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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당하셨습니다
정유제
“이벤트회사 ‘결혼만들기’ 대표 황윤도(46) 군과 대한민국 여성단체총연합회 총무간사 박성희(38) 양이 오는 25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황윤도 군과 박성희 양의 결혼식은 지난해 12월 24일 도로선 씨와 조지미 씨의 결혼식 이후 꼭 1년 만의 일이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략) 한편 서울경찰청은 이날 예식장 주변의 교통 혼잡과 각종 상황 발생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기로 하는 등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지원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톱으로 장식한 보기 드문 뉴스다. 잘해야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뉴스 중의 뉴스’였다. 기억도 아련한 과거시절에야 이 정도는 알림판 한 모서리를 겨우 차지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결혼할 당사자인 두 사람의 대형사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터뷰며 여성단체총연합회의 결혼허락검증평가서, 각자의 성장과정, 연애후일담 등 결혼성공작전 지침서로 삼아도 될 만큼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으로 전 지면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장식해 놓고 있었다. 박차만 씨는 오랜만에 보는 신문의 화려한 지면을 대하자 반가운 마음은 고사하고 부러움과 시기, 질투심이 범벅된 혼란스러움에서 한동안 벗어나지를 못했다. 넓디넓은 바다가 좁다고 잔등이를 잔뜩 구부린 채 살아가는 새우 마냥, 상처 입은 마음의 잔등머리를 더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스스로 드러내버린 셈이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나이일지나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또래의 사람들이 매번 느꼈을 법한 ‘노총각 만성 갑갑증’이 도진 것이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벌써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하지만 괜스레 초조감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가족들을 포함한 주위의 곱지 않은 따가운 눈총이 진절머리 나게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은 더했다. 말없는 다중의 은근한 심리적 압박이 학창시절 몰래 피우곤 했던 담배 한 개비가 책갈피 속에서 발견돼 가족들로부터 경멸에 가까운 질시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따가운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시비를 걸기만 하면 십중팔구는 폭발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말조차 건네는 사람이 없다. 남자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그것도 오랜 옛날에 잊혀져 이제는 그 뜻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말이 되어버린 무시무시한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짓이 심한 여자에게 감히 아무도 말 걸기를 하지 않았다는 속설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박차만 씨는 오늘 하루 일과도 잡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속이 거북하다는 핑계로 아침밥을 거른 채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발걸음은 천근만근 모래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치밀어 오르는 부화를 혼자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박차만 씨가 막 사무실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자칭 인생선배들의 수많은 눈들이 일시에 쏠렸다. 엉겁결에 구곡폭포수 물줄기 아래로 빨려든 기분이었다. 세차게 퍼부어지는 물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할 것만 같아 박차만 씨는 사무실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으려다 말고 서둘러 밖으로 나와 버렸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내몰린 것이 아니라 대나무 통 속 같은 사무실 안의 팽팽한 분위기에 짐짓 놀라 스스로 뛰쳐나온 것이 더 뜨악했다.
사무실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온 박차만 씨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조다방’ 이라고 이름 붙인 커피자판기가 놓인 휴게실 겸 흡연실로 갔다. 그곳에는 그보다 먼저 사무실을 빠져 나온 노총각들이 날품을 팔려고 새벽시장에 몰려든 사람들 마냥 서로 얼굴을 외면한 채 엉거주춤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보나마나 생각했던 대로 술렁거렸던 모양이다. 아침 신문 기사를 화제로 삼아 삼삼오오 모여 결혼한 이는 승자의 득의양양한 폼을 잔뜩 재며 인생 선배랍시고 키득거리는 반면 노총각들은 말없이 책상에 코를 박고 외면하거나 아예 자리를 피해버린 것이다.
순간 박차만 씨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측은해 보이는 그들 속에 끼여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불편할 것 같아 그곳에서도 더 이상 머무르지를 못하고 어눌한 걸음으로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 창문가로 다가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빈속이 뒤집히기라도 하듯 메슥거렸다. 담배를 피운 지도 꽤 오래되었건만 기분이 언짢을 때마다 이따금씩 느끼는 거북함이었다. 술꾼들이 때로는 딱 한잔 들이킨 첫술에 취한다는 경우도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느물느물 끼쳐왔다.
