사 거리에 나가서 누구든지 혼인잔치에 데리고 오라고 해서 종들은 지나 가는 사람들이 악인이든, 선인들이 상관을 하지 않고 다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하였고 그리고 혼인 잔치에 온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석한 손님들을 보러 왔던 왕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에게 가서 친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라고 한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라고...
표준번역성경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여기서 어찌 하여란 말은 왜(why) 무엇 때문에(what)에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그 이유를 물어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대답도 하지 않은 이 사람에 대해서 왕은 이런 조치를 합니다.
13절입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데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3절은 혼인잔치에서 추방을 당한 사람의 상태는 단지 파티에서 추방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혼인잔치는 천국의 비유라는 것을 2절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에서 추방은 곧 지옥이요, 고통이면 저주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혼인잔치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인잔치는 비유적으로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누구나 와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악인이던, 선인이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온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복을 입었나, 안 입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럼 혼인잔치에서 왜 예복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근동 지역에서는 부유층이나 왕실에서 잔치를 배설했을 경우, 초대 손님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선물 중에는 대개 의복을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이나 부유층에서는 항상 잔치 때를 대비하여 많은 옷들을 마련해 놓곤 했습니다.
그리고 의복을 선물로 받은 손님들은 그 옷을 즉석에서 입고 잔치 자리를 빛내주는 것이 하나의 예법이었습니다.
만일 그 선물을 거절하거나, 즉석에서 옷을 입지 않는 경우에 그것은 주인을 크게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본 비유에서 예복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잔치 자리에 초청하시기 위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 드리는 믿음입니다.
교회에 오면 누구나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를 받아 드리는 믿음입니다.
누구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실 때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이나 성경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주여 주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국은 구원을 받음이라고 베드로전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주여, 주여가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께서 주신 대속의 은혜를 받아드리고, 주님 말씀 의존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 원하시는 것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믿음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중요한 것은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잔치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예복이 맘에 안들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목사님, 꼭 직분이 필요합니까?
저는 그냥 성도로서 있겠습니다. 라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결국에는 교회의 구성원으로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합력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는 믿음 보다는 필요의식에 의해서 종교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복을 입어야 할 필요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왕은 예복을 입지 않은 왜 사람에 무엇 때문에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그 이유를 물어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만약에 예복을 입지 않는다면, 그는 주인을 모독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삶의 내용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고 믿음으로 사냐 하는 것입니다.
왕은 혼인잔치에 들어오기 전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들의 지난 삶을 중요하지도 않고, 봐서도 안 되고, 그것을 가지고 정죄를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꼭 보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은혜를 믿는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삶 주님은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천국의 소망 속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고, 그 안에서 살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삶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보고”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혼인잔친 안에 즉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두루마기를 (계22:14절) 빤다고 했고,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봅니다.(딤전4장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또한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13장 5절에서 이렇게 권면도 합니다.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니라"
여기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말씀에서 시험이란 단어는 원어로 페이라조인데 이는 인내하다, 자세히 조사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영어로는 TEST이란 일반적으로 시험하다라고 번역했고 개혁성경에선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어에서 말한대로 훈련하다. 조사하다. 증명하다. 시도하다란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증하라는 말은 원어로 도키마조로 정밀하게 조사하다. 입증하다 정밀하게 조사하다, 가치 있게 여기라는 뜻이 있는데도 있지만 따져 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선 검사하다, 심리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합니다.
개혁성경에선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확증하다는 말은 '확실히 증명하다'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역할 수도 있습니다.
네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조사해 보고, 스스로 따져 보라고.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의 믿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따져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혼인잔치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즉 세상에서 살고는 있지만,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윤리와 도덕적인 모습이 아니라, 믿음의 모습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믿음의 예복이 아닌 혼인잔치에 들어오기 전 상태 즉 교회에 오기 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혼인잔치에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슬피울면 이를 갈면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사는 내가 믿음의 예복을 입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세상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내 자신을 살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찬양 하나 배워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미124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