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2) - 호령봉, 감자밭등
1. 감자밭등에서 바라본 오대산 주릉, 왼쪽이 비로봉
만 겹으로 휘늘어진 등걸 뚫고 지나는데
바윗길이 맑게 개어 구름 한 점 볼 수 없네
꽃이 나를 기다리니 늦게 온들 어떠하랴
산에 신선 머문다면 이곳에서 만나리라
솔이 누운 골짝마다 냇물 소리 들려오고
여라 덮인 봉우리에 빗줄기가 지나가네
노승이 사람 맞는 예절을 알지 못해
수풀 끝에 앉은 채로 종소리를 보내오네
穿去懸藤萬萬重
巖蹊不許白雲封
花能待我何妨晩
山若留仙此可逢
松偃川聲通曲曲
蘿冥雨氣遞峯峯
老僧未解迎人禮
坐送林端縹緲鍾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7
―― 번암 체재공(樊巖 蔡濟恭, 1720~1799), 「포쇄를 끝내고 오대산 중대에 오르다(曬訖陟中臺)」
주) 포쇄는 서적을 점검하고 바람과 햇볕에 쐬어 말리는 일이다. 사관인 체재공은 영감사에서 포쇄하고
중대를 올랐다.
▶ 산행일시 : 2023년 5월 14일(일), 맑음
▶ 산행인원 : 6명(킬문, 더산, 표산, 칼바위, 오플, 악수)
▶ 산행코스 : 상원사 버스종점, 서대 수정암 갈림길, 1,342m봉, 1,404m봉, 한강기맥 주릉, 1,533m봉, 호령봉,
1,430m봉 감자밭등, 호령봉, 1,404m봉, 1,533m봉, 1,342m봉, 서대 수정암 갈림길, 상원사 버스종점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1.0km
▶ 산행시간 : 7시간 50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KTX 열차 타고 진부(오대산)역에 가서, 역사 앞에서 버스 타고 상원사 버스종점으로 감
▶ 올 때 : 상원사 버스종점에서 버스 타고 진부로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진부(오대산)역으로 가서 KTX
열차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8 – 상봉역
08 : 46 – 진부(오대산)역
09 : 42 – 상원사 버스종점, 산행시작
10 : 22 – 능선, 서대사 갈림길
10 : 45 – 1,342m봉
10 : 55 – 1,404m봉
11 : 40 – 한강기맥 주릉 1,533m봉, 안부, 점심( ~ 13 : 00)
13 : 08 – 호령봉(1,566m)
14 : 08 – 감자밭등, 1,430m봉
15 : 00 – 호령봉
15 : 30 – 1,533m봉, 휴식( ~ 15 : 58)
16 : 16 - 1,404m봉
16 : 30 – 1,342m봉
16 : 45 – 서대사 갈림길
17 : 08 – 중대사자암(적멸보궁) 갈림길, 도로
17 : 32 – 상원사 버스종점, 산행종료(17 : 45 – 버스출발)
18 : 20 – 진부, 저녁( ~ 20 : 00)
21 : 21 - 상봉역
2. 상원사 아래 풀숲의 피나물
3. 상원사 가는 길
4. 늦둥이 새끼노루귀
6. 큰구슬붕이
8. 호령봉
9. 얼레지
10. 홀아비바람꽃
11. 큰연령초
지난 5월 1일에 오대산을 가고 오늘 또 간다. 그때와 똑같은 시간에 간다. 오늘은 KTX 열차가 진부(오대산)역에
연착하지 않았다. 곧바로 역사 앞 버스승강장에서 상원사 가는 버스를 탄다. 지난번에는 열차가 연착하기도 했지만
역사 내 화장실을 들르는 바람에 정선 가는 버스(진부터미널에서 상원사 가는 버스로 환승할 수 있다)마저 놓친
경험이 있어 오늘은 열차 내에서 미리 화장실을 들렀다.
버스기사님에게 열차가 연착이라도 하면 좀 기다렸다가 여러 승객들이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실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묻자, 버스기사님은 그런 민원을 자주 듣는다며, 그럴 경우에 여기 길게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님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다고 한다. 이래저래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오늘도 교통 운이 그다지 좋지 않
다. 오늘은 좌석이 말썽이다. 열차 안에서는 내 뒤쪽에 묵호로 놀러간다는 계모임인 듯한 일단의 연만한 남녀 승객
들이 자리했다.
