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9일 성령강림절 후 열한째 주일예배
성경: 롬1:26-32(신240)
제목: 하나님의 진노와 복음 (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왜냐하면(가르)’(18)로 시작하는 전주의 본문(18-25)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심판)인 ‘이방인들의 죄악’에 대한 말씀으로 그의 복음의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심판)’과 그의 진노(심판)의 현상인 ‘그들의 죄악들의 근본적 이유’에 초점을 두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거부하는 ‘우상 숭배의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것과 정반대의 방향(그의 창조적 질서)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복음(그의 주권적 통치)’(1-5)을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1. 그의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꾼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심판)는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사 동성애의 죄악에 빠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26-27).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진노(심판) 이유는 ‘이 때문에’(26a),
즉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25)입니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는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자연을 통하여 계시하여 알 수 있는 진리를 막고(18), 거짓 것으로 바꾼 결과입니다.
둘째,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심판)의 내용은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사 동성애의 죄악에 살게 하셨다는 것’(26b-27)입니다. 즉, 그들이 여성 간의 동성애(26)와 남성 간의 동성애(27)에 빠져서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에게 받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순리’는 성에 대한 그의 창조 질서(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하며, ‘역리’는 그것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26-27)은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논쟁에서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어떤 이는 동성애적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진리)를 역행하는 부끄럽고 그릇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심판) 현상(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동성애를 가장 나쁜 죄악으로 생각하여 동성애자들을 미워하고 완전히 거부하고 그들의 인권까지도 무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동성애(26-27)뿐만 아니라 다른 죄들(29-31)도 다 그의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꾼 우상 숭배자에 대한 그의 진노의 현상이며, 결국 사형에 해당하는 것들(32)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동성애자들이 하나님의 자연 계시와 율법과 복음의 진리를 통하여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도와야 할 것입니다.
2. 그의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꾼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심판)는 그들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행하도록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28-31).
먼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심판) 이유와 그의 진노의 내용입니다(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하게 하셨으니.”
첫째로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심판)의 이유는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28a). 여기서 ‘마음(에피그노세이)’은 단순한 지식(그노시스)보다 더 깊은 인식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을 인정하여 경배하며 섬기게 하는 인식입니다.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는 그들의 인식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싫어하였다’는 ‘우크(아니다) 에토키마산(시험하여 판단하다)’의 번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불의로 그 진리를 막았다’(18)입니다. 또한, 이것은 ‘상실한(아도기모스) 마음(누스)’과 대응되는 언어 유희입니다. 여기서 ‘마음(누스)’은 단순히 감정의 중심인 ‘마음(하트)’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 분별력, 지성’, 즉 생각과 판단을 담당하는 정신을 가리키며, ‘상실한(아도기모스)’은 ‘도기마조(시험하여 인정하다)’에서 나온 형용사입니다. 그래서 ‘상실한 마음’은 ‘분별력을 잃는 정신, 타락한 판단력, 부적격한 정신, 폐기된 판단력’으로 영어 성경은 다양하게 번역합니다만. 한마디로 말하면 ‘어리석고 무지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심판)는 ‘그들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행하도록 그 어리석고 무지한 생각대로 내버려 두셨다’입니다. 여기서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도록’은 결과나 목적 부정사입니다. ‘합당하지 못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사회적인 의무(창조와 율법 언약)를 범하는 행위(29-31)를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도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저주)는 24와 26과 같이 그들이 창조(율법) 언약에 합당하지 못한 죄악들을 행하도록 그 어리석고 거짓된 생각대로 내버려 두셨다, 즉 그의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에게 그의 주권적 통치를 거두시고 어리석은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묵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를 잃어버린 양이나 고장 난 차를 그대로 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생각대로 살아도 그대로 형통하는 것이 그의 은혜가 아니라 그의 진노(저주)의 증거이며, 오히려 간섭하시는 그의 징계가 그의 진노가 아니라 그의 은혜와 사랑의 척도라는 것(히12:5-13)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행한 ‘합당하지 못한 일들’입니다(29-32).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여기서 ‘모든 불의(아디카아)’는 뒤에 나오는 모든 죄의 총칭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며,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가정에서만 아니라 사회(국가)적으로 심각한 죄악이며(신21:18-21), 종말의 표지입니다(딤후3:2). ‘우매한 자’는 배우기를 거절하여 무지한 자입니다.
이 죄악들은 그의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꾼 자들에 대한 그의 진노(심판)로 그 어리석은 생각에 넘겨져 버려진 결과입니다.
3. 불의로 진리를 막고, 거짓 것으로 바꾼 자들에 대한 요약적 결론입니다(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정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적 규정(디카이오마)’이며, ‘알고도(에피그논테스)’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정확하게 알았으면서도’입니다. 즉 그들은 이 같은 일들(19-31)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그의 규정을 알았으면서도 불의로 그의 진리를 고의로 막고(18), 거짓 것으로 바꾸어(25) 자기들도 행하고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거짓된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심판)는 우상 숭배와 동성애나 모든 죄악 자체이며, 이는 불의로 진리를 막고(18) 거짓 것으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자연과 율법과 복음을 통하여 계시하시는 그의 진리를 막거나, 계속 기다리지 말고, 회개와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진리를 진심으로 알기 위해 기도하시면, 성령을 통하여 반드시 알려주실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주권을 회복하시고 우상 숭배의 세상을 다시 통치하신다’라는 그의 복음(1)의 이해에서 죄 사함을 위한 그의 십자가만이 아니라, 만물(우리)의 주가 되신 ‘그의 부활(승천)’도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