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첨단무기 尖端武器
마당 한쪽에는 큰 살구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연 분홍빛 꽃들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피어있다.
살구나무 아래 널찍한 평상 두 개가 자리하고 있다.
인상이 부드러운 아주머니 한 분이 두 평 남짓한 정지(정주간, 鼎廚間)에서 나오며, 이중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향기에게 벌써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지에서 무언가 먹거리를 준비하다가 아궁이 불을 다른 중년 아낙네에게 인계시키고 나오는 모양새다.
정주간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자 일행들 모두 허기 虛飢를 느낀다.
점심시간 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이 중부와 한준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한 배고픔을 느낀다.
잠시 후, 평상의 식탁 위에는 푹 삶은 꿩 두 마리와 커다란 장 닭 한 마리가 먹음직스레 차려졌다.
아주머니는 이중부와 한준을 보며
“촌 村이라 상차림이 변변치 않으나 많이들 자시게나” 한다.
아주머니는 어제 석늑이 사냥해 온 꿩 두 마리가 인원수에 비해 적을 것 같아, 키우던 큰 장 닭을 한 마리 더 잡아 요리 한 것이다.
한준이 “아닙니다. 푸짐한데요. 잘 먹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다.
한동안 모두를 먹는 데 열심이다.
이중부와 한준도 정신없이 꿩고기를 뜯는다.
밥도 고봉 高捧밥으로 한 그릇씩 뚝딱한다.
주식 主食인 돌피와 조, 수수로 된 밥을 먹다가, 오랜만에 흰 쌀밥을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배가 부르니 그제야 미안스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다.
할머니가 쑥떡을 채반에 담아 내어놓는다.
향기는 녹차를 끓어 내온다.
직접 한 잔씩 찻잔에 따르며,
“보름 전에 찻잎을 따서, 직접 덖어 만든 우전차 雨前茶니 맛들 보세요” 입가에 이쁜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권한다.
그러자 석늑이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지른다.
“향기야! 너는 내가 햇차 맛을 좀 보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 했는데, 뭐~ 아직 숙성이 덜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등 계속 거절만 하더니 오늘 웬일이냐?”
향기의 귓불이 붉어지더니,
“아저씨~~ 오해 마세요, 아홉 번을 덖고 말려야, 제대로 숙성이 되고 본연 本然의 제맛이 나는데, 그 전에 자꾸 채근하시니 그렇죠. 그저께야 제대로 숙성된 것 같아 이제 내어 왔잖아요” 하면서 석늑을 흘겨본다.
석늑은 이중부와 한준을 번갈아 보더니,
“험~ 험!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찻잔을 들고 건너 평상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러자 향기는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앞으로 쭉 내밀더니,
“그럼, 아저씨 여기 햇차 한잔 더 올릴게요”한다. 그러자 석늑은 조금은 화가 풀린 것처럼
“됐고, 햇 차 맛을 봤으면 됐지!” 하더니, 향기를 보고 말투를 은근히 부드럽게 바꾸어,
“차 대신 송근주 松根酒나 한 잔 주거라”며 파란 눈동자의 왼 눈을 찡끗한다.
“송근주는 아저씨가 다 마시고 이제 한 병밖에 없어요, 대신 오늘만큼은 백화주를 한 잔 드릴게요”
“으음, 그래…. 할 수 없지, 백화주 百花酒도 좋지, 한 잔 줘봐”라며 못 이긴 척 선선히 주종 酒種에 대하여 타협한다.
이중부는 뜨거운 찻사발을 들고 있자니 살구꽃 한 잎이 찻잔 속으로 살포시 떨어진다. 차향이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그때 십칠 선생이 창고 안에서 날카로운 창날을 두 개 들고나온다.
그러더니 한준과 이중부를 보고
“자네들 창을 한번 보자” 한다.
한준과 이중부는 대문 밖의 나귀 안장에 꿰놓았던 창을 각자 들고 온다.
그런데 모양만 창의 모양이지, 실제 창다운 날카로움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창날이 청동 靑銅제로 만든 오래된 날이라, 군데군데 푸른 녹까지 끼어있다.