먼발치 아래로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모두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이 종종걸음을 치며 내달리는 ‘빨리주의’ 습성에 길들여진 이 시대의 군상들이다. 박차만 씨는 한동안 바깥풍경을 내려다보다가 전신이 기우뚱하며 넘어질 뻔한 아찔한 현기증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자기 20층 건물이 거꾸로 돌아섰다. 박차만 씨는 건물 하중과 엄습하는 군상들의 발길질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몸이 움츠러들고 목덜미까지 뻐근한 통증이 파고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다리는 힘을 잃고 후들거렸다. 나이 마흔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누군들 주위의 눈총을 받아가며 박해 아닌 박해 속에서 살기를 바라겠는가? 모두 저 나름대로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자기만의 개성도 있는 것인데……. 그런 와중에도 박차만 씨는 자조 섞인 넋두리를 터트렸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매 맞는 아내가 늘어나면서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그로 인해 가출을 하거나 이혼하는 숫자가 한 해만 줄잡아도 10만 쌍 이상 된다는 통계자료가 연일 발표되고 있는 삭막한 시대에 여자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40~50년 전에 태어난 이 땅의 남자들이 실질적인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 여파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었다. 결혼적령기의 남자들이 혼기를 놓치거나 통계상 아예 배우자를 갖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설령 운이 좋아 결혼을 했다손 치더라도 아내의 의지에 따른 이혼율이 천정부지로 높아져 이내 홀아비 신세로 전락하는 숫자 또한 혼인율에 근접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부모의 이혼으로 내팽개쳐진 아이들은 처음부터 외면당하고 버려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2세들의 새로운 수난도 잘려나간 뱀 꼬리 자라듯이 빠르게 시작됐다. 이혼한 부모들 대부분이 아이는 서로 맡지 않으려고 싸움을 벌이는 통에 고아원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까지 고아원에서 다니고 중학교에 진학한 14살 된 여학생 하나가 10여 년 만에 수소문해서 알게 된 어머니를 찾아 제주도까지 갖다가 끝까지 만나주지 않은 모진 여자를 향해 ‘그래도 내 어머니이기에 용서한다’는 유서를 써놓고 여관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혼을 앞두고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면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헤어진 어른들의 약속도 그 날로 끝나버리기 일쑤고, 그렇게 해서 내팽개쳐진 아이들은 그리움에 지쳐 그림자처럼 문 앞을 지키다가 쓰러져 잠들곤 한다는 말은 벌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정신질환 증세를 일으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는 일 또한 널리 퍼져 있었다. 부모들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은 이 세상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끝내 찾아주지 않는 부모를 향해 ‘나쁜 놈, 나쁜 년’이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고 퍼부으며 저주스런 말까지 거침없이 해대는 것이었다. 기다림이 깊을수록 부모들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의 거칠기는 더했다. 부모에 대한 반감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면서 자학의 정도도 심해지고 타락의 길로 거침없이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단체총연합회에서 이러한 사태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존재하면서 영향력 있는, 이 시대 가장 큰 사회단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여성단체총연합회가 행동을 자제하고 있기에는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가 도를 넘어 있었다. 뿌리 채 뽑힌 가치관은 삭막한 사막 위에 널브러져 있는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이 같은 현실을 정부에서도 어찌할 수가 없어 손을 놓은 채 여성단체총연합회의 눈치만 살피는 중이었다. 물론 뜻 있는 인사들이 나서서 무너진 가치관을 바로 세우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진 폭풍우 속에서 한번 터지기 시작한 못 둑을 맨손으로 막을 수는 없듯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터져 나오는 이혼과 고아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라님도 못하는 일’을 개인이나 일부 사회단체에서 도저히 손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단체총연합회라면 문제는 달랐다. 그래서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 여성단체총연합회가 나서야 한다는 성명서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정부에서도 은근히 여성단체총연합회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단체총연합회가 나서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성단체총연합회가 해왔던 일을 보더라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박차만 씨는 가위눌린 묵직한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엉거주춤 사무실로 들어갔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듯했다. 덫인 줄 알면서도 찾아드는 호랑이 굴속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소리가 온 사무실을 뒤흔들어 놓았다. 