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성수동이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며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준 공업지역이었던 이곳의 거리는 어느새 카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매장이 즐비해졌다. 덕분에 이곳의 지가 및 임대료는 단기간에 큰 폭으로 상승했고, 창업의 성지로 불리던 성수동에서는 폐업하는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200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사회현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큰 사회적 이슈였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 산업혁명 이전의 귀족을 의미하는 ‘젠트리(gentry)’ 계층이 특정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그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변화(-fication)’의 시킨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인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이 용어를 주창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로 커뮤니티에서 전면철거방식 등을 통해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고 주거비용이 상승하여 기존에 거주하였던 소득이 낮은 가구가 다른 곳으로 밀려나면서 고소득 가구로 대체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태원 – 경리단길, 망원동 – 망리단길, 연남동 – 연리단길
과거 수제화 제조공장과 주택이 즐비했던 성수동,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 여행객의 천국이었던 이태원, 마포구의 조용한 주택가였던 망원동과 연남동이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분위기 좋은 카페,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레스토랑, 독특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갤러리와 공방 그리고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며 일명,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SNS를 통해 급속도로 빠르게 유행처럼 번져간 열풍은 많은 유동인구를 이 지역으로 불러들였고, 이는 곧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이어지며 지가 및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주변 상가들까지 임대료가 동반 상승하게 되었고 소규모 가게와 지역주민들은 치솟은 집 값과 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동네를 떠나거나, 운영중이던 사업을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른바, ‘뜨는 동네’에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지역의 발전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제공의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이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좁아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의 큰 문제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시급
이에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동구에서는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현상을 막기 위해 관련된 조례를 제종하고 전담부서를 신설했을 뿐 아니라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할 수 있도록 협약 체결을 돕고, 지역공동체 상호협력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19대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공약을 걸었다. 기존 법으로 제재가 어렵다면 특별법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했기에 서울시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제안하는 10대 분야 66개 정책과제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 제정을 포함시켰다.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다. 도심 개발로 인해 누릴 수 있던 긍정적인 효과만큼이나 이로 인해 발생되는 부정적인 문제들 역시 발생된다. 우리보다 일찍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다른 나라의 대응책을 벤치마킹해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균형잡힌 발전의 모색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 대응방안 해외 사례
프랑스, 파리
정부가 적극 개입해 성공
파리시는 2006년 소매업과 수공업 보호를 위해 도시기본계획인 파리도시계획을 수립해 보호조치가 필요한 특정 가로를 ‘보호 상업가로’로 지정하고, 이렇게 지정된 건물 1층에 입점한 기존 소매상업과 수공업 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보호상업가로는 파리시 전체 도로길이의 16%에 해당되며 총 3만여개에 이르는 상업시설이 포함됐다.
캐나다, 몬트리올
지역주민의 화합 통해 극복
몬트리올시는 지역주민이 힘을 합쳐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했다. 몬트리올시 마일엔드(Mile End) 지역민들은 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해 주거 공용작업실을 각 조합원들에게 배당했다. 적절한 가격의 임대료를 책정해 공간을 배당하고 공동운영체제로 운영을 시작했고, 2002년 33개의 주거공간과 17개의 사회적 거주공간을 확보했다. 이곳을 주거공간과 작업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두 가지 용도가 모두 가능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캐나다 정부의 공적기금과 국립은행의 25년 장기대출로 2010년에는 지역내 49개의 주거 공용 작업실을 장기계약으로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영국, 런던
예술과 IT 산업의 상생
영국 런던 북부 해크니 구에 위치한 쇼디치는 지역경제 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했다. 지역공동체인 쇼디치 개발신탁과 해크니 협동조합회는 지역 내 사업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환원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쇼디치 지역 사회 조합을 결성해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기존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고, 최근에는 신생 벤처 회사들과 기존의 이민자, 그리고 예술가의 다양한 문화들이 공생하면서 런던의 문화예술 및 정보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