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말랐나이까 (마 21:18~22)
이 시간에 “어찌하여 말랐나이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목마름의 고통입니다. 음부에 간 부자가 목이 말라 물을 구했습니다. 육신의 갈증만 그런 것 아닙니다. 심령의 갈증도 고통스럽습니다. 가슴에서 불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아모스는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죄가 많아서였을까요? 나무는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믿음의 열매 없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깨달으라고 무화과나무를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 없으면 저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심령은 마른 무화과나무처럼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72장에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우리 심령이 빈들에 마른 풀 같다면 축복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심령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형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말랐습니까?
1. 열매가 없으므로 말랐습니다.
보통 나무는 열매가 없어도 마르지 않는데 이 나무는 열매가 없어서 말랐습니다.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물이 없어 마른 것이 아니고, 뿌리가 없어 마른 것도 아닙니다. 열매가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마르게 하셨습니다.
관상수는 보기 위하여 심고, 과실수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위하여 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나무에 열매가 없다면 농부가 화가 날까요? 나지 않을까요? 화가 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열매가 없으면 슬퍼하시고 노하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외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너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7-10)
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자 제이콥스(A. J Jacobs)의 저서 ‘미친 척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본 1년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성경을 읽어가며 700여개의 계명들을 정리하여 일 년 동안 그 계명대로 실행하여 보았습니다. 성경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니 매끄럽지 못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거짓말 하지 말라’ 는 계명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식당에서 가족과 식사하고 나오다가 부인의 동창생을 만났습니다. 그때 상대방이 아내에게 “조만간 또 다시 봅시다.” 하고 말합니다. 그 때 "감사합니다." 대답하면 될 일입니다. 덕담을 거짓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얼마 후에 다시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동창에게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약속하지 말고 헤어집시다.” 그 날 아내에게 엄청난 핀잔을 들었습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다 보니 실수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주일에 뉴욕 거리를 거닐면서 주일 날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씀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돌 던져선 안 됩니다. 성경을 몰라서 피상적으로만 해석해서 생긴 실수였지만 그만큼 열심히 지켰습니다. 어떻든 그는 그렇게 일 년 동안 미친 척하고 말씀 그대로 실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얻은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 위로를 크게 받았습니다. 또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하고 흠이 많은 사람인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성경에서 안식을 찾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하찮은 것에도 자주 감사하게 되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열매를 맺을 때 그 심령은 결코 메마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말씀만 듣는데서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열매 맺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으면 마음 여세요.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얼마나 책망하시고 화 있을진저 화를 선언하셨습니까?(마11:20-23)
신앙의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실천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 훈련을 위해 말랐습니다.
2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왜 마르게 하셨나요? 제자들의 믿음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가 믿음훈련으로는 안성맞춤입니다. 신앙의 훈련을 위해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려워야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려워야 기도합니다. 위험해야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요. 갈 길을 몰라야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요. 수효가 많고 먹을 것이 없어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 주실 것을 믿는 훈련이 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심령에 목마름을 주시는 것은 신앙 훈련을 위함입니다. 평안을 주셨다 빼앗다를 반복하시면서 우리 신앙을 언제나 변함없는 전천후신앙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바른 복음의 진리에 서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마름을 주십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G. Marquez)의 '백 년 동안의 고독'(Hundred Years of Solitude)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해괴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전염병의 이름은 바로 건망증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병으로 점차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용품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의 이름까지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젊은이들은 필사적으로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여 피해를 줄이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탁자입니다' '이것은 자동차입니다' 등등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는 두개의 간판이 달렸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마칸도입니다.' 또 다른 간판에는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라는 간판이었습니다. 가장 위협적인 건망증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망각하거나 신앙생활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믿음만 있다면 하늘의 문도 반드시 열리게 됩니다.
3. 기도의 훈련을 위해 말랐습니다.
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이처럼 또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한 것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라고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토레이의 손자, 본명으로는 아쳐 토레이(R. Archer Torrey) 박사가 청년 시절에 신앙의 구속을 받는 것이 싫어 집을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하마. 만약 방랑의 길에 지쳐 어디로 갈 바를 모를 때 어머니의 하나님을 불러라” 말해 주셨습니다. 도시로 나간 토레이는 마음대로 다니다가 죄악의 수렁에 깊이 빠졌습니다.
하루는 자살하려고 여관에 갔는데 서랍 위에 성경책이 놓여 있더랍니다. 기드온협회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성경을 몇 줄 읽어 내려가는데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방황할 때 하나님을 찾으라 너를 인도하여 줄 것이다.” 그는 이내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나를 구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며 은혜를 받고 어머니에게 돌아와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된 줄이요 교제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정비례합니다. 믿으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믿음이 좋아집니다. 기도가 우리의 의무라면 응답은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이 나서야 큰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면 희망이 생기고 커지고 분명해집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생명수가 흐릅니다. 무화과나무를 죽이시면서까지 기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심령으로 생활로 여러 가지로 훈련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심령이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같다면 회개하십시다. 우리 모두 실천하는 신앙생활로 신앙의 열매, 믿음의 열매, 기도의 열매,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 맺어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