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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나의 노래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네 오늘은 2월 마지막 제 주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주 한 주간이 굉장히 소중합니다. 세월이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우리가 가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지만 우리는 매일 또 매주마다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나아가야 될 줄을 믿습니다. 가치 있는 시간이란 무엇일까를 잠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나름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을 압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 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거룩한 주일 이 주일은 우리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이요. 이 거룩한 주일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복을 주신 마 약속하신 귀한 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가장 귀하고 소중한 줄을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 거룩한 주일 주의 전화에 오신 여러분들이 가장 귀하고 행복한 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요? 가롯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정말 받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 그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어떻게 저런 사람 다 있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성경에 그 이름이 나올까 그런 부분도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본받는 것도 맞습니다만 우리 스스로가 좋지 않은 사람이 나올 때에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어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 잘난 사람 안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가롯유다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우리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입니다만 불행하게도 그는 예수님을 팔아버린 그런 불쌍한 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시간 우리 가롯 유다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에 마태복음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많이 받고 죽임을 당해야 될 것이고, 제3별에 내가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몇 차례 하셨습니다. 그때 어느 날 베드로가 이 말을 듣자 손사래를 치면서 주님 절대로 주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아주 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 하셨는지 아십니까?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베드로를 향해서 뭐라고 했다고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아 여러 베드로가 다른 사람도 아니잖아요. 예수님의 제자 중에 수제자 수제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베드로에게 사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사탄일까요? 이것은 사탄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탄의 유혹에 지금 흔들리고 넘어졌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역시 베드로처럼 사탄의 유혹을 받아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였고 가롯 유다였습니다. 가롯 유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본문 27절에 이런 말씀 27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뭐 한지라 들어간지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이 가롯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배반자로 태어났다기보다는 그의 욕심과 성품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배반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게 당연한 해석일 것입니다. 이 베드로도 한순간 사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 미혹을 받아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넘어갈 수도 있고요. 여러분들도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지금 예수님은 심히 괴로워하는 까닭은 이 유다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배반자이기는 합니다만 이 사랑하는 제자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배반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베반자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자기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가롯 유다의 성품이 좋지 않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천성이 고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성이 아주 야비한 사람도 있습니다. 좀 우락부락하게 생겨 보이지만 마음이 여리고 인정이 많고 착한 사람도 참 많습니다. 좀 다혈질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천성이 착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면 착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근데 실제로 굉장히 선하고 착합니다.
반면에 아주 부드럽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하는 것도 아주 착해 보이고 선량해 보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착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이중적이고 욕심이 가득하고 야비하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보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뭘 모른다고요? 사람처럼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가롯유다도 그리 좋은 성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다는 이중적이고 아주 가증스럽고 야비한 사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44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아멘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뭐 하는 자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이 말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특히 잡겠다 계획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가롯유다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주 야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예수님을 체포할 계획을 다 잡았습니다.
내가 입 맞추는 자가 예수다. 내가 포옹하고 입을 맞출 것이다. 그때 그 예수를 체포해라.
여러분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롯 유다가 겉으로는 예수님께 포옹을 하면서 입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본심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정말 다정하게 입맞추면서 그렇게 나아갔지만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잡기 위한 미끼였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저 사람이 예수다. 저 사람 잡아라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가롯 유다는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번호를 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주도 면밀한 사람 저도 제가 좋아하지 않는 성격 중에 이 주도 면밀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그냥 우락부락해갖고 하다 보면 그렇게 실수를 해도 잘 넘어가는데, 이 주도 면밀한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 생각대로 다 맞아야 되거든요. 굉장히 다르고 굉장히 대화에 힘이 든 상태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성품을 또 밝혀낸 사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서 옥합을 깨뜨려서 향기를 부은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값을 따지면 헐값에 팔더라도 300대나 되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때 유다가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을 팔아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 왜 쓸데없이 낭비를 하느냐 유다의 이 말을 보면 유다는 굉장히 착하고 남을 잘 도와주고 선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유다의 성품에 대해서 아주 잘 나오는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의 말씀을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자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그는 무엇이라고요? 도둑이라 돈 개를 맞고 거기에 넣는 것을 뭐 하이라 훔쳐간다. 외형적으로 보면 천사인데 그 내면은 무서운 악마가 있습니다. 외형으로 보면 아름다운데 내면은 썩어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자가 되고 만 것이죠.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자로 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했겠습니까?
