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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과 인내
요즘처럼 이혼과 자살이 급증하는 때는 과거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적인 문제를 비관하여 온 가족이 강물에 투신하므로, 바깥에서 친구들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놀고 있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부모님들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
이런 일은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내가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인내와 끈기가 사라 진지 오래되었다. 가마솥을 덥히기 위한 인내와 기다림은 짜증과 조바심으로 대체되고, 사람들은 ‘냄비’체질로 바뀌어버렸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극기가 사라지고 있다. 즉,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는 ‘냄비 근성’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도시인들에게는 끈기와 인내가 더 많이 부족하다. 교통신호등에서 신호가 바뀐 뒤 잠시만 지체하면, 참지 못하고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욕설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부부나 자녀들 사이에서, 또 친구들과, 직장 또는 학교 등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마치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내가 부족함으로 인해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여 바로 잡아야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가 바로 설 것이며,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인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인내에 대한 우리의 태도
1. 인내는 결단이다.
인내는 각 개인의 정신분야에서 선택하는 결심이라 할 수 있다. 참아야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내는 결단을 필요로 하며, 의지가 내포된다. 혹 결단으로 인해서 마음이 쓰라리고, 금전적인 피해가 있고,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정신력을 갖게 하는 것이 ‘인내’이다.
성경 다니엘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으로 끌려온 포로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을 위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이 일에 있어서 결단을 내렸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셨을 뿐 아니라 크게 사용하셨다.
2. ‘기다림’은 삶의 일부분이다.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뽑아낼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기다림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누에에서 가치 있는 비단실을 몸 속에 간직한 존재로 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통과 과정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알에서 유충을 거쳐 5령까지 4번의 탈피과정과 다섯 번의 잠을 자야만 한다. 그리고 난 후에도 7-8일의 기다림 끝에 실을 뽑을 수 있는 누에고치가 되는 것이다. 그 기다림 안에서 조급함과 때로는 짜증이 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름답고 찬란한 비단이 만들 어 질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가치 있는 사람으로 쓰여지기 위해서는 인내와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만 한다. 여러 가지 허물을 벗고 탈피하는 과정은 고통과 인내를 수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없이는 결코 아름다운 비단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누에고치가 되려면 제일먼저 알에서 깨어나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쓰여지기 위해서는 먼저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내 자신이 알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인생은 죽는 것이다. 알 안에서는 내 자신밖에 볼 수 없다. 그 안에서는 오로지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주변의 시선과 환경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알 안에 있는 나 자신만 생각한다. 먼저 인내를 가지려면 사고의 중심인 알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중심이 아니고 상대방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신 즉, ‘역지사지’의 정신이 우리 속에 있을 때, 보다 쉽게 인내하고 극기할 수 있다.
4. 붙들 수 있는 만큼 오래 붙들어라.
지혜로운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인내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라던가 턱걸이를 할 때면 금새 손에 물집이 잡혀 쓰라리고 팔 근육이 아파온다. 이를 악물고 버텨보지만 힘이 모자라는 두 팔은 채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몸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계속되는 연습과 요령은, 처음보다 분명히 더 오래 붙들어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쉽게 포기한다면 처음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리 만무하다.
천재도 ‘인내’라는 위대한 자질 외에는 더 가진 것이 없다. 이 인내는 물질물명의 발달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가정과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라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았던 발명왕 에디슨도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발명품을 개발하였다. 그는 노년에도 “나는 발명을 계속할 돈을 손에 넣기 위해 항상 발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끊임없이 창조 활동을 계속했으며, 그의 말에서 우리는 발명가의 인내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우리는 인내와 끈기라는 무기를 꼭 챙겨야 한다.
인내의 연습
1. 위험을 정확히 분석해야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옛 고사성어가 있다. 이 뜻은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알면 언제나 이긴다”라는 뜻이다. 요즘은 정치계 뿐만 아니라 기업들과 스포츠 선수들, 그리고 국가들 간에도 이기기 위해 서로에 관한 치열한 분석전이 계속되고 있다.
인내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자신 속에 있는 연약한 부분과 위험성이 있는 부분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 삶의 전쟁에 나가게 된다면 인내에 대한 우리의 실패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만일 자녀들이나 남편 혹은 아내에게 자주 화를 내는 성질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내하는 면에서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인내하는 사람은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분노의 길이 아닌 분별의 길을 걸어야 한다.