박차만 씨는 반사적으로 화들짝 놀라 책상에 머리를 박고 숨을 죽인 채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누군가가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단 한번 울린 전화기를 집어든 이는 역시나 사무실에서 막내 격인 천사였다. 천사는 성이 천 씨인 탓도 있었지만, 입사할 때부터 마음 씀씀이가 천사처럼 아름다워서 붙여진 그녀의 별명이었다. 보통의 여성들과는 달라 보였던 천사가 집어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듣고서야 박차만 씨는 고개를 들었다. 천사는 특유의 백만 불짜리 미소를 띠며 눈을 찡긋했다. 박차만 씨보다 한참 아래 사람인 천사였지만 마음은 몇 갑절 넓고, 크고, 깊어 보이는 일명 잘 나가는 여직원이었다. 아침부터 시무룩해 있는 박차만 씨를 위로하려는 눈짓임이 분명했다. 박차만 씨는 천사의 눈짓을 외면하려다가 순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싶어 어설픈 웃음으로 응대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열꽃이 피어올라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인지 출근하는 순간 느꼈던 사무실의 어색하고도 당혹스러웠던 분위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모두 자기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박차만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닷속 깊은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것처럼 어지러운 마음의 끈끈이로부터 조금은 놓여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변의 입방아가 아니라 그때까지도 정리되지 않고 있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혼돈이었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좀체 털어 버릴 수가 없었다. 황폐한 가슴에 똬리를 틀고 앉아 무시로 솟구치는 서러움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는 우선 남자들의 지나쳤던 욕심이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이제 비록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떠도는, 여성단체총연합회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혼수문제를 시비하다 끝내 부인을 흉기로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뜨린 한 의사의 추태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떠들썩했던 것이다. 그 의사는 단지 결혼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맞선을 보고 결혼한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다가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다며 처가에서 마련해준 돈으로 개인병원을 사들여 개업하는 날 사소한 말꼬리를 물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또 부인에게 쇠망치를 휘둘러 기절시킨 일이었다. 그 의사는 결국 그 자리에 모였던 수많은 하객들로부터 제압당해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지 못한 부인의 고소는 물론 자기가 낳은 자식들로부터 신고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혼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가는 직행열차,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남자 배우자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조연일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오늘부터 단결하여 결혼을 거부한다.”
여성단체총연합회로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상초유로 민간단체가 발의한 긴급조치를 발동시킨 것이다. 이 긴급조치로 발동된 결혼거부선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었다. 외신에서도 전무후무할 일이라며 서울발로 연일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세계 각국의 여성단체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려의 표시를 하면서도 즉각적인 논평은 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 남녀전쟁으로 비화될지도 모를 앞으로의 사태를 점치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몇몇 남성단체들로부터 반박성명이 나오고 정부에 호소문을 보내 즉각적인 철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오뉴월 서릿발 같은 여성단체총연합회의 기세에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정부에서는 여성단체총연합회를 포함한 일부 사회단체들의 참여를 유도해서 중재에 나서는 시늉을 하며 수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수위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선에서 사태의 일단을 무마할 수밖에 없었다. 갈기를 세웠던 여성단체총연합회가 공세를 한 단계 낮춰, 결혼거부선언을 철회하며 결혼을 보장할 조건으로 검증해야 할 항목 8가지를 구체화해서 발표했다.
“남성 배우자와 여성 배우자가 서로 존경하고 예의를 갖추어 완전한 인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단될 때는 종족보존과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해 여성단체총연합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결혼할 수 있다. 심사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생활 도중 여성 배우자의 의사에 따라 헤어질 수 있으며 남성 배우자의 잘못으로 인해 헤어질 경우 남성 배우자는 여성 배우자에게 매월 소득의 1천%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30년 간 지불해야 한다.
둘째, 혼인신고는 1년의 계약생활이 경과한 후 서로가 만족하며 정식혼인에 합의할 때 한다.
셋째, 예물은 배우자 쌍방의 반지만을 교환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남성 배우자는 여성 배우자에게 일체의 혼수나 지참금 등을 요구할 수 없다.
