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요무형문화재 강릉단오제(2016.6.5~6.12)가 중반으로 달리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대관령서낭을 제사하며, 산로 안전(山路安全)과 풍작·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하는 제의이자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단오굿·단양제(端陽祭)라고도 불리며, 단오날 행사로서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이다.
몽골텐트가 수없이 세워져''' 온갖 문화 예술을 즐기려는 인간들을 품고 있었다.
음력 3월 20일부터 제사에 소용될 신주(神酒)를 빚는 데서 시작하여 단오 다음날인 5월 6일의 소제(燒祭)까지 약 50여 일이 걸리는 대대적인 행사이다. 단오제의 제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3월 20일 제사에 쓸 술을 담그고, 4월 1일을 초 단오(初端午), 4월 8일을 재 단오(再端午) 또는 2단오라 하여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이 있다.
신과 인간 천년의 소통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생을 위한 휴먼 드라마이다.
단오제단. 아리마당. 수리마당. 강릉단오제보존회에서는 자연의 신들을 불러드리고 있었다.
4월 14일은 서낭신을 모시기 위하여 강릉을 출발하여 송정(松亭)에서 야숙하고, 4월 15일 3단오날에는 대관령서낭과 산신께 제사하고 신목(神木)과 서낭을 모시고 돌아온다. 이때에 강릉사람들이 구산(邱山)서낭당까지 마중을 나와 횃불을 밝히고 함께 여서낭당에 와서 서낭내외를 합사(合祀:둘 이상의 혼령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함)시킨다.
어릴적''' 써커스 구경이 나의 동심 젤큰 세계였지만''' 환갑 넘으니, 앞만 지나친다.
4월 27은 4단오로 무당들에 의해서 굿이 행해진다. 5월 1일 5단오날은 본제가 시작되는 날로, 화개(花蓋)를 모시고 굿당으로 가서 굿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을 행한다. 5월 4일은 6단오, 5일은 7단오로 무굿과 가면극이 있으며, 단오날을 본제날로 여기고 있다. 5월 6일은 8단오로 서낭신을 대관령국사서낭당으로 봉송하는 소제를 끝으로 약 50일 동안의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어릴적''' 내 마음의 풍선 터트리기 많이했는데''' 이젠 일장춘몽이구나!
본격적인 제의와 놀이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데,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한 그네·씨름·줄다리기·윷놀이·궁도 등의 민속놀이와 각종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이때 영동일대와 각지에서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드는데,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대성황을 이루어 강릉시가는 일년 중 가장 혼잡을 이룬다.
지지난해 USA 준이랑''' 바베큐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하던 생각이 간절히 났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 역사와 예전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편적인 기록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문인 남효온(南孝溫)의 문집인 『추강냉화(秋江冷話)』(1477)에 의하면 영동민속에 매년 3·4·5월 중에 택일을 하여 무당들이 산신을 제사하는데, 3일 동안 큰 굿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나의 운명, 나의 철학, 나의 애환''' 나의 모든 것,
허리수 & 장금이 품바 3대 품바 허리수 예술단으로 맨먼저 닥아갔다.
『추강냉화』의 기록은 반드시 단오제를 지칭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시기 중 5월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 의식이 대관령서낭제의 진행과 비슷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강릉단오제로 추정하게 한다. 또한,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1611)에도 그가 1603년(선조 36)에 강릉에 가서 단오제를 구경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대관령산신이 김유신(金庾信)이라는 이속(吏屬 : 관아에 딸린 구슬아치)의 말을 인용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도 단오제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허리수 엿장수 만담과 상술은 더한층 세련된거 같았다.
5분마다''' 거시기 곁들인 장금이 만담에 쇠뇌되어, 관객들은 배춧닢 많이 걸어주었다.
또 다른 기록으로 강릉의 옛날 향토지인 『임영지(臨瀛誌)』를 취사(取舍)해서 경종 때 간행한 『강릉지 江陵誌』 권2 풍속 조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견훤(甄萱)의 아들 신검(神劍)을 정벌하기 위해서 남정(南征)하였을 때 꿈에 중과 속인 두 신[僧俗二神]이 병졸을 이끌고 와서 구해주었다. 꿈이 깨어서 싸웠는데 이기게 되어 대관령산신에게 제사하고 치제(致祭)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허리수외 단원 12명''' 신나는 품바 난타에 가끔씩 온힘을 쏟았다.
허리수 & 장금이외 난타 공연 좀 감상하실라우!
이로 보건대 대관령산신은 10세기에 이미 있었으며 당시에 왕이 제사한 것으로 보아 큰 신제(神祭)이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런데 허균의 『성소부부고』나 현지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관령산신은 김유신이며 서낭신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고 있다.
건너편엔 쌍두마차 깜직이 품바 대공연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당연히 2번째로 찾는 명소가 되었다.
북치고 하모니카 불며''' 구루무 상술 만담.재치도 일류가 넘어 인간문화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유신이 명주(溟州 : 지금의 강릉)에 유학한 일이 있고 대관령산신에게서 검술을 배웠으며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나 『임영지』의 ‘승속이신’ 등의 내용을 보면,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하나가 아니고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구석엔 잉카의 후손들이''' 영혼을 부르는 소리 혼신으로 신선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다만, 대관령산신으로 중요하게 간주되는 것은 김유신이다. 이에 대하여 ‘승(僧)’은 국사 범일(梵日)이고 ‘속(俗)’은 김유신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6.5.오후 9시 / 6.7 오후 10시 / 6.11 오후 9시
강릉시. 강릉단오제위원회. 보존회에서 기획한 첫날 불꽃놀이 감상하였다.
불꽃놀이 동영상 감상하시면서''' 그대가 행복했으면해요!
< 그대의 친구 만호 생각 >
첫댓글 단오귀경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