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내내 아랫목에서 이불 둘둘 말고 누워 하릴 없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모두의 마음에 간절할 때. 이럴 때면 어릴 적 할머니가 내어주시던 군것질거리가 더더욱 간절히 떠오른다. 도란도란 옛 이야기에 맞춰 화롯불에
구워먹던 군밤이며 군고구마, 지난 추석 때 먹고 남은 인절미를 참기름 두르고 프라이팬에 구워내 먹는 것도 또 다른
별미였다. 허나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간식거리는 바로 광이나 다락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들을 위해 한 두어 개만 몰래 내어 놓던 곶감이다. 곶감을 한 입에 넣고 살짝 깨물면 혀 밑에서 사르르. 마음 또한
달콤한 곶감처럼 감미로워진다. 기나긴 겨울 밤을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곶감은 마치 머리맡에 걸어두었던 커다란 양
말에 내가 소원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들어있을 때처럼 설레는 기분을 선사한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반짝반짝 트리
대신 입 안에 달콤한 불 밝히는 상주의 곶감을 맛보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최대(最大)의 곶감마을] 남장동 곶감마을에 부는 오렌지 물결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곶감마을. 곶감의 도시 상주에서도 남장마을은 첫손에 꼽히는 곶감마을이다
곶감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떠오르는 곳, 경상북도 상주다. 그러나 무턱대고 생감을 한 입 베어 물었다가는 이내 그
떫은 맛에 기겁한다. 상주의 감은 타닌 함량이 많고 물기가 적어 곶감으로 만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
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이면 잘 익은 감을 골라 따, 감 꼭지는 그대로 남겨둔 채 껍질만 얇게 벗겨 서늘한 곳에 줄줄이
매달아 50여 일을 말리면 말캉말캉 달콤한 반시가 된다. 거기서 20여 일을 더 말리면, 비로소 하얀 포도당 가루가 설
탕처럼 뒤덮인 상주표 곶감이 완성된다. 마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떫디 떫은 첫사랑처럼 그렇게 상주의 생감은 맛이
없다. 그러나 적당한 바람과 알싸한 겨울을 겪으며 옹골차게 여물어 농익은 사랑의 결정체로 승화하다. 그리고 그렇
게 영근만큼 그 맛이 달디 달다.
남장마을에 가면 마을 곳곳에서 달큰하게 퍼지는 감 향기와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단풍이 하나 둘 붉게 물들어 갈 즈음, 상주의 곶감들도 오렌지빛으로 익는다. 그리고 이내 상주 남장동 곶감마을에는
빠알간 감들이 줄줄이 처마며 창고며 매달 곳만 있으면 어디든 매달려 장관을 연출한다. 남장리 곶감마을의 전체 180
여호 중에서 80여 농가가 곶감을 생산할 정도로 상주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최대의 곶감마을이다. 길가며 들판이며 산
자락 모두 눈길 닿는 곳엔 감나무인데다, 마을의 가로수마저 감나무라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터. 한 편 올해 말린 건시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건 12월 중순 이후에나 가능하다. 옷깃 여미게 하는 추운 북풍 아
래 오히려 속살 드러낸 채 맞닥뜨리니, 쫀득쫀득한 인생의 단맛을 비로소 느끼게 해주는 곶감. 그렇게 곶감은 어쩐지 우
리네 삶과 사랑과 닮아 있다.
[최고(最古)의 사찰] 늦가을 정취가 수북이 쌓인 고찰, 남장사
절집 담벼락을 기웃대는 단풍. 늦가을 남장사에 가면 서정적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남장마을에서 위쪽으로 조금만 더 오르면 상주 최고의 고찰 남장사를 만날 수 있다. 신라 흥덕왕 7년에 창건된 남장사
에는 불교 예술의 걸작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보물 990호인 철불 좌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 후불탱화인
보광전 목각탱을 비롯해 용머리 기둥, 까치발 다리의 모습인 지방문화재자료 442호인 일주문까지, 남장사는 불교 예술
품으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북팔경 가운데 하나로 극락보전을 비롯해 영산전, 보광전, 근륜전, 일주문 등이 현존하는 남장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진입로에는 바알갛게 물든 단풍과 수북이 쌓인 낙엽 등이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고요한 숲길에 마음을 뺏기기 십상이다. 일주문 가기 전 만나게 되는 석장승도 눈길
을 끈다. 남장마을의 수호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석장승은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과 삐뚤어진 주먹코, 썩소(?)를 날리는
듯한 입 모양…. 가만 들여다보니 어린시절 말썽꾸러기 동네 친구의 얼굴과도 닮아있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묻
어나온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건 고즈넉한 산 아래 돌담을 쌓아올린 채 정갈한 얼굴로 사람
들을 맞이하는 남장사 그 자체다. 절집 구석구석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그야말로
사색의 여정으로 안성맞춤이다.