넷째, 결혼을 하고자 하는 여성은 여성단체총연합회가 인정하는 전문 직업을 가져야 한다. 전업주부는 탈피한다. 따라서 발생하게 될 가사와 자녀의 양육문제는 반드시 남성 배우자와 여성 배우자가 나누어서 한다.
다섯째, 결혼한 날로부터 여성단체총연합회 결혼조례에 명시된 날까지 남성 배우자와 여성 배우자는 매월 서로가 합의한 내용을 점검해 잘잘못을 엄격히 가리고 그 결과를 여성단체총연합회에 통보해야 한다.
여섯째, 남성 배우자는 여성단체총연합회가 실시하는 정신건강진단을 비롯한 인성검사 등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일체의 검사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
일곱째, 남성 배우자와 여성 배우자는 가정의 행복과 안녕 만이 아니라 평등하고 민주적인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 봉사한다.
여덟째, 양가의 부모와 친인척에 대해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서로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여성단체총연합회의 새로운 발표가 있자 남성들은 ‘그게 그거’라며 쑤군거렸다. 이즈음에 와서 정치권의 이야기가 화제의 대상에서 밀려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돌변한 것이다. 언론에서도 정치, 사회 기사는 뒤로 제쳐두고 여성단체총연합회의 활동지침이나 대책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취급한 기사로 연일 대부분의 지면을 장식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와 관련된 현상들도 매일같이 가십형태로 처리되고 있었다. 뉴스메이커도 정치, 경제인이 아니라 결혼에 성공한 사람으로 옮겨져 있었다. 결혼을 쟁취하는 커플이나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결혼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의 잣대가 되고,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 됐다. 결혼한 남자가 무관의 제왕처럼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면에 결혼하지 못한 총각들은 미숙아처럼 취급당하면서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만 했다.
문화의 기준도 당연히 결혼문제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었다. 결혼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고 각종 이벤트 행사도 결혼과 결부되지 않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결혼과 연관된 신종 직업도 당연히 늘어났다. 이를테면 결혼준비생을 위한 전문학원이 생겨나면서 ‘웨딩티져’라는 전문 직종의 등장 등이 일련의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결혼문화를 가꾸는 전국적인 모임이 만들어지고, 반대급부로 이혼을 생각하거나 이미 이혼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기간 입소시켜 가정문제로부터 부부갈등까지를 상담해주기 위한 정신병원 같은 ‘화해의 집’까지 세워진 형국이고 보면 세상이 변해도 아주 많이 변한 것이다. 물론 ‘화해의 집’에는 부부문제만을 전담으로 치료하는 부부클리닉 전문의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래서 부부클리닉 전문 의사들은 주가가 높았다.
박차만 씨는 바늘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것 같은 언짢은 기분으로 하루 일을 마치기가 바쁘게 사무실을 뛰쳐나와 카페 ‘사랑만들기’로 기어들어 갔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곳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핑크빛 조명 아래로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혼자였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술잔만을 기울였다. 박차만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허공을 향해 길게 내뱉었다. 한숨을 에두른 회색 연기는 맥없이 날아올랐다. 그때 ‘후회하지마……’라는 음악이 짙게 깔려 나왔다. 박차만 씨는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독한 술을 한 모금 입에 털어 넣고 잔뜩 움츠린 어깨를 소파 깊숙이 묻으며 눈을 감았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정란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군 입대 전 헤어졌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서글픈 과거를 되새김질하기 싫어 망설임을 떨치고 눈을 번쩍 떠 술을 한 모금 더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때를 놓쳐버린 어정쩡한 일그러진 중년의, 찌그러진 초상이 진저리쳐지도록 싫게 느껴졌다. 누구를 탓할 일도 못돼 끙끙거리며 속으로 울먹일 뿐이었다.
