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묘에 능소화를
"구중 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아 님 고이는 그날 밤이 차마 그려 치마폭에 목메는가 "
" 대전 마마 뫼시던 날에 칠보단장 화사하던 장희빈아 버림받은 푸른한에 흐느껴서 화관마저 떨리는가 " 서오릉을 거닐며 목청껏 불러댄다. 가사와 곡조는 제 멋대로 들쑥날쑥 자작극이다. 정확히 60년 전 1961년도에 황금심이가 부른 라디오 연속극 장희빈의 주제가이니 어쩌겠는가.
260년의 세월이 흐른 1961년도에 장희빈이 라디오 드라마에 등장한다. 1951년 1.4후퇴로 이북에서 피난 나온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TV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고 라디오도 언감생심이다. 하루 하루에 먹기 위해 사는 세월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장희빈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을 유선방송으로 처음 접한다. 지금의 노트북 보다도 작은 나무상자가 라디오인 셈이다. 금호동 시장에 라디오 가게에서 집집마다 유선으로 라디오 방송을 보내주는 것이다. 다이얼도 없고 보내주는대로 시간에 맞춰 청취하는 때이다. 온 가족이 숨을 죽이고 천정 가까이 매달린 나무상자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구성지면서도 애잖하게 떨리듯 터져 나오는 주제곡이 가슴을 파고든다. 극장무대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육성으로 부르는 목소리가 뛰어나서 '꾀꼬리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붙는다. 그의 이름은 바로 황금심(黃琴心)이다.
주인공인 장희빈을 오늘 따라 보고프고 그립기도 하다. 무슨 연유일까.
6호선 구산역에서 전철을 하차하여 서오릉으로 향한다. 2021년 7월 10일(토)이다. 오늘의 일기예보도 30℃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날이다.
서오릉(西五陵)은 한양(서울)을 중심으로 서쪽에 다섯 기의 능(陵)이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세조 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약(病弱)으로 20세 나이에 세상을 뜬다. 조선 9대 성종이 덕종(德宗)으로 추존(推尊)된다.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敬陵)과 8대 예종과 인순왕후의 창릉(昌陵), 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21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을 일컫는다.
그 밖에 2기의 원(園)과 1기의 묘(墓)가 있다. 1기의 묘가 바로 20대 경종의 어머니 장씨의 대빈묘(장희빈)가 있다. 이처럼 서오릉 묘역에는 능은 다섯이라 하지만 무덤은 13개가 있다. 릉(陵,언덕릉)은 언덕을 나타내는 뜻이나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을 말한다. 한 개의 임금 무덤을 조성하려면 자그마한 능선을 만들어야 한다. 동원된 인원과 시간과 백성의 세금이 엄청난 금액이 투자되는 것이다. 먹을 것도 없이 스러져 간 수 많은 백성들이 원한의 눈을 지금도 부릅뜨고 있지 않을까. 안스럽고 비통한 마음도 든다. 네명의 노객들은 배낭에 안동소주와 몇가지 안주로 숲속에서 즐기는 순간도 갖는다.
장희빈은 조선 19대 숙종 때의 한 명의 궁녀이다. 궁녀는 임금을 비롯하여 왕족과 사관대작들의 손발이 되어 한 마디로 성(性, SEX)의 노리개이며 노예(奴隸)들이나 다름없다. 상왕이나 대비마마 원처인 왕비가 있어도 그것은 불법이 아닌 그 시대의 관습법과 같은 것이다.
숙종의 첫번쨰 왕비 인경왕후는 천연두에 걸려서 사망을 한다. 슬하에 두 딸도 어린 나이에 엄마 뒤를 이어 하늘나라로 떠난다. 그 당시에 연세한강병원 약제실에 근무하는 무무 최약사를 찾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천연두는 말끔히 완치되고 세자인 아들도 출산하지 않았을까. 세월을 원망한들 그 무슨 소용인가.
숙종은 이 즈음에 숫처녀 궁녀인 장옥정(장희빈)의 사랑의 늪에 빠진다. 두번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있지만 세자가 될 아들도 없으니 안중에도 없다. 매일 밤마다 장옥정 궁녀방을 드나들 뿐이다. 오랫동안 아들이 없다가 궁녀 장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전갈을 받은 숙종은 한달음에 장희빈과 아들을 끌어 안는다. 어의(御衣)도 신발도 벗을 새가 없다. 이 때 숙종(14년)의 나이는 27세이며 희빈이도 같은 또래가 아닌가. " 옥정아 ! 영원한 내 사랑 당신뿐이야, 당신은 유일한 내 아내로 왕비가 되는 거야 "라는 있는 말 없는 말을 쏟아내며 옆차기 앞차기 뒷차기 허겁지겁 욕정(欲情)을 만끽한다.
