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아름다운 것들 / 최미숙

아름다운 것들 / 최미숙 아직은 밥때가 이른지 뷔페식당이 한산하다. 계산을 마치고 들어가니 아이 일곱 명이 한 테이블에 딱 붙어 얌전히 앉아 있다. “맛있게 먹어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음식 진열대로 가더니 접시 가득 담아 온다. 서서히 장난꾸러기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가지가지 맛난 음식을 맛본 아이들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돈다. 지난번 가족과 왔을 때보다 음식 종류가 많아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손님들로 북적인다. 4월부터 학교와 영재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했다. 영재원 아이들 글은 10월 말 이미 책으로 나왔고, 학교 아이들 것은 다음 주 수요일(12. 13.)에 완성본이 도착한다.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42년 교직 생활을 마치는 해라서 그래도 보람 있었다. 처음에는 이왕이면 여러 아이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 책을 좋아하고 성실한 애들에게 글을 써 보자고 권했다. 몇 번 참석하더니 힘들고 어려웠는지 한두 명씩 안 한다고 했다. 글쓰기도 하고 싶어 해야지 억지로는 할 수 없다. 마지막엔 6학년 다섯 명만 남았다. 끝까지 열심히 하면 출판사에 원고 넘기고 맛있는 저녁을 사 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잡은 날이다. 영재원에서 열심히 한 아이 두 명도 함께 데려갔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니 아이들은 조금 들떠 있었다. 일곱 명 중 다문화 가정 아이가 둘인데 한 아이가 2년 전 내가 쓴 글 ‘소외된 아이’의 주인공이다. 6학년 학생 중 가장 키도 작고, 기본 생활 습관이 전혀 몸에 배지 않아 항상 주변이 지저분하고 여름이 가까워 오는데도 겨울옷을 입고 다닌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라고 할 만큼 늙고, 엄마는 아빠와 나이 차가 많이 나고 베트남 사람으로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와 소통이 안 되는지 물어보면 엄마와는 거의 말을 안 한다고 했다.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놀리고 늘 왕따를 당해 피해 의식이 많은 친구였다. 볼수록 딱하고 안됐다. 그간도 큰소리가 난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웬만한 부모 같았으면 학교를 몇 번이나 쫓아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수습하고 수석실로 데리고 와 글을 쓰게 했다. 글씨는 외계어처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고, 내용도 아이에게 하나하나 물어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쓴 원고도 어디 놔둔지도 모르고 버리기 일쑤여서 수석실에 따로 보관했다. 만날 때마다 타이르고 할 일을 빼 먹으면 심하게 나무라기도 했다. 이런 음식점은 처음인 모양이다.  막 먹어 대던 아이들이 양이 찼는지 조용히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더 먹으라고 했더니 배가 터질 지경이란다. 시간을 보니 일곱 시가 넘었다. 아이들을 벌교에 사는 선생님에게 데려다 달라고 맡기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몇 명의 애들에게‘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답글을 보냈다. 다음 날 오후 잠깐 교무실을 다녀왔더니 책상 위에 반으로 접힌 종이와 조그만 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생각 없이 펼쳤는데 짧게 쓴 편지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왔다 갔나 보다. 글씨를 보니 꽤나 정성을 들였다. 항상 챙겨주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애슐리(아이가 명칭을 정확히 몰라 틀리게 썼음)라는 곳도 데려가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또 지난 10월, 도 교육청에서 다문화 학생 대상으로 ‘엄마 나라(베트남) 배우기 탐방 프로젝트’를 신청하라는 공문이 왔다. 담임에게 권유해 신청서를 낸 것이 선정이 돼 베트남 여행까지 다녀왔다. 그것까지도 고맙다고 쓰여 있었다. 표현을 잘 못하는 아이가 이만큼이라도 마음을 드러냈다는 것에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왠지 짠했다. 그래도 여러 선생님의 관심 덕에 냉소적이고 공격적이던 아이가 얼굴 표정도 편안해지고 많이 달라졌다.  긴 세월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과 만났다. 경험이 부족해 실수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믿고 따라 줬던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긴 세월을 견뎠고 지금까지 내가 있었다. 출근길 맑은 공기,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담임 선생님 생일 파티 한다고 몰래 준비하는 예쁜 마음, 복도를 운동장 삼아 뛰는 친구들, 매일 아침 수석실 문을 두드리며 공손하게 인사하는 6학년 학생, 좋은 책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한마디, 꾸중을 듣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얼굴, 조그만 손편지를 놓고 가는 아이의 존재 자체가 귀하고 아름답다. 학교를 떠나면 아마 이 모든 것이 그리울 것이다. 가끔 옛날에 비하면 선생님이 설 자리가 좁아져 후배들이 걱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성을 알아주는 아이들과 좋은 시절을 보내고 떠난다.  달력이 한 장 남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맞았던 정초에 비하면 12월은 무언가 결실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무겁다. 그래도 학기 초에 계획했던 일을 이루게 돼 홀가분하다. 이제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료와 묵은 짐 정리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