반면에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조차 했겠습니까? 본인도 아마 상상을 못했을 겁니다. 죽으면 죽었지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를 맹세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그런 확신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위협을 받고 궁지에 몰리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계집종 앞에서 벌벌 떨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계속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였습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사실 우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베드로 같은 분이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역시 베드로처럼 가롯유다처럼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가 말씀 전하기 서두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 특별히 잘난 사람도 없고 안 그런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안 그럴 거야. 나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
여러분 그런 사람 있을까요? 말은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그런 사람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지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넘어져도 나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베드로의 문제, 가롯유다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의 문제라는 사실을 여러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자 12명의 제자들이 앉아 있는 분위기가 싸합니다. 12명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팔자라고 했으니까 굉장히 분위기가 음악하죠. 그중에는 어떤 분은 내가 예수님의 팔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대부분 제자들은 자기는 넣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예수님 저놈인가 이놈인가 막 살피고 있었을 겁니다. 나는 아니지 아마 저놈이 맞을 거야 자꾸 생각하고 예측도 합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서로가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치다 보니까 서로가 의심하고 분열이 되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22절의 말씀 시작
아멘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뭐 하더라 의심하더라 상대방을 때려봅니다. 누구 하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건강한 공동체는요. 건강한 공동체는 서로를 탓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자신의 허물,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줄을 압니다.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건강한 공동체는 내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좀 더 관심을 갖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기도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건강한 공동체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공동체는 항상 째려봅니다.
이 문제가 너로 인해서 발생할 거야 니가 문제야
여러분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굉장히 혼란 속에 있습니다. 좌우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수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나라가 화합할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좌가 되든 무가 되든 너무 한쪽으로 가다 보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우리 믿는 성도들은 정말 이 나라가 화합할 수 있도록 잘 되도록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중심이어야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뭐라고요? 마이리라. 예수님은 12 제자들 모두 다 선택을 했습니다.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는 많은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 천국에 가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게 깨어서 헌신하며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면서 회개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요한이 물어봅니다.
주님 그 사람 누굽니까? 주님을 팔 자가 누구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26절에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면서 유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27절에 보면 니가 하는 일을 속히 해라.
그렇다면 유다는 그 순간 주님 잘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예수님을 팔자가 되었다는 사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만약 이 순간에 여러분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다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분명히 회개를 했을 겁니다. 할렐루야 벌써 이미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주시면서 기회를 줬잖아요. 그런데 가롯 유다는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지 않습니다. 우리 30절 말씀을 우리 30절의 말씀 시작.
아멘 유다가 그 조각을 밟고 곧 나가니 뭐라고요? 밤이르라 이 밤이라는 것은 어떤 물리적인 밤이 아니라 절망의 밤, 고통의 밤, 돌아올 수 없는 밤, 캄캄한 밤, 길이 보이지 않는 밤 결국 그 자리를 박차고 가룟유다는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유혹을 받을 수 있고 시험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베드로도, 유다도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그 자리에 남자고 드려야지요. 솔직해져야 되죠. 베드로는 회개하며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박차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유다가 그 순간 주님께 회개하였더라면, 유다가 그 순간 주님께 회개하였더라면 주님은 반드시 용서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혹 기분 나쁘다고 속상하다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나가면 안 된다. 나가게 되면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애교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가롯유다가 되어서는 안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 성도가 가야 될 곳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온다라고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이 가야 될 곳은 어디입니까? 주님의 품인 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모든 부위에서 깨끗게 하시느니라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께서 다 치유해 주시고 고쳐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회개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