걱정거리는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혼인율이 낮다 보니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곳곳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사회구성원 숫자에도 못 미칠 정도로 상황이 발전하지나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까지 들게 한 것이다. 힘센 종교단체나 종친회 등에서의 반발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박차만 씨 역시 언죽번죽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단을 각오하고 나선 여성단체총연합회에 대항할만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류 최초 성을 무기로 들고 나선 혁명 앞에서는 정부도 강제로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실이 이성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라고 어설픈 속내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정부에서는 여성단체총연합회의 눈치를 살펴가며 인구정책을 위해 ‘한 가정 아이 하나 더 낳기 운동’까지 벌이면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산모에게는 장한어머니상을 주어 격려할 입법 활동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여성단체총연합회도 이 움직임에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 종족을 보존하고 국가 사회와 가정을 지탱하며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산모에게 장한어머니상을 주려고 하는 것만은 반대했다. 아이를 낳았다고 상을 받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성이 아이 낳는 기계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생각이라는 점도 분명히 명토 박아 두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때쯤 박차만 씨는 술에 잔뜩 취해 비칠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어둠이 짙게 깔린 세상 속으로 나섰다. 고개를 숙인 채 어기적거리며 무작정 걸었다. 취기 탓도 있었겠지만 밀려드는 서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 무작정 걷고 싶었던 것이다. 한참을 걷다가 술이 깰 즈음 주위를 돌아보니 집과는 반대편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박차만 씨는 그제야 현실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는 의미 없는 미소를 지었다. 발길을 되돌리고 싶지 않아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한번 선택한 길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못 먹어도 고’ 하는 심정이었다. 걷다가 지쳐 차라리 쓰러져 죽었으면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했다.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만은 더없이 홀가분했다. 죽기를 각오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사슬 같은 얽매임에서 잠시나마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차만 씨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외마디 고함을 지를 위기를 간신히 참았다. 인기척이라도 하고 지나갈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발걸음이 떼이지 않았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충격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일에 몰두했다. 저들이 박차만 씨를 못 본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박차만 씨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훔쳐보기의 짜릿한 전율에 빠져들었다. 한 쌍의 남녀가 담벼락에 기대어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불륜의 현장일 수도 있겠고, 결혼 승인을 받지 못해 숨어서 하는 사랑의 장면 같기도 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것이다. 결혼이 어려운 사회적 부작용으로 생겨난 일련의 사태이긴 하지만 당혹스런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낯 뜨거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술이 다 깨어 있었다. 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들자 박차만 씨는 발바닥이 아프다는 것을 먼저 느꼈다. 다리도 힘을 잃고 후들거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밤하늘이 코앞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속도 메슥거렸다. 물 젖은 걸레처럼 축 처진, 천근만근 몸은 휘감아 도는 냉기에 금세 얼어붙을 것처럼 뻣뻣해져갔다. 순간적인 충격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져든 것일까. 이러다가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물경 일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죽기를 각오했다지만 막상 죽는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니 서러움에 북받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볼이 시렸다. 샘솟는 물처럼 쏟아지는 눈물 줄기를 훔쳐내지도 못할 만큼 무기력해 있었다. 몸은 차츰 싸늘해져갔다.
“아저씨 정신이 좀 드셔요?”
박차만 씨가 겨우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을 때 여자가 몸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무-우-우.”
박차만 씨는 갈증을 느꼈는지 비몽사몽간에 물을 찾았다. 여자가 방안을 두리번거려서 물 컵을 찾았다. 여자는 마침 방안에 있던 정수기 물을 컵에 받아 침대머리에 내려놓고 나서 일어나려고 몸을 뒤채는 박차만 씨를 껴안아 일으켜 앉혔다. 박차만 씨는 여자의 팔에 의지해 겨우 상체를 일으켜서 물을 받아 마셨다.
여자는 박차만 씨가 죽을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축구공 두 개는 족히 될 만한 돌이 머리를 내려찍었다고 했다. 박차만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그 남자가 죽음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코밑에 귀를 박고 있는 사이 여자는 몸을 숨겼다고 했다. 여자가 몸을 숨기자 그 남자는 자기를 찾아서 죽여 버리겠다고 씩씩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찾지를 못해 떠나갔다고 했다. 그 남자가 떠나가고 난 뒤에야 박차만 씨를 방으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여자의 말을 다 듣고 난 박차만 씨는 경련을 일으켰다. 여자가 괜찮겠느냐는 투로 박차만 씨를 내려다보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얼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여성의 체취를 맡자 박차만 씨는 그 지경에서도 살아 있는 남성을 느꼈다. 박차만 씨는 힘이 들어가지 않은 두 팔을 겨우 들어 올려 여자를 감싸 안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나를 살려놓은 셈이군요. 정식으로 청혼하고 싶습니다. 물론 경황이 아닌 줄은 압니다만…….”
