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의 매운맛이 순해지는 시간/ 김남숙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오늘은 고추장을 담그는 날이다. 주방 한가운데 커다란 함지박을 들여놓고 밤새 달여놓은 엿기름을 부은 후, 고춧가루와 찹쌀가루를 넣고 휘저었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섞여 붉게 부풀어 오른 고추장을 시어머님이 쓰시던 항아리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 두었다. 나는 고추장 항아리를 행주질하며 이제야 비로소 삼십 년 넘게 고추장을 담가주시던 어머님의 수고로움을 생각한다.
어머님은 손수 농사를 지어 고추장에 들어갈 고추, 콩, 보리와 찹쌀을 준비했다. 메주를 만들어 처마 밑에 걸어두고 보리에 싹을 냈다. 설 명절이 지나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장 담그는 날이 오면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를 말끔하게 청소하고 몸단장을 하셨다. 뒤란의 화덕 위에 솥을 올려 고아진 찹쌀 엿이 식으면 미리 준비해 놓은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를 넣고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재료들이 잘 섞이게 휘저었다. 매운맛과 단맛을 내는 재료들이 뒤섞인 고추장은 점점 검붉은 색으로 퉁퉁하게 부풀어 올랐다. 장독대에서 고추장이 담긴 항아리를 행주질하는 어머님은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듯 경건해 보였다. 성난 고추장은 항아리 안에서 햇볕을 받아 서로에게 스며들며 서서히 익어갔다.
고추장을 만들 때 고춧가루가 조금만 덜 들어가도 맛이 밍밍해지고 너무 많이 들어가면 메주와 엿기름의 구수한 맛이 숨어버린다. 또한, 엿기름의 온기가 남아 있을 때 고춧가루를 넣으면 달콤한 고추장이 만들어지고 차게 식었을 때 넣으면 고추장의 매운맛이 살아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맵고 달콤하고 구수한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매운맛이 드러나기도 하고 구수한 맛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머님은 한결같이 깊은 맛이 나는 고추장을 담그면서도 유독 나에게는 매운맛을 내보이셨다.
결혼 후 한동안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빚을 짊어진 남편이 시댁 생활비까지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유난히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친 나는 계장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복숭아 과수원에 갔다. 뽀얀 솜털이 가시지 않은 백도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어른 주먹 두 개를 포개놓은 듯 알이 굵은 백도 한 바구니를 금세 비우자 계장님은 복숭아 한 자루를 오토바이에 싣고 버스에 올려주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어머님께서 맛있게 드시리라 생각하며 복숭아 자루를 머리에 이고 안마당에 들어섰다.
어머님은 큰아이를 업고 마루 끝에 서 계셨다. 산달이 다되어 배가 부른 내가 자루를 내려달라고 머리를 내밀자 어머님은 자루를 바닥으로 팽개쳤다. 자루가 풀어지고 안마당에 ‘떼구르르’ 복숭아가 가득 흩어지면서 살이 터지고 뭉개졌다. 어머님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데리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소쿠리에 으깨진 복숭아를 주워 담은 후 성한 것을 골라 씻어 안방에 들이고 부엌으로 나왔다. 무쇠솥에 밥을 안치고 불을 때면서도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다.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소홀히 할까 싶어 며느리를 다그쳤던 어머님도 아이를 낳고 누워있는 며느리는 극진하게 돌봐주었다. 귀한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하루 여섯 번 따로 끓여 주었다. 미역국은 꿀맛이었다. 내가 국물까지 비우는 동안 어머님은 고추장 항아리를 행주질하던 경건한 모습으로 곁을 지키셨다. 삼칠일이 지나 일상생활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매운맛으로 변했으나 이미 어머님의 속정을 알아버린 나는 견딜만했다.
어머님의 엿기름 온도는 처음부터 싸늘했던 것이 아니었다. 족두리를 머리에 쓰고 수줍게 미소짓고 있는 어머님의 결혼식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두 분은 보기 드문 선남선녀의 외모를 보이셨다. 젊은 아버님은 아기를 낳고 누운 어머님에게 미역국을 손수 떠 넣어 드리고서야 출근할 정도로 자상하셨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거듭 실패하자 바깥으로 떠돌며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올망졸망한 자식들의 눈망울이 자리에 몸져누운 어머님을 일으켜 세웠다. 야리야리한 어머님의 손은 오랜 들일로 갈퀴처럼 거칠고 단단해졌다. 긴 세월, 시베리아 벌판처럼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헸던 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시렸을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비어가는 쌀독을 걱정하느라 식어버린 엿기름이 어머님의 고추장에 매운맛을 더했을 것이다. 칠십 중반을 훌쩍 넘기자 아버님은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거들었다. 심장이 약해 며칠씩 읍내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는데 퇴원 전날 밤에 목욕을 마치고 병실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온갖 지청구를 해도 묵묵히 들어주던 남편의 빈자리를 견딜 수 없었을까. 가슴속 빙하가 녹아내리는 듯 휘청거리던 어머님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5년을 요양원 침대에 누워 지내셨다. 고단한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어머님은 매운맛이 사라진 고추장처럼 점점 순해지셨다. 평소에 좋아하던 녹두죽을 쑤어가서 떠 넣어 드리면 ‘맛있다, 고맙다’하고 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면서 내 안의 얼음도 차츰 녹아내렸다.
어머님이 떠나시고 세 번째 봄이 찾아왔다. 어머님의 산소는 아버님과 함께 금강이 마주 보이는 양지바른 공원묘지에 있다. 지난 주말에는 당신이 귀애하던 손자가 증손녀를 데리고 산소를 찾아왔다. 어머님의 미소를 닮은 따사로운 봄 햇살이 봉분 위로 아롱거리며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문득, 어머님은 먼저 떠나신 아버님을 만나기 전에 고운 신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맛이 사라진 유순한 모습으로 요양원에서 지낸 5년은 응어리진 내 마음이 풀리기에도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부드러운 봄 햇볕이 뚜껑을 열어둔 고추장 항아리에 따사롭게 내리쪼인다. 서너 달 지나 잘 익은 고추장에는 어떤 맛이 들어 있을까? 나는 행주로 말끔하게 닦아준 항아리 옆에 앉아 장독대를 지키던 어머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