청동도 최근에 제조한 것이 아니라 제법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이중부는 낡은 창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
중부는 무술을 배우면서 진작부터 창을 갖고 싶었으나, 아이에게 누가 창을 줄 것인가. 위험하기도 하고 값이 제법 나간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실은 지금의 이 청동 창날은 지난 초겨울 산동성에서 출발할 때, 모든 사람이 떠난 무주공산 無主空山인 마을의 관아 官牙를 지날 때, 텅 빈 무기고 武器庫를 보았다.
혹시나 하면서 들어가 보았다. 그때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흙먼지를 뒤집어선 오래된 녹슨 창날 2개를 발견하고, 이를 주워서 봉대 棒臺에 끼워 한 개는 한준에게 주고, 한 개는 본인이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
십칠 선생은 소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이를 알아보고 새 창날을 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창을 받아 창날을 교체하려니 창 자루마저 짧고 낡았다.
십칠 선생은 석늑을 보고
“자네 지난 겨울에 물푸레 나무 창 자루 몇 개 준비해 놓았지?”
물으니, 석늑은 얼른 일어나 “네” 하더니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긴 막대기를 4개 갖고 들어온다.
십칠선생의 집 옆에 또 다른, 집이나 헛간이 있는 모양이다.
길이가 한길 조금 넘는다. 6자 가량 된다.
창의 길이는 보통 1장 丈(10자) 이상이나, 소년들의 신장 身長을 고려하여 짧은 걸 골라 온 것으로 보인다.
소년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길이다.
단풍나무와 물푸레 나무는 곧고 가볍고 인장력이 뛰어나, 창 자루로는 최고의 재료로 알려져 있다.
석늑은 향기가 가져온 백화주를 한잔 ‘쭉~’ 들이키더니, 익숙한 솜씨로 물푸레 나무의 말구 末口를 낫으로 다듬어, 단번에 창날과 결합해 새 창을 두 자루 뚝딱 만든다.
새 창은 청동 날이 아니라 철제 鐵製로 만들어진 예리한 철날 이다.
햇살을 받자 창날이 번쩍번쩍 푸른빛이 난다.
첨단무기인 철창이다.
철제는 청동에 비해 무게는 반으로 가볍고, 단단하기로는 청동제의 다섯 배 이상으로 야무져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격도 엄청 고가 高價다.
먼 후대에는 청동이 철보다 훨씬 비싸지만, 당시 첨단소재인 철은 청동제와 비교해 10배 이상 고가 高價다.
철을 가공하려면 청동기에 비해 높은 고온 高溫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시에는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재료 材料였다.
당연히 고가 高價로 거래된다.
그것이 신무기 新武器의 몸값이다.
첨단무기 尖端武器에 대한 예우다.
첨단 尖端이란
어원 語原도 창 槍날의 발달사 發達史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선사시대의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창은 화약 병기가 등장한 이후에는 그 용도가 격감 激減했지만,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무기라 할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창은 긴 나무 자루의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불에 구워서, 돌에 갈아 단단하게 강화 强化시킨 것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나무 자루 끝에 짐승의 뿔이나 뼈, 돌로 만든 날을 달기 시작했으며, 신석기시대에는 깬돌과 간 돌로 만든 더욱 발전된 형태의 석창 石槍이 등장한다.
사냥 도구가 아닌 전투용 창은 청동기시대부터 전장 戰場에서 주요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각 시대의 전투방식에서 필요한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창이 만들어졌고, 같은 창이라도 시대에 따라, 용도 면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창의 발달사는 목창(木槍) 죽창(竹槍) 석창(石槍) 청동제창(靑銅製槍) 철제창(鐵製槍)의 순으로 발달 되었다.
철제 창이 개발된 후로는 창의 모양도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단순했던 일자형 단창에서 장창으로 그리고 과 戈, 삼지창, 방천화극 등 여러 가지의 창들이 시대순에 따라 등장한다.
철제창 중에도 선철과 연철의 혼합 비율에 따라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날 끝부분이 더욱더 날카롭고 단단하면서도 가볍게 발전해왔다.