“그렇게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살려준 은인이 아니라 어쩌면 이지경이 되도록 만든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겠지요.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차라리 내가 죽었을 테니까요. 그 사람 입으로 그랬어요. 한번 자기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다 죽여 버린다고……. 세상을 저주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저씨 덕분에 그 자리를 피해서 살아난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예에, 그래요. 내가 잘못 걸려든 거에요.”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방에서 나온 박차만 씨는 모텔 프런트 카운터 위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었다. ‘성도착증 환자 끝내 체포’라는 주먹만 한 제목을 달고 있는 기사가 첫 면 전체를 도배하고 있었다. 박차만 씨가 신문을 보여 주려고 뒤돌아 설 때까지 여자는 벽을 향해 서 있었다. 박차만 씨가 신문을 내밀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박차만 씨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모텔을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박차만 씨도 눈치를 채고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갔다. 박차만 씨와 여자는 연신 주위에서 누군가 본 사람이 없을까, 하는 경계심으로 좌우를 살피면서 손을 꼭 잡고 내달렸다. 도로로 나선 박차만 씨와 여자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부부처럼 다정하게 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박차만 씨 계십니까?”
박차만 씨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따라 전화벨소리가 요란을 떨며 울어댔다. 박차만 씨는 토끼눈을 하고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찾는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수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기를 한참 만에 침착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다시 수화기를 귀에다 댔다.
“차화정 씨를 아시지요?”
“…….”
저쪽의 목소리는 너무나 당당했다. 박차만 씨를 제압하려는 기세로 다짜고짜 질문을 날리는 듯 했다. 박차만 씨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뛰는 가슴을 따라 입술까지 덜덜 떨렸다. 머릿속은 지난밤의 일로 뒤엉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칠흑 밤하늘 같았다. 차화정이라는 이름을 아느냐는 저쪽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몰라 수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서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가 다급해진 듯했다. 박차만 씨는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듣기만 했다.
“박차만 씨 여기는 하트이벤트삽니다.”
박차만 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파출소로 출두하라는 소리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벤트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 좋은 징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어젯밤의 일로 경찰의 연락이려니 지레 짐작해 잔뜩 겁먹었던 박차만 씨 쪽에서 이제는 안달이 나 재촉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차화정이란 사람 잘 압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는지 말씀을 하세요.”
“저는 결혼이벤트회사 대표이기에 앞서 화정이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전화하는 겁니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정체와 용건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전화를 드린 것은 동생의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 일로 선생님과 상의할 일이 있어섭니다. 선생님의 결혼을 우리가 주선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맡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쉽지 않은데 날 믿고 맡겨 주십시오.”
수화기로 들리는 목소리의 남자는 동생을 통해서 들은 정보로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동의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박차만 씨는 똑똑하고 분명한 소리로 그렇게 하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갈구했던 일인가. 결혼이벤트회사에서 여성단체총연합회에 연락을 취하고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동생으로부터 승낙은 받아놓았다는 말까지 했다.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찼다. 박차만 씨는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방금 들었던 오빠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쟁쟁거렸다. 길고도 잔인한, 싱글로 살아온 허물을 벗어 던지고 몸을 바꿀 일만 남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박차만 씨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결혼이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함부로 선택해서도 안 되겠지만 이혼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결혼할 자격이 있다’라고 했던, 결혼한 자의 의기양양하던 말이 생각났다. 물론 이혼을 했다가는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래도 이혼을 하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그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과연 나는 이혼할 용기가 있는가? 스스로 자문하며 박차만 씨는 몸을 뒤척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떤 기회인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결혼도 하나의 도박이다. 넝쿨 채 굴러온 호박을 왜 마다할 것인가. 박차만 씨는 정리되지 않은 혼란상황을 끌어안은 채 속옷 바람으로 누워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었다.
“박차만 씨죠?”
다시 걸려온 전화도 다짜고짜 이름을 물어왔다. 이제는 담담했다.