" 짐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장희빈을 왕비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노라 "라는 숙종의 어명이 떨어진다. " 전하(殿下) ! 인현왕후가 아직 쌩쌩한 20대로 앞으로 얼마든지 세자를 낳을 수 있사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 양 옆으로 도열한 문무관 신하들이 구걸하듯이 읍소를 하고 있다. " 대가리에 아직 피도 마르지도 않은 녀석이 저걸 그냥 어이그 ~~~ " 신하들은 임금의 관(冠)을 닮은 심장의 관상동맥이 찢어져 터질 것만 같은 표정들이다. 하지만 허리를 굽실대며 입막음으로 침묵할 밖에 도리가 없다. 숙종은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이다. 안하무인 독단으로 남인의 힘을 빌려 세자를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한다. 이어 민비를 폐한 뒤 장희빈을 왕비로 올리고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을 등용시킨다. 이를 기사환국(己巳還局)이라 한다.
숙종이 14세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그래도 45년간 재위하며 커다란 공든 탑도 많이 세운 공적도 있다. 뒷면에는 인간 이하의 독단의 무소불위의 칼자루를 휘두른다. 숙종의 14년 동안 경신환국(서인) 기사환국(남인) 갑술환국(서인) 3차레 환국정치로 50여명의 신하들이 처형된다.
숙종의 인현왕후와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은 숙종의 사약을 받고 장희빈은 1701년도에 세상을 뜬다. 30대의 창창한 젊은 나이에 헌 신짝처럼 버림받은 것이다.
서오릉의 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다섯개 능은 비공개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능 아래에서 쳐다볼 뿐이다. 장희빈의 대빈묘는 능(陵)이 아니라 가까이서 바라볼 수가 있다. 규모 자체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옛날 옛적에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임금의 눈에 띄여 하룻밤 사랑을 받는다. 빈으로 승격이 되지만 그 이후로는 임금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수 많은 나날을 뜬 눈으로 담장을 넘어 기다림의 나날이다. " 내가 죽으면 시신을 담장 밑에 심어 주세요 " 유언대로 여타 궁녀들이 담장 아래 매장한다. 어느 날 화사한 분홍색의 꽃이 만발하여 담장을 휘감는다. 기다림에 지쳐 애닲이 살다간 소화 궁녀의 원혼이 담긴 꽃이다. 이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꽃으로 바로 능소화이다.
한강가에도 주택의 담장에도 활짝 핀 능소화의 모습은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가 있다. 활짝 핀 꽃 모습이 귀를 쫑긋 열고 아직도 임금의 발자국 소리를 학수고대 하고 있는 모습이다. 못 다 한 숫처녀의 첫 순정의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뜬 눈으로 세월을 원망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저 너머 둘째 셋째 왕비와 나란히 안장된 숙종의 발자국 소리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세자까지 낳아 준 국모(國母)인 자신을 죽은 후에도 떨어뜨려 놓음에 울분을 토하고 있지는 않을까. 장희빈 묘역의 둘레에 능소화를 하나 가득 심으면 어떨까. 화사한 능소화 꽃봉우리가 복숭아빛의 여리디 여린 장희빈의 얼굴과 겹치고 있다. 울타리를 휘여감으며 기다림에 지쳐 서오능을 흔들고 있는 통곡소리가 뒤통수를 흔든다.
숙종은 기록상으로만 세 명의 왕비와 여섯 명의 후궁을 두었다. 여타 임금들도 마찬가지로 숙종도 후궁들은 사랑이 아닌 성(性SEX)의 놀이개에 불과하다. 원처(原妻) 본처(本妻) 정처(正妻) 후처(後妻) 색처(色妻) 주처(酒妻) 악처(惡妻) 양처(良妻) 등등 가리지 않고 박달나무 방망이를 박고 빼고 핣고 빨고 싸고 찰나의 쾌감을 즐긴다. 특히나 왕비 후궁을 가리지 않고 입맛대로 씹다가 버리고 다시 씹는 인간 이하라면 어떨까.
대대로 세습을 하며 왕권을 잡은 한 사람만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쥐락펴락 한 그 세월이 과연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냉정한 역사적 심판도 필요한 게 아닌가. 거개의 왕릉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수 많은 백성들의 인권과 자유와 안녕과 법과 질서는 IQ가 200도 않되는 한 인간의 부속물이며 놀이개 허수아비일 뿐이다.
유네스코에 문화재 유산으로 등재가 그리도 국가의 명예이며 행복하고 즐거운 역사적인 운명인가.
서오능을 비롯해 동구능 선정릉 헌인릉 홍릉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에 펼쳐져 있는 능(陵)들이 있다. 한 두군데 능(陵)만 학습용으로 보존하고 나머지는 파헤쳐서 시민들의 안식처인 공원화(公園化)하면 어떨까.
그래야만 앞으로 정치권을 주름잡는 저들도 제대로된 역사관을 가지고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2021년 7월 10일 무 무 최 정 남
서오능에 있는 대빈(장희빈)묘역 주위에 밝은 분홍색의 능소화를 심은 모습이다
여기를 보시면 GOOD !!!
★★ https://photos.app.goo.gl/Zgq349yoi6eNWmQy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