2. “바로 지금 이순간, 당신은 옳은가?” 스스로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것이 부부간의 문제이거나 자녀, 혹은 직장에서 생기는 문제이거나를 불문하고 여러분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라. 육체의 생각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더 세밀한 양심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해 보라. 분석을 마쳤다면 냉정하고 객관성 있게 자문해보아야 한다. “지금 나는 옳은가?” 여러분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남들에게 이해를 바라고 정당화 하려는 것은 진실되지 못하다. 이러한 행동은 잠시 잠깐이며, 임기응변 식으로 지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더러, 앞으로 주님 앞에서는 이에 대한 명백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3. 조급하게 방아쇠를 당기지 마라.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한번의 행동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번의 조급함이 우리의 일생을 조급함으로 꼴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행동의 하나하나는 우리의 성품을 형성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노인 소매치기 일당이 검거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노년의 할아버지 소매치기들은, 젊은 시절의 잘못된 행동이 평생 머리가 희어지기까지도 그들의 운명을 얽어 맸던 것이다.
우리의 가정생활에서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성품을 꼴 짓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들에게 조급한 말과 행동을 함으로, 거둘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항상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것은 참지 못한 조급함에서 일어난다. 대부분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놓고,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에 일반적인 공통된 후회는 ‘좀 더 참았으면’하는 말들을 한다. 조급한 말이나 행동, 짜증과 신경질 섞인 표현 등은 우리의 생활에서 계속적으로 다듬어 져야 한다. 인내는 이러한 것들을 참아내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매 순간 말과 행동의 방아쇠를 급하게 당기지 말자. 우리의 일상의 말과 행동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4. 아이들에게 ‘태풍경보’를 발령하라
특히 가정은 우리 본연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이다. 어른들은 특히 아이들이 마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조금만 성가시게 하면 참지 못하고 심하게 꾸중을 한다. 그리고 후에는 아이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 쉽사리 아이들과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들의 모습이다.
자녀들에게 인내와 극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인내와 극기를 바라겠는가? 자녀들에게 인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인내를 바란다면 이는 이기적인 생각이며 이치게 맞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반항하기 쉬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가? 폭력적인 오락게임과 각종 자극성 음식, 인스턴트 식품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을 어떻게 올바로 교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용서와 관용의 정신은 우리의 인내에 힘을 더해 준다. 그리고 더 성숙한 열매를 우리의 삶에 맺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되 잘못된 점이 있거든 일단 ‘태풍경보’를 발령하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늘 그들에게 “너희가 내 계명을 지켜 순종하면...”이라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전제조건을 다신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순서이다. 그들에게 큰 고난을 허락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멸망하시기 전, 노아를 통해 큰 방주를 120년 동안 지으면서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꾸준히 책망하시고 경고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노여움으로 폭발하기 전에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을 취급하신 면들을 상기해 보자. 그리고 이를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해 보자. 한결 우리의 말과 행동이 부드러워 질 것이다. 하늘과 연합하여 위로부터 지혜를 받아 인내하면,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5. 아침마다 그분께 당신의 주파수를 맞춰라
인간은 스스로 참을 수 있는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화를 내고 자기 성질대로 못해서 씩씩거리다가 인내의 고리를 놓아 버리고 마는 경우를 본다.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도 끝까지 참지 못하고 그만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며, 잘 참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참지 못해서 지금까지 그토록 참아왔던 일들이 수포로 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오래 참는 인내의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받지 못하면 절대로 우리 안에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인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자는 절대로 조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에는 조급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지금 이순간까지 우리가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참는다”(고전13:4)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니라면 우리 가운데 그 어떤 사람도 지금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항상 덤비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조급하시지 않는다. 조급함과 조바심, 신경질, 짜증은 하나님의 정신과 반대되는 사단의 정신이다. 인간은 때로 하나님의 뜻이 당장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오해하기도 하며, 조급한 성질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하기도 하고, 수 없이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속되게 한다. 그러나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내를 소유하기 위하여 하늘의 능력을 얻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기도와 말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의 조급한 마음, 짜증과 신경질 부리기 쉬운 성향, 그리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자.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길 힘을 주실 수 있다. 말씀과 기도로 배우자.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께 드리는 기도이다. 매일 아침마다,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하늘에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 신경질, 조급함, 조바심을 쉽게 나타내지 않고 하늘의 분위기를 우리 주변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인내
예수님 재림 전,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성경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연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 잘못이 바로 잡히거나 행동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품성을 형성하는 일은 하루나 일년의 과업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계속적인 인내의 활동이 없으면, 거룩한 생애에서의 진보가 있을 수 없고 승리자의 면류관도 얻을 수 없다. 조급하고 주의성 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순간에 우리 자신을 악의 세력 아래 둘 수 있다. 그 악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성결한 생애에 들어가는 데는 순간 이상이 요구된다. 목적을 설정하고 일을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성취시키는 데는 노력과 시간과 인내와 오래 참음과 희생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싸움과 전진의 생애이다. 이 싸움에는 면제가 없다. 계속적이고 끈기 있는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육신적인 마음의 악한 성향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노력과 극기와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무한한 가치와 정비례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신 것처럼 인내하고,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함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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