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와 용인간의 계절거리가 일주일쯤 되고 있음을 오늘 용인에 와서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3개 사생단체가 평년 늘 그래 왔듯 유월 첫 주 일요일을 골라 양귀비를 그리기 위해 이곳 용인 원삼면 사암리에 모여들었지만 양귀비는 일주일 만에 씨앗을 맺고 누런 떡잎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그 원색의 아름다움과 함께 해야 할 푸름을 잃었다. 게다가 또 식당으로 사용한 성산가든은 꽃 단지에서는 10여분 거리의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이 또한 큰 불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여 대부분의 화우들은 성산가든 앞에 피어있는 얼마 되지 않는 양귀비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든가 아니면 멀리 내다보이는 강변 풍경을 그리는 것으로 그 섭섭함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성산가든 앞에는 햇볕을 피할 그늘과 강바람이 있어 그나마 얼마간의 위안이 되었던 점은 다행이라 할 만하긴 하였다.
군락으로 피어있는 양귀비가 있어야, 몇 년 전 파주에서 구도정도 잡아놓았던 작품을 마저 완성시킬 수 있기에, 별수 없이 난 산비탈을 오르고 내리는 수고와 뙤약볕을 감내할 밖에 없었다. “누가 그림을 가지러 오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언제까지나 그림을 고치고 또 고쳐 댈 것입니다. 참 어리석지요? 멈출 줄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걸 잘 못해요.” <뉴욕커>란 이름난 잡지의 표지 삽화를 그리는 프랑스 화가 상뻬의 이 말은 나 역시동병상린의 마음으로 겪는 고민이기도 했다.
하늘은 푸르렀다. 아직 씨앗을 맺지 않은 양귀비들의 원색 군락은 그래도 찬란하였다. 파주가 그랬듯 이곳 역시 햇볕 피할 곳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나, 마을에서 조성해둔 원두막이 밭들 중앙에 여러 개 드문드문 놓여있어 내년 5월 말쯤 마을 부녀회의 도움만 받아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때맞추어 일찍 올 수만 있으면 이곳이 사라진 파주 심악산을 대신할 만한 양귀비 스케치 명당 코스가 될 만하겠단 생각을 해본다.
많은 화우가 박주경씨가 오늘 스케치 나오지 않은 이유를 내게 물어왔다. 유난히 꽃 그리는 욕심이 많은 박화백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겠단 생각들이었을 테고 또한 그녀가 빠진 일요화가회는 무언가 2% 부족한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갖는 존재가 되어 있음을 오늘실제 느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기염을 토하고 있는 양귀비 벌판은 오늘 한국일요화가회와 현대사생회, 야수회에서 모여든 인간 벌 나비들로 더욱 풍요로웠다.
“5월의 싱그러운 환희 속에서 눈(snow)을 그리워하지 않듯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갈망하지 않는다.”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나는 오늘 이 곳 마지막 양귀비 군락들의 6월 합창 속에서 나의 양귀비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갈망치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2012.6.3
첫댓글 거봐여~ 나 안나오니까 서운하죠! 그러니 떠든다고 떽! 하면 안돼여, 나 없어 조용하니 심심하잖아여~~
근데, 왜, 나 안나올때 저런 환상적인 곳만 찾아댕긴데요? 우와~ 올해 스케치 장소중 최고네요, 어이쿠 배아퍼라~~ 이번주는 장미그린담서요? 흑!!! 이번주도 빠지는데~ 치악산가서 장미찾을 수도 엄꼬..ㅠ.ㅠ 비나 와랏 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