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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유치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그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드님은 산만해서 단 3분도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어머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를 칭찬하시더구나. 의자에 1분도 못 앉아 있던 네가 이제는 3분이나 앉아 있다며, 기특해 하셨어. 다른 엄마들이 모두 나를 부러워하더구나!” 아들은 그 날 평소와 달리 밥투정 한 번 하지 않고, 밥을 두 공기나 뚝딱 비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아드님은 성적이 몹시 안 좋아요. 지능검사를 받아보세요.”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속상했지만, 집에 돌아가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를 믿고 계시더구나. 넌 결코 머리 나쁜 학생이 아니라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겠다고 하셨어”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어두웠던 아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보다 훨씬 착하고 의젓해진 듯했습니다.
아들이 이제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상담을 위해 학교에 찾아간 어머니께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드님의 성적으로 명문고 진학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또 이렇게 전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너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더라. 네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명문고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어.”
아들은 끝내 명문고에 들어갔고,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은 경찰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습니다. 아들은 대학 입학 허가 도장이 찍힌 우편물을 어머니의 손에 쥐어드리며, 엉엉 울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 동안 어머니의 격려와 사랑이 오늘의 저를 만든 거에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한국 최초의 범죄심리 분석관, 일명 범죄 프로파일러이며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용인시 국회의원으로 활동중인 표창원씨에 대한 일화입니다.
정말 칭찬을 통해 삶이 변화된 중요한 일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칭찬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시는 칭찬을 받을 때 우리의 현생과 영원한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이 복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참된 믿음, 놀라운 믿음, 대단한 믿음, 큰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만한 믿음이 없다라고 칭찬하심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믿음이 어떤 믿음인 지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도 이만한 믿음을 가졌다라고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첫째로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3절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오늘 본문에서 백부장은 그 당시 유대지역을 정복하여 다스리고 있던 로마군대의 지휘관입니다. 식민지배를 하고 있던 군대의 통솔자가 식민지의 백성을 찾아온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혹시나 자신의 권력이 예수님에게 부담이 될까라는 생각에서 처음에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식민지배를 하면서 유대땅에 와 있는 군인이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질병도 고쳐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항상 좋은 소문이 퍼지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종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 2절을 보니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 지역에 있던 의사들은 분명 이 종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인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종을 위해 기도해주시면 종은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어떤 해결책을 찾아나설까요?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말고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안에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제임스 무어(James W. Moore) 의‘다 실패했을 때’라는 책에 나오는 사업가 ‘로버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보스턴의 주택단지 개발업자로서 3천 2백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운영하던 큰 사업가였지만, 자금 사정이 악화되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주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살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교회 다니며 눈물을 흘리기는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설교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의지했더니 죽은 딸이 살아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가슴을 방망이로 마구 치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내 사업체가 죽었느냐? 예수님과 같이 안 했기에 죽었구나! 예수님과 같이 한 야이로는 죽은 딸이 살아났다는데, 내 사업체는 왜 죽었는가? 예수님을 떠나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녔기에 죽은 것이로구나!”
로버트는 그 날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자금도 아니고 은행도 아니었습니다. 가지인 자신이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붙어있지 못했던 결과이었습니다. 그는 나무이신 예수만 의지하고 살리라 다시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결단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사업이 잘 풀려져 직원을 50명이나 고용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 그냥 문제는 해결되는데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못 만나고 하나님을 못 만나면서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려운 일, 힘든 일, 내 스스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그 때에라도 하나님, 예수님을 꼭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없어 보일 때에도 당연히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아파야 병원간다는 것도 맞지만 아프지 않아도 한 번 검진받으러 혹은 예방주사맞으러 병원을 찾는다면 건강하게 살겠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겨야 신앙이 생긴다는 것도 맞지만 문제가 생기기 전부터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항상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지전능의 신이시라는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는데 그가 가진 믿음으로 그가 했던 것은 기껏 찾아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막무가내의 거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부정한 거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어떻게 감히 저희 집에 어떻게 누추한 곳에 저런 귀한 분을 모시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백부장이 일단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하기를 예수님같은 위대하신 분은 굳이 환자를 보지 않아도 꼭 바로 앞에서 그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지 않아도 멀리서 명하셔도 병마가 떨어져나가고 자연환경이 바뀌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파도가 잔잔해지고 바람이 멈추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예수님의 말씀속에 있습니다.