모처럼 여행을 떠나서 그런지 수시로 오가며 간식배급하고 웃고 떠들고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열차승무원이
와서 제발 열차 내에서 조용하시라고 부탁하고, 안내방송까지 하였으나 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여행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나는 모른 척했다. 상봉역에서 진부(오대산)역까지 내내 그랬다. 버스에서도 내 쪽에
중년의 등산객들이 앉았다. 그들의 날카로운 고음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고 상원사 버스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
졌다. 내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상원사 가는 길이 한적하다. 길옆 상원사 아래 풀숲이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지난번에는 홀아비바람꽃과
피나물이 한창이었는데, 그들은 가고 참꽃마리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내 눈이 그때보다 덜 바쁘다. 그러니 우람한
전나무 숲이 보이고, 포말 이는 계류도 들여다보게 된다. 서대 수정암으로 가는 소로를 오른다. 이 길 역시 한적하
다. 그때 시끄럽던 확성기 염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때는 공단에 신고하던 신도와 중이 미워 염불소리가 시끄럽
게 들렸다. 도리어 내 거친 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서대 수정암 갈림길인 능선까지 가파른 오르막 0.6km다. 지능선을 돌고 돈다. 쉬고 있는 신도 두 분을 앞지르게
되었다. 이들도 우리를 국공에 신고한다며 가지 못하게 막을지 몰라 선수 친다. 일보삼배한다. 카메라 꺼내 납작 엎
드린다. 그리고 주변 풀숲에 있는 회리바람꽃과 눈맞춤 한다. 나더러 대체 무슨 꽃을 찍느냐고 묻는다. 회리바람꽃
이라며 이 꽃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그들 눈에는 꽃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다. 서로 수고하신다며 덕담한다.
능선에 올라선다. 서대 수정암 갈림길이다. 수정암은 왼쪽 사면 돌아 0.2km 간다. 거기는 한강의 발원이라는 우통
수(于筒水)가 있다. 우리는 곧장 능선을 간다.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쭉쭉 뻗은 거목들이 볼만하다. 우리 선두 일행
은 어디쯤 갔을까? 부지런히 뒤쫓는다. 1,342m봉을 넘고, 1,404m봉도 넘는다. 저 앞은 한강기맥 주릉이다. 저기까
지 갔나 보다. 안부께에서 그들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서 가서 보면 아무도 없다. 환청이다. 내쳐 주릉
1,533m봉을 오른다.
13. 새끼노루귀
15. 얼레지
16. 나도개감채
주릉에서 이 한 개체만 보았다.
17. 홀아비바람꽃
19. 큰연령초
20. 얼레지
꽃말이 ‘바람난 여인’이다.
22. 호령봉 정상에서 조망, 호령봉 남릉
24. 동피골 건너 호령봉 남동릉, 저 끄트머리 자락에 영감사가 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주릉까지 갈 리가 없다. 지난번에는 두 번이나 휴식시간을 가졌다. 칼바위 님
에게 전화 건다. 다행히 불통지역이 아니다. 일행 모두 내 뒤에 있다. 능선에 올라 휴식하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등로 벗어나 휴식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중뿔나게 앞서갈 일이 아니다. 안부로 뒤돌아 내려가서 그 주변 풀숲에
만발한 홀아비바람꽃을 들여다보며 그들 오기를 기다린다.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킬문 님과 오풀 님이 오고 함께 주릉을 오른다. 완만하지만 긴 오르막이다. 늦둥이 새끼노루귀를 본다. 얼레지가
수대로 꽃술 흔들며 반긴다. 일일이 눈 맞춘다. 그러다보니 주릉이 금방이다. 능선에는 바람이 없어도 대기가 차다.
주릉이지만 잡목 숲이 울창하여 안면 블로킹과 풋 워크, 더킹 모션 구사하며 나아간다. 지난번에 비해 한층 푸르러
진 정면의 호령봉을 한 번 바라보고 그 직전 안부에 내린다. 지난번에 우리가 점심 먹었던 자리다.
홀아비바람꽃 꽃밭이기도 하다. 칼바위 님이 삼겹살 굽는 일습 준비를 해왔다. 모래내 동네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삼겹살이다. 화전놀이 한다. 근처 풀숲에서 곰취와 당귀를 솎아왔다. 밥도 약간씩 넣어 쌈한다. 탁주 한 번 마시고
쌈 한 번 먹는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장진주사(將進酒辭)」 흉내 낸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혀 메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들 어쩌리”
자유산행이다. 1,533m봉 삼거리에서 16시에 모이기로 한다. 나는 우리 일행 개개인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호령봉 정상을 올라 사방 둘러 조망을 즐기고 나서 감자밭등을 갈 예정이다. 산길은 온통 꽃길이다. 홀아비바
람꽃과 얼레지 천지다. 그들 들여다보느라 호령봉 오르는 길이 더디다. 호령봉. 옛 이름은 장령산이다.
김장호(金長好)의 『韓國名山記』중 ‘오대산(五臺山)’ 일부 내용이다.
