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때 생긴 일
이사할 때 나는 죄인이 된다. 책이 많아 인부들에게 대단한 고역을 치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 가급적 이사를 가고 싶지 않지만 세 들어 사는 처지라 그도 맘대로 되질 않는다. 이번 이사에도 남자가 한명 더 붙어 네 명이 짐을 날랐지만 책을 나르는 것은 역시 힘겨운 일인 것 같다. 떠나야할 집에서 사다리차 작업을 하는 걸 보고 있는데, 사다리차 운전을 하시는 사장님 말씀.
‘책 많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책 많이 봐도 노는 사람들 많은데.’
뜨끔하면서 장자 생각이 났다. 제의 환공이던가? 수레바퀴를 만드는 목공에게 한방 당한 사람이? 그랬는데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젠세 얼마에 살았냐고 물으니, ‘이런 일 해봐야 돈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저 생활비나 될 뿐입니다. 돈을 모으려면 융자를 받아서라도 제 집을 사야 합니다.’ 그러며 자신이 집을 사게 되고 그것으로 지금 3억인가 5억 하는 집을 갖게 된 사연을 말한다. 한 7,8년 되었나 다소 무리를 해서 융자를 받아 덜컹 장위동에 집을 샀는데, 그게 곧 몇 천이 뛰고, 두 배 세 배가 되더니 작년엔 우이동에 집을 새로 사게 되어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올해도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이제 경전철만 놓이면 더 오를 거라고 한다. 세상 살기 험함의 얘기를 하며 나도 다음엔 융자를 받아서라도 집을 사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누가 모르는가? 요즘같이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부동산만큼 사람들이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투기가 생활화되어 생활의 밑바닥부터 불안을 조성하고, 그것에 의지해 혹은 안주해 살아가는 도시 생활을 정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그리고 아직 도시에 있으면서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때론 바보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어서 아저씨는 신창원 얘기를 했다. ‘그래도 신창원은 부잣집만 털지 않았습니까?’ 소위 이게 우리나라 서민정서다. 신창원이 전국 이곳저곳에 출몰하며 경찰들을 따돌리고 부잣집들을 털고, 신창원을 사랑한 여자들이 있었고, 일기를 꼼꼼히 기록하기까지 했으니 홍길동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부익부빈익빈과 권력의 억압에 신물나는 백성에게 의적의 이미지는 대리만족의 대상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부자를 털고 경찰을 따돌리는 신창원을 보며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감정적 통쾌함을 느낀 사람들은 분명 국민의 절반이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아저씨의 두 태도 사이의 모순을 아저씨는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투기 물가상승에 편승해 내 재산이 늘어날 때 수없는 잠재적 신창원이 탄생한다는 것을.
간디가 말했다. ‘부자가 있는 한 도둑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넣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가 부족해 끈으로 묶으며 책을 옮기니 시작이 더 걸렸다. 들어갈 집에 와 짐을 옮기는데, 농담이겠지만 진담이 섞인 투로 주방 정리 담당 아주머니가 책일을 거들다가 비명을 지른다. 너무 힘들어 일을 못하겠다고.
별 주변머리도 없는 나는 불편한 심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일을 하시던 40대의 좀 마른 편의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물건도 내 물건이라고 생각해야지 남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힘이 들어도 그렇게 생각하며 참고 하면 즐겁다고 말이다.
참 지혜로운 분이다. 당신의 말로는 배운 것이 없다지만,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정확히 아시는 분이 아닌가? 당신 스스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생각만 없앤다면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얼마나 존경할 만한 분인가? 솔직히 일이 힘들면 나도 그 아저씨같이 여유 있는 맘, 즐거운 맘을 가지지 못한다. 아무래도 아주머니 편에 더 가깝다. 하지만 아저씨는 힘든 몸 보다 마음을 바꿔 즐거워지는 방법을 택했다. 천성적 에픽테투스다!
짐을 나르던 다른 청년이 농담처럼 몇 번 말했다.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할 때 할 걸, 놀다가 이렇게 고생이라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 진담으로 들리진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공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느끼는 것은 역시 서글픈 일이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학생? 부모? 하지만 어쩌겠는가? 소위 이 땅에서 직업으로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면 그들이 가장 큰 책임을 우선 가지는 것이다. 무지를 방관하고 유포하고 암묵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다.
그 뒤 나는 사오일 정도 꼬박 책정리를 한 뒤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첫댓글 나는 천금의 부를 원하지 않고 가난한 수행자로 족하네~아마 그런 서원을 과거,과거생의 어느땐가 하지 않앗을까요? 그러면서 지금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신건 아닐까요? ㅎ앞서간 수많은 성인과 현자들이 남긴 지혜서가 내 안에서 다시 살아 날때 그 고귀한 재산은 누구것일까요 하늘이 주는 즐거움중에 가장 큰 것은 굶지 않을만큼의 양식에 소요유처럼 한가롭게 자연을 보면서 좋은 글을 대하는것,그것은 신선도 아끼는것이라서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라고 허균의 한정록에 쓰여진 글을 멩이님이 옮기셨잖아요 이제보니 가장 큰 욕심을 내시고 사시는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