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소설세계의 출발점인 "작정기"에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상대방을 향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결정적인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인물의 모습과, 뒤늦게 한 시기를 반복해 떠올리며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내는 장면은 애틋하면서 뜨거운 에너지로 소설을 가득 채워놓는다. "작정기"는 친구 원진이 이혼 소식을 알려온 날, 원진과 나가 충동적으로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으며 시작된다. 하지만 원진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 나는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자 유코와 대화를 나누다가 통역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지 유코가 자신의 여행을 죽은 친구를 대신해 떠나온 것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 언젠가 원진이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진이 갑작스레 죽으면서 나는 그때 자신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은 것이 원진의 죽음을 재촉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나의 이 감정은 몇 달 뒤 업무차 한국에 방문한 유코와 재회하면서 다른 파동을 그려낸다. 정원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유코가 친구가 죽었다고 한 나의 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나에게 자신이 만든 정원 모형을 건넨 것이다. 그제야 나는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이후 다시 일본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원진이 나의 행복을, 그러니까 내 미래를 축원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소중히 여겨온 인물과 헤어진 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열어내는 장면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래전 여름, 나는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 진영과 함께 남해의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나체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나의 한가로운 소망 때문이다. 나와 진영은 남해에 도착한 날 밤 어두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 해변으로 향하고, 멀리 떠 있는 작은 배 말고는 온 사방이 숲과 하늘뿐인 그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곳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같은 건 없다. 그들이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때리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무척 추운 탓에 수영은커녕 겉옷 하나도 벗지 못하고 두 사람은 작은 해변의 양끝을 천천히 걸으며 그곳에 버려진 것들을 줍는다. 그리고 그 짧은 여행의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의 좁혀지지 않던 마음의 거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소설은 두 사람의 격차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어느 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해 마치 그 연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인물과 새로운 시공간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묘한 방식으로 시간을 구부러뜨림으로써 현재와 과거, 미래를 한자리에 모여들게 한다.
"작정기"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이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테두리를 짚어내듯이 여백을 따라가며 읽을 때 그 여운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굴 드라이브"와 "마음에 없는 소리"는 지방에 내려가거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여성 인물이 주변 사람들과 얽히며 일어나는 사건과 그로 인한 변화를 그려내며 관계를 바라보는 김지연의 시각을 담백한 톤으로 보여준다.
"굴 드라이브"의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삼촌이 월 삼백짜리 일자리가 있다며 한번 내려오라고 연락을 줬기 때문이다. 고향에 그런 일자리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달 계약이 종료된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삼촌이 말한 일자리란 바로 선 자리였다. 선볼 생각이 없다는 나에게 삼촌은 그럼 자기네 공장에서 하루만 굴 박스를 배달해달라고 제안한다. 별달리 할일이 없던 나는 용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공장에 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과 마주친다.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내미는 동창의 손을 마주잡기는 했지만 나는 동창과 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애가 나를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그애가 나에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일 끝나고 술 한잔하지 않겠냐고. 나는 그애에게 미움을 받았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애를 만나는 게 꺼려지지만 어쩐지 제안을 물리치지 못한다. 한 번도 나를 환영한 적이 없었던 고향인데, 이번에는 다른 기억을 가져다줄까?
"마음에 없는 소리"속 나의 사정 역시 이와 비슷하다. 만 삼십오 세가 넘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나는 고민 끝에 할머니의 식당을 이어받아 김밥 가게를 연다. 요리도 못하고 돈도 없지만, 요리는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면 되고 재료는 할머니의 밭에서 구해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재래시장에 가게를 연 것이다. 친구인 민구는 나의 가게가 다른 식당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어서 손님을 끌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하면서도 종종 찾아와 김밥을 포장해가고, 화영은 손님이 많지 않은 게 안쓰러운지 여기저기 전화해 손님을 모은다. 그리고 승호가 있다. 승호는 나가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 좋아하던 친구였지만 당시 승호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나도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공무원이 된 승호는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무수한 뉘앙스와 분위기만 풍기며 나의 곁을 맴돈다. 식당을 꾸려가느라 매일매일 녹초가 되고 좋은 미래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와중에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세 친구와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며,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예상치 않았던 어떤 미래가 다가오리라는 예감을 한다.
꽤 오랜 시간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생에게 선물할 물건을 사기 위해 낯선 동네에 갔다가 우연히 세 명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끝에, 앞으로의 시간을 단순히 견디고 버텨야 할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으로 전환해내는 "결로", 소중한 사람이 죽은 뒤 그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다정함과 다른 친구를 통해 듣게 된,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는 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사람의 몸을 머리, 가슴, 배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듯’ 그를 향한 그 모든 감정을 선명하게 나누지 않은 채 그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지 않기로 마음먹는 "그런 나약한 말들"은 김지연의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을 둘러싼 난처하고 때로는 무자비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는 삶을 향해 각도를 트는 모습을 막연한 환상이나 비약 없이 그려낸다.
소설집의 끝에 놓인 "사랑하는 일"과"공원에서"가 이뤄낸 성취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랑하는 일"의 은호가 여자친구가 있다며 커밍아웃을 했을 때 엄마는 그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듯이 무시해버리고, 아빠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소문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은근히 말하며, 어릴 때 자신을 아껴주었던 할머니는 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은호는 생기롭고 유연하게 이 상황을 통과해나가며 나에게는 나 중심의 서사가 있다고, 자신의 사랑을 가꾸어나가겠다고 선언하듯 다짐한다.
"공원에서"는 좀더 복잡한 상황 속으로 인물을 데려다놓는다. 나는 키가 크고 머리가 짧은데다 화장도 하지 않는 탓에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다. 그럴 때 나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함보다는 안전함이다. 여자로 살아가는 일의 만만찮음은 나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나는데,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서 추행을 당하지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다가 뒤늦게 비명을 지른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공원에 갔다가 모르는 남자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나의 상황은 그러나 나가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자를 어떤 난처함 속으로 밀어넣는다. 나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맞는가? 나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뚫고 터져나오는 것은 나의 비명 그 자체이다.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맞느냐는 일련의 점검들 속에서 나가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비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명은 그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듯 보이는 말들을 흩뜨려놓으며 나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언어화되지 못한 말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한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였지만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공원을 새롭게 의미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람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라고 깨닫는 것이다. 공원에는 불쑥 나타나 나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개가 지닌 활력과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어린아이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나의 담담한 고백은 나가 내지르는 비명만큼이나 우리를 어떤 감정 속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