“증보문헌비고에도 ‘만월, 기린, 장령, 상왕, 지로의 5대가 있으므로 산이름을 오대산이라고 한다’ 했으니, (…) 그
이름들 가운데 오늘날의 것과 일치하는 것은 상왕산뿐이다. (…)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봉우리 모양새에서 짐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굳이 말하자면 만월은 달덩이처럼 둥그랗게 솟은 모양이요, 장령은 글자 그대로 길다란
영마루, 또 지로나 풍로는 신선로처럼 오롯하게 차오른 덩치, 그리고 상왕은 무뚝한 코끼리 머리를 연상케 되니,
(…) 그 만월산이 오늘날 동대산, 장령산이 호령봉, 상왕산이 상왕봉, 지로산이 비로봉으로 바뀌게 내력은 더구나
감감하다.”
25. 앞 왼쪽은 동대산, 멀리는 황병산
26. 감자밭등 가는 길
27. 감자밭등에서 바라본 오대산 주릉, 맨 왼쪽이 비로봉이다.
28. 호령봉
29. 홀아비바람꽃
32. 얼레지
33. 호령봉 남릉
34. 호령봉 정상의 얼레지
35. 큰연령초
꽃이 유난히 크다.
36. 얼레지
또한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오대산기(五臺山記)」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상왕산 서남쪽이 장령봉(長嶺峯)이고 그 위가 서대(西臺)이다. 서대에는 신정(神井)에서 샘물을 길어오는데 이를
우통수(于筒水)라고 이르는바, 한송정(寒松亭)의 선정(仙井)과 함께 영험 있는 샘으로 알려져 있다.
장령봉 동남쪽이 기린봉(麒麟峯)이고 그 위가 남대(南臺)이다. 그 남쪽 기슭에 영감사(靈鑑寺)가 있는데, 이곳에
사책(史冊)을 보관하고 있다. 상원사(上院寺)는 지로봉 남쪽 기슭에 있으니, 산중의 아름다운 사찰이다. 절의 동쪽
구석에 큰 나무가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붉고 잎은 회(檜)나무와 비슷하다. 서리가 내리면 잎이 시드는데 노삼(老
杉)이라 부르며, 비파(枇杷)나무라고도 한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건너편 계방산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고 소계방산 너머 문암산과 설악산 연봉은 아예 보이지 않
는다. 감자밭등 가는 길. 또 잡목과 된통 씨름한다. 아치형 나뭇가지는 허리 구부려 지난다. 야트막한 안부는 광활한
초원이다. 감자밭등 1,430m봉은 딱히 길이 보이지 않고 넙데데한 사면을 쓸어 오른다. 다시 뒤돌아올 것이라 배낭
을 벗어놓고 간다. 감자밭등에서 바라보는 오대산 연릉 연봉이 푸짐하고 부드럽다.
한동안 배낭을 찾느라 애먹는다. 워낙 너른 풀숲의 사면이라 배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면 한복판에 놓아둔
줄로 알았는데 뒤돌아 와서 보니 구석진 곳이다. 배낭이 무거워졌다. 호령봉을 다시 오른다. 방금 내려온 길을 찾지
못하고 잡목 숲을 헤맨다. 에라! 하고 냅다 일로직등 했더니 호령봉을 한참 벗어난 그 오른쪽 능선이다. 호령봉에서
때마침 킬문 님을 만난다. 함께 약속 장소인 1,533m봉 삼거리를 향한다. 시간은 넉넉하다.
1,533m봉 삼거리. 비로봉을 볼 수 있을까 그 쪽으로 가본다. 안부까지 내려가도록 그 전위봉인 1,512m봉에 가렸
다. 약속시간인 16시에 칼바위 님과 표산 님이 당도하지 못한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것, 어련히 오시랴 하고
간다. 온 길 그대로 밟는다. 내리는 길은 더욱 부드럽다. 뒤에 오는 칼바위 님은 1,404m봉 직전 ┫자 갈림길 안부에
서 왼쪽 가래터골로 내렸다. 그 길이 사납지만 더 빨랐다. 칼바위 님이 먼저 내려왔다.
상원사 주차장이다. 고개 들어 둘러보는 산릉이 아침보다 더 푸르다.
당대(唐代)의 고승인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의 게송이라고 한다. 우리의 행각이 흰 구름이다.
청산은 원래 움직이지 않는데
흰 구름은 자유로이 가고 오는구나
靑山元不動
白雲自去來
37. 얼레지
38. 홀아비바람꽃
39. 서대 수정암 갈림길
40. 멀리 산중턱에 보이는 절집이 중대 사자암
41. 상원사계곡
42. 참꽃마리
48. 피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