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1916-1998)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경상북도 경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경상남도 밀양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우석대학과 이화여대에서 교수, 연세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4.19 당시에 학원분규로 물러났다. 1972년에 연세대 교수로 돌아와서 1981년에 정년 퇴임했다.
이후 단국대학 초빙교수(1981∼1985)와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교수(1986∼96)를 역임한 후에, 1998년 9월 16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두진은 1939년 문예지 《문장》에 《향현》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 등과 함께 ‘청록파(靑鹿派)’의 한 사람이다. 8·15광복 후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좌익계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맞서 김동리(金東里)·조연현(趙演鉉)·서정주(徐廷柱) 등과 함께 우익진영에 서서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결성에 참여했고, 이어 1949년 한국문학회협회에도 가담하여 시분과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의 윤리의식과 강렬한 민주적 민족주의자로서 말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여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남겼다.
처음에는 자연을 주제로 한 시를 썼으나 이후에는 광복의 감격과 생명감 있는 시를 썼다. 말년에는 남한강 등지에서 직접 수석(水石)을 수집하면서 쓴 『수석열전』과 『수석연가(水石戀歌)』 등의 시편들을 통해 "그의 시의 핵(核)이기도 한 시원적(始原的) 생명을 노래"했다. 이는 자연의 결정체인 수석을 통해 "수석이 고요히 일러주는 내밀(內密)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동시에 시인 자신도 돌을 향해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일종의 자연과의 교감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권영민 글>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시적 자아와 거리를 두고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자연은 언제나 시적 자아와 동일시된다. 때로는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주제로서의 자아 사이에 갈들이 야기되기도 하지만 시적 파탄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친화력에 의해 대상과 주체가 하나가 되고 있으며, 거기에서 오는 영원한 생명이 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시들은 존재의 심연을 찾아가는 기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생명에의 경외감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적 정서의 내면화하는 데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박두진의 시가 자연을 노래하기보다 현실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시집 ‘거미와 성좌(1961)’., 인간밀림(1963)‘에서 확인된다.
4.19와 5.16을 지켜보면서 현실의 격변을 비상한 심정으로 노래한다.
(*당최 애러버서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안 되네요. 누가 쉽게 설명해주시면 ---)
아세아 자유문학상과 서울시 문화상, 삼일 문화상, 예술원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 《해》, 《오도》, 《청록집》, 《거미와 성좌》, 《수석열전》, 《박두진 문학전집》 등이 있다.
첫댓글 선생님!...
어제는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었어 참 기뻤습니다...
올려주시는 시들로 좋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