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상을 그리며 / 양선례
처음부터 그를 믿지 않았다. 덩치가 큰 만큼 하는 말도 무거웠으면 좋으련만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양지에서만 살았다. 정치 초보지만 혜성처럼 등장하여 기똥찬 운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또 자식도 없었다. 이기적인 인간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주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자식을 키우면서 견디는 일일 것이다. 그 숭고하고 지난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입으로는 역지사지를 외치겠지만 실천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작은 모임의 반장만 되어도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일을 먼저 하면 속이 보인다. 뒤꼭지가 부끄럽다. 몇 안 되는 회원일망정 의견을 모으고, 협의하여 민주적으로 일을 하려고 애쓴다. 설사 마음에 맞지 않는 이가 있더라도 드러내놓고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국민이 뽑은 반대편의 지도자와 한 번도 제대로 된 회담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믿는 대로, 자기편만 데리고 직진했다. 수시로 공정과 상식, 자유를 외치지만 그 잣대가 고무줄이라는 건 온 국민이 알고도 남았다. 가족의 치부를 덮으려고 여러 번 권한을 남용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믿지 않을 궤변을 수시로 늘어놓았다. 말투는 거칠었고, 상스러웠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다. 늘 자기가, 자신의 편이 옳다고 우겼다. 다른 의견을 내는 이를 대놓고 배척했다. 포용하는 미덕은 볼 수 없었다.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불러서 의견을 듣거나 요직에 앉힐 수 있는 권력을 쥐었으면서도 공부하지 않았다. 남은 임기 동안 어찌 견디나. 나라 걱정하는 국민이 갈수록 늘어갔다. 국격은 떨어지고 정치는 40여 년 뒤로 후퇴했다. 번질나게 나가는 외국 순방에서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오려나, 물가에 내논 아이처럼 걱정이 되었다.
그날은 글쓰기 수업이 있는 데다 올 1년간 아이 가르친 사례를 전국 단위 기초학력 모임에서 발표해야 하는 날이어서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느라고 바빴다. 세 시간을 내리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주말에도 여고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쉬지 못한 터라 더 그랬다. 낮에 보지 못한 기사나 읽을까 싶어 휴대폰을 열었더니 계엄이란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포고문이 발표되었다. 언론과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하며 민간인도 영장 없이 체포와 구금이 가능하다고 했다. 처단한다는 말도 버젓이 쓰여 있었다.
국회 담을 넘는 국회의원, 총을 든 군인 앞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국민, 도움을 청하는 야당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생중계로 전해졌다. 계엄이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친구 두 명은 책꽂이에 그 책이 꽂혀 있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1개월 정학을 당했다. 친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도 누가 듣는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려야 했다. 무서웠다. 그 시대를 살아 본 자만이 느끼는 공포였다. 그래. 시절이 좋아져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구나. 어떻게 지켜 온 민주주의인데. 내 안에 알게 모르게 계엄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그 밤은 잠들기 어려웠다.
엠비씨에 채널을 고정했다. 그동안 맺힌 걸 풀기라도 하는 듯, 정규 프로그램을 모두 멈추고 탄핵 정국에 초첨을 맞춰 보도를 이어 갔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걸 다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긁어 줬다. 어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텐데,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그는 견디다 못했는지 하루는 사과문을, 또 며칠 후엔 담화를 발표했다. 사과는 짧았고, 담화는 몇 배나 시간이 늘어졌다. 그조차 온통 핑계와 변명투성이였다. 어마어마한 일을 벌여 놓고는 경고용이란다. 역시 그는 역지사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눈치도 없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온 나라가 들끓었다.
무기력에 빠졌다. 일상을 이어 가기가 힘이 들었다. 나는 신문도 뒤에서부터 읽는다.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지 궁금해서 사설과 오피니언을 먼저 훑는다. 그러다 보니 정치면은 거의 눈이 가지 않는다. 거기까지 넘기지 않고 신문을 덮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에 똑똑히 알았다.
한고비를 넘겼으나 불쾌감은 가시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국민의 목소리를 그들도 들었다면 이탈표가 적어도 30표는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국민의 80%가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데 여당 국회의원은 무려 85%가 국민의 뜻과는 반대로 갔다. 아슬아슬하게 넘긴 결과를 보면서 앞으로가 걱정이 되었다. 나라보다는 당론을 우선하여, 귀를 막고 사는 사람이 이 나라의 지도자를 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역사는 결국 정의롭게 움직인다는 걸 믿지만 그 길이 녹록지 않은 게 보여서 안타깝다. 얼마나 또 에너지를 들여야 나라가 다시 평화로워질 것인가.
불안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