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한국적인 춤, '승무'에서 시작해 IT기술을 융합한 로봇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무용가가 있다. 경상 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김미숙(59) 교수. 한국무용에 춤추는 로봇을 접목하는 파격을 서슴지 않는다. 문화 융·복합 공연 '춤과 인공지능과의 만남, 아라가야를 꿈꾸다'를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황숙경 편집위원
한국무용수와 로봇의 협무 공연 준비
50년 넘게 한국무용의 길을 걸어온 김미숙 교수가 아이돌가수들의 공연에서나 봄직한 첨단공연 기술을 무대에 선보인다. 천신제를 지내는 고대국가 아라가야의 고분군을 배경으로 한국무용수들과 로봇이 협무를 펼치는 공연이다.
"지금까지 일부 공연에서 부분적으로 실험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춤추는 진짜 로봇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 자신도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김 교수의 '춤과 인공지능과의 만남, 아라가야를 꿈꾸다'는 12월 7일 부산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된다. 영상과 로봇 제어 시스템이 가능해야 하는 무대 여건상 부산을 공연장으로 잡았다. '김미숙의 아시아전통무용단'의 한국춤 시리즈 중 하나로 제작 발표되는 이번 공연에는 '시대의 흐름을 알고, 전통을 지켜나가자'는 무용가로서 그의 생각이 담겨있다.
"제자들에게 '시대를 읽으면서 예술작품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합니다.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무용 전공자들은 미래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춤을 추거나, 춤을 가르치거나, 먹고사는 방편으로 무용을 바라봤지요. 사회변화에 적응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예술가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참많은 세상이잖아요."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경상대 민속무용학과는 국내 최초이면서 국내 유일의 특성화학과다. 무용계에서는 최초로 외국 대학과 연계해 복수학위제도 시행하고 있다. 한국춤과 해외의 다양한 춤들을 비교연구하다 보니 제자들이 춤을 보는 시각이 많이 넓어져서 좋다고 한다.
여인 희로애락 담은 '비연무' 맥 이어
"여섯 살부터 시작한 무용을 여태 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고 말하는 김미숙 교수. 마산 제일유치원에 다닐 때 이필이 선생의 눈에 들어 무용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몇 개월 쉰 것이 무용과 인연을 끊었던 유일한 시기라고 한다.
고성 출신의 황무봉 선생과 부산의 성승민 선생에게 사사한 후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한국 최초의 무용 예능보유자였던 한영숙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승무'와 '비연무' 등 그만의 특화된 춤들을 한 선생으로부터 배웠다. 당시 정리가 덜 돼 있던 '비연무'는 수업시간 외 한 선생의 연습실에서 익혔다.
'비연무'는 산조춤의 하나로, 여인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산조음률에 맞춰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화시켜 우아하게 표현하는 춤. 김 교수는 한 선생 사후 당시 배움을 토대로 '비연무'를 정리해 공연하면서 끊어질 뻔한 '비연무'의 맥을 잇고 있다.
1980년 대학 재학 중에 동아콩쿠르에서 '승무'로 동상을 거머쥐면서주목받는 무용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경상대 부임 전 15년 넘게 부산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한국무용가로 살았다.
그렇다고 무용가의 길이 수월하게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아콩쿠르 수상 한 달 후 미끄러져서 팔을 다쳤다. 유리문에 부딪혔는데, 유리파편 때문에 부상 정도가 심했다. 오른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는 가족들이 말을 안 해줘서 불구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영국에서 수술 받아야 된다고 출국일정을 잡는 바람에 상태를 알게 됐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신경 재건 수술을 받았고,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후유증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보는 사람은 눈치를 못 채도 자신은 오른팔이 무뎌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춤은 참선과 같습니다. 춤추는 순간만큼은 나를 잊어버립니다. 심취해서 공연을 하다 보면 나를 잊어버리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집니다. 춤추는 것 자체가 무한한 힘이 됐어요. '무용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물리치료에 매진했지요."
영남춤 정리 … 아시아 민속춤에 심취
김 교수는 한국무용을 하면서 당연시 여기는 우리 춤의 곡선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알 듯 말 듯한 우리 춤의 매력을 아시아의 다른 나라 춤들과 비교하면서 명확하게 알겠더군요. 우리 춤은 유장한 움직임에서 아름다움을 그려냅니다. 아시아의 민속춤들은 대체로 형태미에 중점을 둡니다.
동작 두세 개를 조합해 하나의 형태를 표현합니다. 우리 춤은 박자를 늘려서 한 동작을 길고 느리게 표현하는 편이지요."
그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무용계는 무대공연 위주의 최승희류 신무용이 인기였고, 대체로 경기류 춤을 추었다고 한다. 한영숙 선생으로부터 배운 춤도 모두 경기류로 진주가 속한 영남 쪽의 춤은 제대로 배우질 못했다. 그래서 1998년 경상대에 부임하면서 영남춤을 정리해서 정립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밀양을 중심으로 지역의 춤을 연구했다.
지역의 춤들을 정리하다 보니 춤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때 마침 아시아 민속춤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맡았다. 아시아 오지를 누비며 접했던 각국의 민속춤에 중독되듯이 빠져들었다.
"민속춤은 구전됩니다. 문헌에 명시돼 전승되는 것이 아니므로 구전되면서 그 나라의 역사와 생활모습, 정서까지 아우르게 되지요. 춤만큼 변질되지 않는 게 없거든요. 사람의 정신세계를 표현합니다."
무용가·학자·문화사절로 1인다역
김 교수는 2007년에 '춤으로 만나는 아시아' 행사를 기획, 아시아 각국의 민속춤을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올해 8~9월 열린 행사에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몽골, 타지키스탄 등 6개국 무용단 8개 팀이 참가해 진주, 거제, 부산, 광주를 돌며 순회공연을 펼칠 정도로 판이 커졌다.
지난 5월에는 '경남청소년문화교류단'을 이끌고 베트남 동나이성을 방문했다.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우리 전통춤을 선보여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등 문화외교부문에서도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춤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술가인 무용가로서의 입장과 교육자인 교수로서의 입장이 늘 갈등을 겪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전통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단과 무대를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 교수는 춤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