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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처음 백악관에 입성할 때 미국인들의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는 “어떤 개가 백악관의 새 식구가 될까”였습니다. 큰딸 말리아의 알러지 때문에 오바마 가족은 한 번도 개를 키운 적이 없었는데 상대 후보인 존 매케인은 반려견만 4마리인 애견가였죠. 어린 두 딸에게 “대선이 끝나면 개를 기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일이 알려진 게 개를 사랑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았다는 분석도 있답니다. 대통령 당선 후에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어떤 반려견을 입양하는 것이 좋을까”를 주제로 한 여론조사까지 벌어졌습니다. 오바마는 “각료 인선보다 두 딸의 반려견을 정하는 게 더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죠.
버락 오바마 대통령 가족과 함께 걷는 애완견 ‘보’
결국 오바마 가족의 반려견은 검은색 포르투갈 워터하운드로 정해졌습니다. 오바마의 딸들은 외할아버지의 별명을 따 강아지의 이름을 ‘보’로 지었답니다. 백악관의 새 식구가 된 보는 나중에 함께 살게 된 같은 품종의 ‘써니’와 함께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인간의 오랜 친구인 개. 정치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역사 속 많은 황제와 왕들, 정상들이 개를 길렀고, 반려견에 얽힌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황제의 개로 가장 잘 알려진 견종은 중국 황실의 개, 사자를 닮은 페키니즈입니다. 최근 DNA 분석 결과 페키니즈는 가장 오랫동안 사육돼온 견종 중 하나라고 합니다. 진시황 때부터 중국 황실에서 길러졌다는 설도 있을 정도니까요. 황실의 일원이 아니면 페키니즈를 기를 수 없었습니다. 페키니즈는 궁 안에서 황족 못지않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죠. 청 말기의 권력자 서태후가 길렀던 페키니즈는 상어지느러미와 마도요새 간, 메추라기 가슴살, 후베이성에서 난 새순으로만 만들어진 잎차, 영양의 젖 같은 귀한 음식들만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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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4년 촬영된 청나라 페키니즈의 사진 2 8세기 당나라 화가 저우팡이 그린 페키니즈를 데리고 노는 여인들 |
청의 몰락과 함께 페키니즈의 운명도 바뀌었습니다. 고귀한 황실의 개였던 페키니즈들은 아편전쟁 동안 영국군에 의해 서양에도 전파됐고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는 당시 영국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진상됐다고 하네요. 빅토리아 여왕은 유명한 애견가였습니다. 왕위 계승자로서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 여왕은 반려견인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파니엘 ‘대쉬’에게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여왕으로 즉위하던 날에도 일기에 “집에 돌아와서 대쉬를 목욕시켰다”고 썼을 정도로 반려견을 사랑했죠.2)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요, 빅토리아 여왕은 평생 여러 개와 조랑말, 앵무새 등을 길렀고 동물학대를 막는 데 열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인기가 많은 포메라니안을 지금처럼 작게 개량한 사람도 바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포메라니안은 영국 왕실이 특히 사랑했던 견종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포메라니안을 길렀어요.
빅토리아 여왕이 길렀던 개들인 대쉬, 네로, 헥터와 앵무새 로리를 그린 그림 <출처: www.victorianweb.org>
재위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애견가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웰시코기를 매우 사랑해서, 즉위 후 60여 년 동안 기른 웰시코기만 해도 30마리가 넘었다고 해요.3)
정치인의 반려견 중 아돌프 히틀러가 길렀던 ‘블론디’를 빼놓을 수 있을까요. 블론디는 1941년 히틀러가 나치 부관으로부터 선물 받은 암컷 셰퍼드입니다. 히틀러가 블론디를 얼마나 아꼈는지, 벙커에서도 침실 안에서 함께 잤을 정도입니다. 블론디는 나치의 프로파간다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히틀러에게 ‘동물 애호가’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데 아주 유용했죠. 히틀러는 셰퍼드의 충성심에 반해 이 견종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 ‘프린츠’라는 이름의 셰퍼드를 키우다가 가난한 형편 때문에 다른 곳에 보냈는데, 프린츠가 탈출해 히틀러에게로 돌아왔기 때문이죠.
블론디는 주인의 몰락과 함께 생을 다했습니다. 1945년 4월29일 동맹인 베니토 무솔리니의 죽음을 전해들은 히틀러는 포로로 사로잡힐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살용 독약 캡슐의 성능을 확인하려고 블론디에게 이 캡슐을 먹였고 블론디는 숨졌습니다. 히틀러도 다음날 아내와 함께 자살했습니다.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가 동물은 사랑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틀러는 놀랍게도 채식주의자였으며 세계 최초로 구체적인 동물학대 금지법을 제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나치가 1933년 통과시킨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조항이 있습니다.4) 동물을 생체실험용으로 이용하는 데도 대폭 제한을 두었고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으면서 말이죠.
현대로 넘어와 볼까요. 러시아의 ‘현대판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알아주는 애견가 중 하나입니다. 푸틴은 측근 세르게이 쇼이그에게 선물받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코니’를 키웠습니다. 코니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총서기장이 키웠던 개의 혈통을 이어받은 ‘족보 있는 개’라고 해요. 러시아 비상사태부에서 수색 및 구조견으로 훈련받기도 했습니다. 코니는 세계 지도자들과 푸틴의 공식 회담장에 여러 차례 따라나서며 언론에 많이 노출됐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2007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메르켈은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린 경험 때문에 개를 무서워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푸틴이 이걸 알면서도 회담장에 코니를 데려간 거죠.
