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흐’는 ‘흐르다’의 ‘흐’.
시간이 흐르다.
흘러가는 시간들은 천천히,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이고 있는 중. 내 안에는 몇 겹의 흐름이 쌓여있을까.
요새 나의 시선은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머물고 있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시간들이기 때문일까. 점점 나이 들어가고 계시는 부모님들 때문일까.
아무튼. 나이와 시간의 흐름은 ‘흐’라는 키워드를 받은 후 들었던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키티 크라우더의 책이기 때문에 무조건 뽑아 읽었던 <시간의 노래 얀 투롭>(키티크라우더 글,그림/강수진 옮김/책빛).
이 책이 나에게 온 건 흘러가는 길 속에 예정되어 있던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개인전을 했던 내 친구의 그림 속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내 삶의 반짝거릴, 반짝거렸던 순간을 생각했었는데 키티 크라우더의 이 그림책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흘러가는 순간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을 펼쳐 속지에 눈이 간 순간, 난 망설임 없이 색의 흐름 속에 동참했다. 거침없이 소용돌이 치는 색깔들은 구덩이처럼 보이는 원심으로부터 퍼져나가고 있었고, 겉으로부터 어지러운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힘찬 파동을 느꼈다. 가슴을 콩쾅거리게 할 만큼 좋았다. 울렁거렸다.
내가 오래 머문, ‘와!’ 탄성을 지르며 머무른 페이지에는 여러 색의 물결들이 가득 일렁거리고 있었다. 오른쪽 페이지 맨 위에서 시작해 거침없이 왼쪽 페이지까지 흘러온 물줄기는 색을 품고 내 앞에서 흔들거렸다.
그 물줄기 안에는 얀 투롭의 고향 인도네시아가 있고, 어린 시절부터 얀 투롭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자연 극속 인형 두 공주가 들어있고, 얀의 가족이 있다. 그리고 “얘야, 멈추지 말고 계속 하거라”라며 얀의 그림을 좋아해주던 선장님의 격려도 있었다.
내가 살아온 순간, 순간들이 가득 담긴 물결들이 색색의 물줄기로 굽이치고 흘러와 현재에 머무르다 다시 수평선 너머로 흘러갈 채비를 한다. 저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머물러 그림책을 나눈 그 찰나에도 길은 저 끝에서 저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고 우리들의 그림책 이야기도 머물다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 앞으로 흘러갈 미지의 시간들 사이 그 가운데 내가 있다. 오늘이 쌓여 과거가 될 테고, 나는 흘러 아직 보이지 않는 미지의 시간을 현재로 살아 다시 흘려보낼 거다. 그리고 다시 쌓여 과거가 되겠지.
“흐”
“흐르다.”
“잘 흘러가자” 되뇌인다.
첫댓글 순간
순간
순간
시간의 흐름.
그 사이 중심의 나.
과거. 현재. 미지의 시간.
시간은 여기에 있고 흐르는것은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