그래서 첨단 尖端(끝이 날카롭게 뾰족하다)이란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창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무기이자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한, 재래무기 중 하나로서, 그 종류도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화약이 발명되고 총이 나오기 전까진 최고의 무기로써 늘 무사나 병사들의 필수품이었다.
일촌일강 一寸一强이란 말도 있다.
창의 길이가 한 치가 길면 그만큼 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이는 창의 위력 威力을 함축 표현한 말이다.
특히, 기마전 騎馬戰에선 대부분이 창술로 승부한다.
훗날, 나관중의 삼국지 三國志 연의에 등장하는 여포의 ‘방천화극’이니 관우의 ‘청룡 언월도’니 장비의 ‘장팔사모’라 하는 무기들은 모두 허구 虛構다.
특히, 관우가 사용하였다는 ‘청룡 언월도’나 여포의 ‘방천화극’이라는 무기들은 후한 後漢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무기다.
7백 년 후, 송 宋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무기다.
송나라 때, 시중 市中에 유행했던 연극에 등장했던 무기들이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 위맹을 떨치던 가공 可恐할 무기로 둔갑하여 등장하였던 것이다.
장수들 간에 일대일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일기토 一騎討도 상당 相當 부분은 없었던 일들이다.
당시의 무기로는 대부분이 일반적인 일자형 장창 槍이였다.
신체가 크고 힘이 센 자가 더 굵고, 더 긴 창을 사용하였고, 창의 길이가 긴 만큼 그 위력이 배가 倍加 되니, 더 유리한 것은 자명 自明한 사실이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장창 長槍으로 승부를 보았다.
그러니 삼국지의 주요 무장 武將들은 대부분 덩치가 큰 동이족 출신이다.
유명한 무장 武將들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산동성 아니면, 황하 이북 출신이 주류 主流를 이룬다.
또, 그들은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애향심 愛鄕心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결투 전에 자신을 소개할 때 항시,
“연 燕의 장비”니, “상산 常山의 자룡”이니... 하면서, 자신의 출신 出身 지역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 뜻은,
‘나의 고향은 조상 대대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며, 나 역시 무용이 뛰어난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일종의 종족 과시욕 種族 誇示慾이며, 상대에 대한 으름장이다.
뛰어난 용력 勇力 만큼이나, 입김도 드센 자들이다.
대다수가 흉노의 후예인 선비족 아니면, 부여의 예, 맥 족 출신이다.
관중이나 중원지역 출신 즉, 하화족들의 본향 本鄕 출신은 몇 명 되질 않는다.
소설 속의 영웅호걸이 등장하며 먼저, 키가 칠척장신, 팔척장신이니, 허리둘레가 얼마나 되냐부터 시작한다. 즉, 큰 덩치를 우선적 優先的으로 소개하고 있다.
시합 전, 씨름 선수나 격투기선수 소개와 유사하다.
원시적 原始的인 무기를 사용하려면 신체조건 身體條件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레 상기 想起시켜주는 일례 一例다.
다음 순서로는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무기의 명칭과 크기. 무게를 알려준다.
용력 勇力이나 무위 武威가 뛰어난 인물일수록 더 크고, 더 무거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문가지 不問可知다.
더 길고 중량이 무거운 무기일수록 그 위력은 배가 되고, 따라서 그만큼 상대에게는 더 크게 위협적으로 작용한다.
큰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서면 상대방의 적장이나 군사들은 시각적으로 이미 위축되어 버린다.
士氣 사기가 꺽어 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아군들은 의기 충천 意氣衝天한다.
전시효과 展示效果가 곧바로 나타난다.
이를 보면, 신체가 왜소한 남방 출신 하화족은 상대적으로 동이족의 큰 덩치가 선망 羨望의 대상 對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장 武將들이 창 槍이란 단일한 무기로 승부를 겨루자니 내용이 단순해진다. 그래서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갖가지 이상한 무기들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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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첨단 패션과는 다르군요. ㅎㅎㅎ
같은 금속이라 하더라도 청동기와 철기는 완전 새로운 기술에 의해 생산된 무기라 봅니다.
청동기와 철기에 대한 구분을 잘 정리해 주셔 신뢰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