모스크바의 회담장에서 예상치 못하게 코니를 만난 메르켈이 눈에 띄게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푸틴은 “개 때문에 불편하진 않죠? 온순하니 괜찮을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뭐, 어쨌든 기자들을 먹어버리지는 않겠죠”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코니는 메르켈 총리의 발치에 다가가 앉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메르켈 총리는 “푸틴이 개를 데리고 나온 이유를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가진 남성성을 내게 과시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에겐 그것밖에 없거든요.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진 게 없고, 그는 그 약점을 두려워해요”5)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장에 데리고 나온 코니 <출처: (cc) Presidential Press and Information Office at Wikimedia Commons>
외교에 개를 활용한 정치인은 푸틴이 처음이 아닙니다. 19세기 말 유럽을 좌지우지했던 ‘철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종종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만날 때 자신이 기르는 거대한 사냥개 그레이트 데인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비스마르크가 가능한 한 큰 개를 선택하고 그 개를 회담장에 끌고 나간 것이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추론합니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놀고 있는 조지 W 부시의 개 바니
다행히 메르켈에게는 아무 일 없었습니다. 메르켈은 얼마 전 그 사건에 대해 “개가 불편하긴 하지만 개 공포증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의 반려견들은 외교 결례부터 작은 소동까지 온갖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얼마 전인 12월 9일 하누카(유대교 명절)를 맞아 파티가 열렸던 이스라엘 총리관저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개 ‘카이야’가 집권 리쿠드당 의원인 샤렌 하스켈과, 외무차관의 남편이자 변호사인 오르 아론을 물어버렸습니다. 네타냐후는 “물릴 수 있으니 다가가지 말라”고 뒤늦게 경고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습니다. 상처는 크지 않았고 해프닝으로 넘어갔죠.
하지만 정말 큰 사고를 치는 개들도 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전 대통령이 길렀던 핏불 테리어 ‘피트’는 백악관 관계자 등 최소한 5명을 물었답니다. 백악관을 방문했던 프랑스 대사의 바지를 물어뜯는 외교 결례까지 저질렀죠. 백악관 역사상 최고의 애견가 중 하나였던 루즈벨트도 견디기 어려웠는지 피트는 결국 백악관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6)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임 중 키웠던 스코티쉬 테리어 ‘바니’도 여러 차례 말썽을 부렸습니다. 2008년 9월에는 백악관 행사에 참여했던 프로농구팀 보스턴 셀틱스 홍보국장이 바니를 쓰다듬으려다 물렸고요, 그해 11월에도 로이터 통신의 백악관 출입기자가 물렸습니다. 부시 정권 말의 일이라 “바니가 백악관에서 떠나기 싫은가 보다”라는 농담이 나왔습니다.7)
앞서 말했듯 미국 대통령들의 개 사랑은 유별납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시작해서 역대 대통령 중 무려 25명이 개를 길렀죠. 백악관의 개들은 대통령 집무실을 마음껏 드나들며 마스코트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톡톡히 받습니다. 대통령 인기가 바닥이라고 해도 백악관의 개들은 사랑받습니다. 부시의 잇단 실정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두 애견이 숨졌을 때는 전 국민적인 애도 물결이 일어났을 정도입니다.
간혹 반려견 때문에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생깁니다. 2013년 오바마는 매사추세츠의 휴양지로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보를 데려가기 위해 첨단 공군 수송기를 이용했다가 언론의 비난을 샀습니다. 부시는 바니를 안고 거수경례를 하다가 논란을 만든 적도 있고요. 이런 종류의 논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이야기일 겁니다. 루즈벨트는 자신의 반려견인 스코티쉬 테리어 ‘팔라’를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한번은 루즈벨트가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를 방문했다가 팔라가 없어지자 사람들을 보내 개를 찾아오게 했다는 소문이 났는데, 공화당이 이 일을 두고 “개 한 마리 때문에 해군 구축함을 보내가며 예산을 낭비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대선 국면이었던 1944년의 일입니다. 루즈벨트는 전국으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반박합니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저나 제 아내, 제 아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 작은 개 팔라를 비난했습니다. 물론 저나 제 가족은 공격에 대해 화내지 않겠지만 팔라는 그들에게 화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팔라는 스코틀랜드에서 왔죠. 의회 안팎에서 날조된 이야기를 지어내는 공화당원들이 내가 자기를 알류샨에 남겨뒀고 수백만 달러를 써서 다시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팔라의 스코틀랜드 영혼은 매우 분노해 있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악의적 거짓말에는 익숙하지만 제 개를 중상모략하는 말에는 화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8)
나중에 이 연설에는 ‘팔라 연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팔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됐고 루즈벨트는 4선에 성공했죠.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직접 쓴 통댕의 일대기 <출처: amazon.com>
사람보다 더 귀한 개도 있습니다.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기르는 개 ‘통댕’은 왕실이 존경받는 만큼 태국인들에게 거의 존경에 가까운 사랑을 받습니다. 2002년에는 푸미폰 국왕이 통댕의 이야기를 직접 쓴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태국 언론들은 통댕을 나이든 여성을 정중하게 부를 때 쓰는 경칭인 ‘쿤’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최근 이 개를 욕한 한 태국 남성이 왕실모독죄로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 평범한 공장노동자가 소셜미디어에 통댕을 비꼬는 글을 올렸다가 12월 초 체포됐습니다. 그가 올린 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국왕과 왕실을 모독한 혐의로 최고 37년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태국에서 왕이나 왕비뿐 아니라 왕실을 모독한 사람을 처벌하는 악명높은 왕실모독죄가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국왕의 개를 모독했다고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선뜻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일각에서는 태국 군부가 왕실모독죄를 빙자해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9) 통댕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개를 욕했다고 사람을 잡아 가두는 일을 옳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