[최고(最高)의 경승] 하늘이 만든 절경, 푸른 물결 굽어보는 경천대
푸른 하늘에 비친 물결과 황금빛 모래사장이 빚어내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경천전망대
상주의 최고(最古) 사찰이라는 남장사를 들렀다면 이 곳 최고(最高)의 경승이라는 경천대를 빼 놓을 수 없다. 낙동강
1300리 물길 중에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경천대. 낙동강 따라 유유히 흘러 가면 온유한 어머니의 품
같던 낙동강이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낙동강의 비경과 만나게 된다. 바로 상주의 경천대에 올라서면 만나게 되는 이
풍경은 하늘에 닿도록 솟아오른 절벽과 그 절벽 위에 우거진 소나무숲, 그리고 그 건너편에 펼쳐진 금빛 모래사장 가
운데로 휘몰아치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이 스스로 만들어낸 경치라 하여 자천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채득기가 ‘대
명천지 숭정일월’ 이란 글귀를 새긴 뒤부터 이 곳은 경천대라 불리고 있다.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장대함을 보여주는 경천대는 이에 어울리는 갖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 위, 왼쪽 : 굽이쳐 흐르는 경천대의 강물 * 위, 오른쪽 : 충절과 북벌의 의지 새겨진 무우정 * 아래, 왼쪽 :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을 먹는 청설모 * 아래, 오른쪽 : 드라마 상도 세트장
임진왜란 때 명장으로 손꼽히는 정기룡 장군이 젊은 시절 이 곳에서 말과 함께 수련을 하고, 바위를 깎아 말먹이통을
만들었다거나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고국
으로 돌아와 모든 관직을 고사한 채 은거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경천대는 무우정이란 정자가 한 채 바람을 맞
으며 서있는데, 바로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이 곳에 은거하며 충절과 북벌의 의지를 되새기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자에 오르면 낙동강 너머의 광경까지 한 눈에 펼쳐지니, 새해 더 큰 목표를 세우거나 의지를 다지고 싶을 때 오를
만 하다. 경천대관광지에는 무우정 외에도 경천대의 최고봉인 천주봉전망대, 즉 경천전망대가 있어 낙동강과 용바위
그리고 회상들과 견지산의 활공장이 장관을 이루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길이 40m의 출렁다리를 건너면 만
날 수 있는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최초(最初)의 자전거박물관] 두 바퀴로 떠나는 녹색여행, 자전거박물관
자전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전거박물관. 전시되어 있는 자전거를 통해 자전거역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난생 처음 타던 자전거의 두근거림, 연인의 허리를 수줍게 잡은 채 타던 자전거의 설렘, 울창한 숲속을 신나게 내달
리던 자전거의 상쾌함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상주는 그야말로 그 시절의 향수를 선물한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
한상주 자전거박물관이 들어서 있기 때문. 세계의 초기 자전거와 이색 자전거, 기능성 자전거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이
곳에서는 1810년 칼 바론 폰 드라이스가 발명한 독일의 자전거를 비롯하여 클래식하고 독특한 모양의 자전거와 만
날 수 있다. 또한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니 ‘따르릉 따르릉’ 벨소리를 울리며 남장마을의 오렌지빛 물결 속으로 페
달을 밟아
보자. 옷깃 여미게 하는 추운 북풍 앞에 오히려 몸을 내맡긴 채 달리다 보면, 살을 에는 바람에 속살 드러낸 채 매달린
감들을 볼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곶감 말리던 할머니에게서 쫀득쫀득한 곶감 하나와 그보다 더욱 달콤한 인심을 맛
볼
수도 있을 것이다.
TIP
◎ 남장마을 가는 방법
* 중부내륙고속국도(김천-상주)-상주나들목-25번국도 상주방향-상주시 남장동- 남장교 - 남장마을- 남장사 * 충주- 3번국도- 문경-3번국도-상주- 25번국도- 남장교- 남장마을 -남장사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U 투어정보팀 손은덕 취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