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대한 오해
1.로마의 지배 아래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이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전파하는 새로운 나라인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가 묻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 옵니까?” (눅17:20)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때와 시기’를 묻는 질문입니다.
일제의 지배 아래 살면서 어떻게든 ‘대한독립’을 염원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예수 천당’은 암울한 시대에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인 인구가 2%도 안 되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50%가 기독교 신도였다고 합니다.
2.당시에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예언대로 천국이 어디에 세워질 것인가? 어떻게 그 나라가 운영될 것인가? 그런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바리새인 같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아서 이 땅에 어떤 성전(?)을 짓고 무슨 단체를 조직하고 설립하고 운동을 하고 그런데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쌓은 바벨탑을 자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3.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사람들은 ‘때와 시기’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예수님은 ‘형식과 장소’에 대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4.세상 나라 통치자들은 선전과 홍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외적이고 세속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내적이고 영적입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과 천당
1.절에 가면 ‘명부전’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곳입니다. 유교는 ‘제사’를 열심히 드립니다. 죽어서 귀신이 된 조상들이 와서 먹고 간다는 것이죠. 무당들도 죽은 영혼을 달래는 굿을 합니다. 우리 민족은 ‘내세 지향적인 신앙’이 유난히 강한 민족입니다. 현실의 삶이 가진자의 횡포와 늑탈로 인해 가난과 궁핍과 억울함이 사무쳐 한이 된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그래서 현실 도피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민족성이 생겼다고 봅니다.
2.그런 배경을 가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 한국적인 ‘내세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이해하기 힘든 이스라엘의 속죄신앙을 설명하기보다 그냥 한국식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는 것이 훨씬 잘 먹혔던 것입니다. 지금도 기독교인들에게 “왜 예수를 믿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천국 가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3.내세 신앙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내세 신앙이 지나치게 현실 도피적이거나 현실 부정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클수록 현실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내세 신앙에 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4.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천국(天國)’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國)인데 ‘천당(天堂)’으로 축소 시켜 ‘고통과 슬픔이 없는 집(堂)’인 장소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죽어야 갈 수 있는 사후 세계’이며,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는 어떤 장소라고 생각합니다.ⓒ최용우
첫댓글 아 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