“어디신가요?”
이번에도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는 아닌가 하고 박차만 씨는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어온 쪽이 어디인지를 먼저 물었다.
“네 저는 여성단체총연합회 조유정 사무총장입니다. 박차만 씬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네 맞습니다. 말씀하시죠.”
박차만 씨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결혼이벤트회사로부터 벌써 연락이 닿았나 싶었다. 겁에 질려 떨리던 가슴이 두근거림으로 바뀌며 얼굴까지 붉어졌다.
“전화로 드릴 말씀은 아니라서…….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신지……?”
“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그러면 언제 만날까요?”
“지금 제가 집 앞에 와 있습니다. 사안이 급하기도 해서…….”
그러고 보니 조 총장이라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모를 다급한 음색이 범벅돼 있어 보였다. 조짐이 이상했다. 결혼이야기라면 저쪽에서 다급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을 끌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거만을 떨기까지 했다.
“골목 모퉁이에 찻집이 하나 있더군요. 그쪽으로 지금 오시죠.”
그때부터 조 총장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명령조로 들렸다.
박차만 씨가 찻집으로 들어서자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내가 빨리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찻집 안에는 조 총장이라는 사람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찻집 주인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오렌지주스가 두 잔 놓여 있었다.
“박차만 씨 앉으세요. 제 신분은 전화로 밝혔고……. 생각을 물어보지 않고 주스를 시켰습니다. 주인은 배달이 있다고 해서…….”
“아, 예…….”
박차만 씨가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조 총장이라는 사람은 서둘러 해주었다. 무슨 대단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듯 살기마저 느껴졌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혼이벤트회사라는데서 전화가 왔었죠? ”
“예에.”
“신부가 될 사람은 누구인가요?”
“차화정…….”
“박차만 씨도 당하신 겁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차화정이는 과거 여성단체총연합회의 임원이긴 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베일에 싸인 인물입니다. 결혼이벤트회사를 운영한다는 오빠와 짜고 여러 차례에 걸쳐 혼기를 넘긴 총각들을 홀려서 결혼허가 조건에 따라 거액을 갈취해온 파렴치한 행각을 벌여왔습니다. 성도착증 환자로 검거돼 수감된 그 인물도 한패입니다. 그래서 당국에 체포되기 전 우리 연합회에서 먼저 신병을 확보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해야 합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
“박차만 씨는 우리가 보호해 줄 것입니다. 더 이상 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차화정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결혼이벤트회사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면 만나자고 하고 바로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당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급선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한 말은 절대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만에 하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입을 뻥끗했다가는 우리 요원들이 즉시 당신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알아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조 총장이라는 사람의 말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박차만 씨가 가타부타 말 덧대는 것을 거부하는 듯했다. 박차만 씨의 의견은 아예 관심 밖이고, 들어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서약서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사인을 하시죠.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이 적혀 있습니다. 사인만 하시면 박차만 씨는 안전합니다.”
아예 읽어볼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빨리 사인만 하기를 강요했다. 불현듯 신체포기각서 같은 것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박차만 씨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조 총장이라는 사람도 읽어보기만은 허락하듯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박차만 씨가 서약서에 사인을 하자 조 총장이라는 사람이 먼저 찻집을 나갔다.
박차만 씨가 산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진 듯 얼떨떨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찻집을 나섰을 때 호외신문이 뿌려지고 있었다. ‘여성단체총연합회 전 임원 차화정 긴급체포’라고 제목을 단 호외신문이 발밑에 널브러졌다. 차화정이 여성단체총연합회의 각종 비리를 폭로하고, 정부에서도 여성단체총연합회 해체수순 밟기에 들어갔다는 내용도 눈에 띄게 도드라져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박차만 씨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방금 헤어졌던 조 총장이라는 사람과 찻집 문 앞을 지키고 섰던 건장한 사내들은 어디로 갔을까?
박차만 씨는 그 길로 무작정 걸었다. 그동안 살아온 자취를 거슬러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듯 현실로부터 뒷걸음치고 싶었다. 태어났던 어머니의 태 속 같은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듯이……. 더 오랜 과거로 내달릴수록 마음은 한결 진정되며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정유제
경북 성주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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