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데에 취직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돈을 많이 벌고 예쁜 아내를 얻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었고 성당 다니면서도 오로지 그것이 성취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꿈과는 전혀 다른 사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학교 들어가기로 결심하게 된 25세 전까지 기도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 가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제로서 사람의 영혼을 낚는 어부로 사는 즐거움이 그 이전에 상상해왔던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체했는지 알고 병원에 갔는데 위에 암이 있음이 발견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의사가 체해서 왔다고 발견된 암을 무시할 수 있을까요? 더 위급한 것부터 치료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청하는 것들을 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아시기에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십니다.
싸우디 왕자와 골프를 치고 왕자가 무슨 선물을 원하느냐고 묻자 좋은 골프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골프장을 선물로 주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이야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아시고 더 잘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벳사이다의 눈먼 소경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의 눈에 손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그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이끄신 다음 눈에 손을 대는 대신 그의 눈에 침을 뱉고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어 안수를 해 주십니다. 이는 분명 소경이나 그를 데려온 이들이 원했던 행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보니 육체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보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이 더 급선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를 고쳐주실 때도 또 눈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진흙을 만드실 때도 모두 ‘침을 뱉어’ 기적을 행하십니다. 바오로가 아나니야의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침을 뱉거나 안수를 하는 모든 행위는 ‘성령님’을 넣어주시는 행위입니다.
태초에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떠돌고 있었다고 하고 그 이후 성전 오른 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을 축일 수 있었던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모두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 즉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만이 영적인 눈이 떠져서 사람을 나무로 보게 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만이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드님이로 알아보기 때문에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이 성령님이 곧 베드로에게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열쇠’인 것입니다.
그를 다시 벳사이다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다시 죄를 지어 영적인 눈을 잃게 될까봐 그리 이르신 것입니다. 도시라는 곳은 죄의 상징이고, 특별히 벳사이다는 코라진과 가파르나움과 함께 예수님께서 소돔보다도 더 죄가 많은 도시로 꾸짖으신 동네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때 소경은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의 눈이 더 중요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 사람이 실망해도 예수님은 더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우리가 드린 기도들의 응답이 없다고 실망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드릴 때, 우리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더라도, 항상 주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을 먼저 들어주시려 하십니다. 청하되 가장 중요한 성령님을 먼저 청합시다. 나머지는 저절로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