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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승리(고전15장50-58)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50-58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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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늘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사흘 전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가 주일 아침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부활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유대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장수하시고 노쇠하셔서 돌아가셨습니다.
막벨라 굴에 장사지낸 이후로 그분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또 부활할 이유도 없습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80세에 식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임종 때 "법을 의지하고 나를 의지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구원자가 아님을 직접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그 유골이 여덟 부족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부활한 적이 없습니다. 윤회설에 따르면, 윤회하여 돌아오는 사람은 뭔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불교는 죽으면 완전히 없어진다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철학의 원조라는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사약을 마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겠다고 예언한 적도 없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전혀 없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은 60세에 군대를 조직하여 메카를 무력으로 정복한 후 62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슬람은 늘 칼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했고 지금도 '지하드'라는 성전(聖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호멧의 무덤은 만인에게 알려져 있고,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3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다른 종교들의 본질적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탁월한 윤리적 교훈들을 많이 주셨는데, 훌륭한 윤리적 교훈들은 다른 종교들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다른 종교들과의 핵심적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명백한 증거들이 많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들은 며칠 전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만 해도 두려움과 낙심에 빠져 하나같이 도망을 쳐 숨어 지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몇 일만에 완전히 다른 새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길거리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이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부활이 있게 되었다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일생을 바쳐 증거하다가 하나같이 순교하였습니다.
직접적인 체험이 없었다면 왜 그렇게 죽임을 당했겠습니까?
아마 용감하게 전하다가도 체포당해 감옥에 갇혀서 곤장 몇 대만 맞았어도,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부정하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2000년 동안 교회라는 세계적 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되었고, 그들이 세계로 다니면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생명의 예수님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지난 2천년 동안 교회가 세계적으로 성장해온 것입니다.
셋째로, 예배드리는 요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전환되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계기로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것의 연속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에 이런 것이 있지요?
1.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지으신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2. 이 날은 이 날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모여 예배드리던 유대인들이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그 날 온 이스라엘의 전통을 뒤집어 놓을 만한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넷째로, 성례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교회의 성례는 두 가지입니다. 성찬과 세례입니다.
성찬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몸을 찢기고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세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사함과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찬과 세례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전하라"(고전11:26)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성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다섯 째, 부활신앙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누가 구원받습니까? 예수께서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생명과 부활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도 이 아침에 부활의 신앙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섯 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그들과 대화하시고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한 번에 한 사람, 두 사람, 열 한 사람 등, 16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승천하실 때는 5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보았습니다.
그 때 흰 옷 입은 천사들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재림의 신앙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자로 다시 오십니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다시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까?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분이 이제 머지않아--
그것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지만--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의 주로 이 땅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경배하였습니다.
일곱 째, 부활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유대 사람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과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엘리사를 통해서 다시 살아난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부활과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회생입니다. 회생한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사로 등이 예수님에 의해 회생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난 그들은 다시 아팠고, 다시 노쇠했고, 다시 병들었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님과 같은 몸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몸, 영원히 쇠하지 않는 몸, 영원히 병들지 않는 몸, 영원히 연약함이 없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부활과 생명이 약속되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셨을 때 마르다가 "아멘,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과 저에게도 오늘 아침에 이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1천년 전 시편 22편에서, 그리고 약 700년 전 이사야서 54장에서 메시아의 부활이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다니엘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과 저주의 부활을 이야기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심판자로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가 부활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사망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과 구약의 사상이며, 예수님도 친히 같은 맥락에서 부활을 이야기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덟 째,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인데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제자들에게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잘 안 들립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적들도 예수님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유대의 지도자들이 빌라도를 찾아가서 대책을 물었습니다.
"만일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서 숨겨 놓고 그가 부활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빌라도는 "너희들에게 군대가 있지 않느냐? 군대를 동원해서 그 무덤을 철저하게 지켜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적들도 혹시 예수께서 부활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군대를 동원하여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예언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40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이런 체험을 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본 것을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고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했고 예수님의 손을 만져본 사람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은 분명한 증거가 있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과 생명이 있음을 믿고 이 땅에서 소망 가운데 사십시다.
부활은 우리의 영생을 위하여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금의 몸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하였습니다.
이 몸은 노쇠하는 몸이요, 약해지는 몸이요, 조금만 오래 일해도 피곤한 몸이요, 잠을 좀 못자면 견디지 못하는 몸입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아브라함처럼, 석가모니처럼, 마호멧처럼, 소크라테스처럼, 공자처럼, 맹자처럼, 우리의 모든 조상들처럼 우리의 몸도 죽어서 썩습니다.
어쩔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이 몸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몸은 땅에 심겨져야 됩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거기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새 생명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갖고 사용하고 있는 몸도 땅에 심겨져야 합니다.
죽을 것을 심으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땅의 것을 심으면 하늘의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지 아니할 영원한 부활의 몸으로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믿느냐?" 라는 주님의 질문에 마르다처럼, "아멘 주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이 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1-52절) 하였습니다.
여러분! 육체가 연약합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우리의 연약한 육체를 이 땅에 심을 때에 영원히 죽지 않는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여러분과 저도 입게 될 것입니다.
몸에 질병이 있습니까? 마음이 연약합니까?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하늘에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우리보다 앞서 간 남편, 아내,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혹시 먼저 떠나간 자녀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이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맞으러 올 것입니다.
우리도 순식간에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육적인 몸이 영적인 몸으로, 불완전한 몸이 완전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희망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죽음이 우리의 원수였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변화된 부활체는 썩지 않는 몸, 하늘의 몸, 영원한 몸, 영광스런 몸이므로 죽거나 썩지 않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54절).
사망은 이제 이빨이 빠져 버렸습니다.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을 때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 땅의 죽음은 부활을 위해 통과하는 문에 불과합니다.
이 땅의 인생을 마치면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갈 것이요,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썩지 않고 죽지 않을 완벽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망은 이제 힘이 없습니다. 죄도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율법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고난과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죽음을 만나도 소망가운데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십시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승리를 믿습니다.
마지막 승리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생이 우리의 것임을 믿으니 소망가운데 사십시다.
이 날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주님의 날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망가운데 믿음을 다집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 축하의 박수를 드립시다!
여러분의 육체가 연약해지고 있습니까? 노쇠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연약해지고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과 함께 영광스러운 몸으로 완전히 변화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먼저 보낸 가족이 있습니까? 많이 슬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도 변하여 공중에서 주님과 더불어 그들을 만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