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37,1-14; 마태 22,34-40
+ 오소서 성령님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서 상당히 긴장감이 느껴지는데요,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을 스승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스승님’이라고 부른 것은, 당신이 율법을 논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복음의 첫머리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입니다.” 시편 2,2의 말씀이 연상되는데요, “야훼를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 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는구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종교 지도자들과 네 차례 논쟁을 벌이시는데요, 첫 번째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과 벌이신 논쟁입니다. 두 번째가 부활에 대해 사두가이들과 벌이신 논쟁이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다시 바리사이들과의 논쟁으로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오늘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이후로 그들은 더 이상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다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재판받으실 때 다시 등장하여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논쟁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 말씀에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벌인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궁금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죽일 구실을 찾겠다’는 목적에서 던진 질문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벗겨버리고 고발하는 대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 전체의 계명을, 모세오경에서 인용하신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본래 신명기에는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라고 나오는데, 그리스어로 ‘힘’을 뜻하는 ‘뒤나미스’ 대신에 마태오 복음에는 ‘디아노이아’(정신)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정서와 의지와 지성 모두를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쓰라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한평생 당신을 핍박하고 모함하고 죽이려 한 바리사이들에게 사랑의 말씀을 남기신 후 십자가의 길을 가실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십자가 위에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세상 구원을 위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 봉헌하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이 바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바리사이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흘려들었지만, 머지않아 바리사이 한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고 회개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사랑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희망을 노래합니다.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로 망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마른 뼈에 비유합니다. 더 이상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 뼈들에 힘줄과 살과 살갗이 생겨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 뼈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숨’입니다.
‘숨’ 또는 ‘영’으로 번역되는 ‘루아흐’라는 단어가 1독서에서 9차례 등장하는데요,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말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창조를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것은 주님의 영입니다. 우리는 세례 때 그 영을 받았고 그 영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 차례 십자성호를 그을 텐데요, 오늘은 한번 십자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다음에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아멘”이라고 기도하며 하느님 사랑을 새기고, “이웃을 저 자신처럼 사랑하겠습니다, 아멘”이라고 이웃 사랑을 새기면 어떨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아멘”
“이웃을 저 자신처럼 사랑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