남태평양에 가면 피케이언이라고 하는 섬이 있습니다. 그 섬이 200년 전만 해도 무인도였습니다. 영국의 군함이 지나가는데 그 군함에서 선상반란이 일어나서 선원들이 장교들을 다 죽이고 그 배를 탈취하여 어느 무인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섬들의 여자들을 잡아 자기 아내를 삼고 생활을 했습니다. 술을 개발해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도박을 하고 살인을 하며 말할 수 없는 악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섬은 아주 타락한 섬, 지옥같은 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는 예수전도단이라고 불리는 YWAM의 열방대학 창립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그 섬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온 섬의 주민이 55명인데 모두가 다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싸움도 없고 미움도 없고 그렇게 행복한 섬이 되어있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가 물어봤더니 이유가 한 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지옥과 같은 상황에 있을 때 에담스라는 한 사람이 바다에서 떠밀려 온 한 상자를 뒤지다가 성경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자신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섬 주민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섬은 말씀으로 아름다운 섬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이 성경책을 유리함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리함속에 이런 문구를 같이 써넣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지옥과 같은 우리 섬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로 날이 서있는 검처럼 이쪽 저쪽 모든 방향에 날까롭게 잘라내고 큰 능력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 우리의 생애의 모든 문제를 도려내시고 해결하시고 우리의 모든 생활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누가복음 4장 36절입니다.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1871년 가을 무디선생이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이었습니다. 그가 미국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18번째 집회를 하다가 중간에 도무지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어서 중단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자신의 실패를 몹시 자책하고 있었는데 예배가 끝난 후 어느 여인이 그에게 와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브룩클린에서 우리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우리에게 성경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에게 더 없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무디는 지금까지 자기가 사용했던 무익한 방법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을 만난 다음 날 무디는 단지 성경만을 읽으면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무디는 말씀만으로 달콤하고 황홀한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그 자리에 금방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말씀이 승리를 이끄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광채를 가지셨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임하시며 예수님의 능력이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 이 세상의 타락의 문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숙제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해결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만들었다면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은 원래 해적의 나라요 도적들이 들끓는 야만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신사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나 조지 뮬러도 죄악의 밑바닥을 걷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받아 들인 후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내게 임하면 그 말씀으로 내가 가진 영혼의 질병이 해결되고 내속의 육신의 아픔이 해결되고 나의 주위의 사람들간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시고 말씀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런 놀라운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기적을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마지막 셋째로는 민족과 인종, 상관없이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려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9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로마군인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이스라엘중에서도 이정도의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칭찬은 극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과연 백부장의 믿음이 대단한 것일까요?
어쩌면 자기의 재산으로 생각하는 노예를 한 명 잃을까봐 재산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라고 볼 수도 있고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예수님의 수고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려운 걸음해주신 것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에 “이제 이정도만 하시고 기도만 한 번 해주시고 가세요”라고 말한 것이 이런 칭찬을 받을 만 한가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그런 부분을 보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 혹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의지한 것이 바로 큰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군인 백부장은 로마사람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졌더라도 이스라엘사람, 유대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의 공직자로서 로마의 종교인 다종교신앙인 로마정통종교를 따라야하는 사람이 유일신사상으로 신앙을 전파하는 유대교... 특히 이제는 유대교에서도 신흥종교로 불려지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으로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은 유대땅에서 권력자로서 권력과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인데 별 가진 것이 없고 허름한 행색으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에게 나와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정말 자신이 가진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백부장은 자기가 가진 권력, 자신이 가진 재력,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명예를 다 내려놓고 지배계층인 자신이 피지배계층인 자신의 종의 생명을 위해 피지배계층에 속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신앙적인 관점이 아닌 사회적인 관점, 현실속에서 환경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현실적 상황을 뛰어넘어 나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더라도 신앙의 관점이라면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재산, 나의 모든 권력, 나의 모든 명예를 포기하고서라도 예수님께서 따르라고 하신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소유와 나의 자존심, 나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위해 따르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27,28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세리였던 레위도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따르라고 하시니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상황은 그렇지 않는데도 왠지 그럴 것이라는 고집스런 생각을 하게 되는 데서 신앙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하나님 앞에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부끄러워할 것 없는 자로서 자신을 자꾸 높이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죄입니다. 왜 우리가 신앙을 선물이나 상으로만 인식하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지옥 갈 죄인인데 구해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바라며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떳떳한 체하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커다란 교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만은 신앙생활에서 멀리해야 할 가장 커다란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하나님께 대해서조차 자신을 앞세우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눈이 멀어서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망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엄청나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내려놓음’이라는 책의 저자 이용규박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사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지식인입니다. 학위를 끝낸 후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보스턴의 한 교회로부터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받고 가족 모두가 몽골로 가서 얼마 되지 않는 교수월급을 받는 평신도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분은 그 책에서 자신의 유학생활과 몽골 선교사역을 통해 자신이 실천했던 내려놓는 삶, 그리고 그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채워주셨는지 진솔하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하나님이 주인입니다만, 어리석은 인간은 삶이 내 것인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고 풍요를 즐기겠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은 그런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내 것이라 자랑하는 모든 것도,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내었다고 주장하는 것들도 모두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려놓는 것이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려놓지를 못합니다만, 우리가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비우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용규교수님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은 ‘내려놓음’이고,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은혜'는 ‘더 내려놓음’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의 힘과 생각과 나의 뜻을 맞추는 것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소유와 나의 삶 전부를 하나님이 쓰시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채워주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의 인간적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기득권보다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나같은 것은 믿음을 가질 만한 사람이 못돼’라고 말하지 말고 ‘나같은 존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믿음으로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7, 28절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에서 이방인으로써 유대인들의 멸시당하며 살던 가나안의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일단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고치러 다니기도 바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 말을 듣고 불평과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개같은 존재로 취급하며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면서도 행복해한다고 말하며 조금의 부스러기같은 은혜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개와 같은 존재로 취급하면서까지 은혜를 받기 위해 예수님께 매달리는 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떻게 내가 교회를 나가, 어떻게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정도 문제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가 내가 누군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가 비록 권력자라도, 내가 비록 재력가라도, 내가 비록 엄청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주님앞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주님을 찾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 10절에 보시면 백부장의 믿음으로 결국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0절입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참된 믿음은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도 믿음으로 걸어가면 놀라운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안될 것같아보여도 예수님께서 허락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칭찬하시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되고 어려운 일들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면 결과가 반드시 나오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 못했던 곳이지만 가보니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만한 믿음’은 보지 못했어도 경험하지 못했어도 사실 믿겨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 이만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오늘 본문의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엄청난 어려움들이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자존심, 내 지식, 내 인간적 생각, 내가 생각하는 해결의 방법으로 찾아가지 말고 우리 주님께서 해결해주시기를 기대하며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