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과학:시와 소설 외 1편
이승하
수학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
과학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150,000,000km이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384,000km이다.
시
백수광부의 아내는 왜 따라 죽었을까
公無渡河
다자이 오사무가 무슨 말로 유혹했기에
公竟渡河
카페 여급 야마자키 토미에가 따라 죽었을까
墮河而死
두 사람은 함께 차디찬 강에 뛰어들었다
當奈公何
보리가 맥주가 되는 세계
포도가 포도주가 되는 세계
낱말이 시어가 되는 세계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꿈꾸었다
제정신이 아닌 백수광부와 아내
한 사람은 술꾼 한 사람은 시인
제정신이었던 다자이 오사무
소설
그 섬에서 죽은 사람을 풍장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관으로 쓸 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고 다 관을 쓰면 그나마 그 섬에 있던 소나무와 참나무 등은 모두 베어져 민둥산이 아닌 민둥섬이 될 게 뻔했다. 육지에서 관을 사오면 되었지만 관을 배에다 실어 오는 일은 승객에게 혐오감 내지는 공포감을 줄 수 있었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관을 가져오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섬에 사는 300여 주민은 우리나라의 섬이나 바닷가 마을에서 오래 내려온 풍습인 풍장을 하게 되었다. 왕조 때도 그랬고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고 광복 이후에도 그랬다. 잡은 고기를 줄에 매달아 말리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 너럭바위 위에다 시체를 놓고 거적때기를 덮어두면 마를 데는 마르고 썩을 데는 썩어 빼만 남게 된다. 그 뼈를 사람들은 맨땅에 묻고서 작은 비를 세우기도 했고 화장해 바다에 뿌리기도 했다.
도서관에서의 살인
이렇게 많은 언어와 담론이 필요하였나
이렇게 많은 책과 ISBN이 필요하였나
모든 고전은 거대한 무덤
생존자 저자는 한 명도 없다
그 시대 그 시절에도
人間은 사람 사이에서 아프고 슬퍼 글을 썼던 것
글 모아 책으로 펴냈던 것
이백과 두보, 이하와 왕유*
괴테와 실러, 랭보와 베를렌
외롭고 괴로운 어느 밤에
붓을 꺼내 들거나 펜을 잉크에 찍어
사람을 살려내고 사람을 죽이고
정음사와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계몽사와 금성출판사의 한국문학전집
살아 있는 저자는 없다
태어나면 죽는 책들
태어나면 죽는 저자들
태어나면 죽는 출판사들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정음문고 서문문고의 시체 더미
제노도토스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책이 지금 남아 있는가?
움베르트 에코여 그대 책에서는
사람이 책을 죽이고 책이 사람을 죽였지만
지금은 AI가 책을 죄 죽이고 있네
* 중국의 당나라 시대는 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걸출했던 네 시인을 당시사걸(唐詩四傑)이라고 일컫는다.
** 제노도토스(BC 320년경∼BC 240년경):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초대 관장. 호메로스의 시에 대한 최초의 교정판을 펴냄.
이승하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김천에서 성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사람 사막 외.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평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최초의 신부 김대건 마지막 선비 최익현 외. 지훈상, 편운상 등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