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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 우회 길로 가게 하셔도 (민21:4-9)
시계를 팔기 위해 광고할 때면 시곗바늘이 7시 25분을 가리키는 광고는 없다고 합니다. 반드시 10시 10분에 맞춰 놓고 광고를 찍는다고 하는데, 그래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유가 뭔가 하고 봤더니 시계는 사람의 얼굴이고 시침과 분침은 얼굴의 주름을 연상시킨답니다. 따라서 7시 25분을 가리키는 시계는 찡그린 얼굴, 골난 얼굴, 불평하는 얼굴, 근심하는 얼굴을 상상하게 하는 반면에 10시 10분을 가리키는 시계는 웃는 얼굴, 밝은 표정,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계를 사려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10시 10분짜리 시계를 산다는 겁니다.
시계도 웃어야 인기를 얻고 대접을 받고 잘 팔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옛말에 소문만복래라 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또 일노일노 하고 일소일소 한다는 말처럼 한번 화내면 한번 늙어지고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렇듯 예전부터 이런 말들이 있어 온 걸 보면 자고로 사람은 웃어야 복을 받고 젊어지고 형통할 수 있음을 교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계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떨까요?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규율이 너무 엄하다며 자유 시간과 외출을 늘려달라, 식사의 질을 높이라는 등의 조건을 내걸고 데모 비슷한 걸 했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의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됐는데, 수도원장은 그들을 향해 ‘불평하는 사람은 천국에 살면서도 불평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에서도 감사한다.’고 했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제까지의 여러분의 삶은 불평불만이셨습니까? 아니면 감사했습니까?
웃으며 살아가고 계시나요? 아니면 화내고 근심하며 살고 계신가요?
과연 우리의 삶의 시계는 7시 25분과 10시 10분 중에 지금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도 보면 7시 25분 인생으로 살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간 여러분에게 구약의 불뱀 사건과 관련한 말씀을 몇 차례 전한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그 속편 말씀이라 여기고 같이 한 번 본문을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는 애굽의 노예 신세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얘기가 나오는데, 출애굽 후 계속되는 광야의 행군에 그만 심신이 지치고 맙니다. 그러던 중에 사막의 무서운 불뱀 골짜기에 빠져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고 살기 힘든 환경입니다.
이쯤 되면 백성들이 현재 상황보다는 이전에 애굽의 노예로 살 때가 그나마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땐 죽을 듯이 힘만 들었지만, 지금은 당장에 죽게 생겼으니까요.
그때의 그들도 그렇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렇고 솔직히 누군들 웃고 싶지 않고, 누군들 감사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이 이 지경이고 보면 사실 감사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잃었던 웃음을 다시 찾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그들이 인생을 다시 감사하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지금 처해 있는 불뱀 골짜기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뱀 골짜기를 빠져나오려면.
사자성어에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불뱀 골짜기를 빠져나올 방법을 찾으려면 우선은
어쩌다가 거기에 빠지게 되었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물도 없고 삭막한 광야 길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벅찬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쩌다 불뱀 골짜기에까지 빠지게 된 걸까요?
그걸 알기 위해 우린 불뱀 골짜기가 어떤 곳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고, 어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쩌다 빠지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면 그다음 빠져나올 방법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불뱀 골짜기는 ‘우리 마음이 상하고 속이 썩는 곳’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마음 상했으나 치유 받지 못한 곳, 속이 상했으나 고침 받지 못한 인생이 바로 불뱀 골짜기입니다.
당장에 우리가 그렇잖습니까? 살아 보니 속이 상하고, 속 썩을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근심거리가 하나 해결됐다 싶으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찾아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물론이고 사업 때문에, 직장 일로, 때론 건강 문제로, 어떨 땐 물질 때문에 속상할 일들이 있게 됩니다.
비 사이로 막 가는 게 불가능하듯이 누구라도 원치 않는 이런 일들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문제는 속상하게 만드는 그 문제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진짜 문제는 그 문제들로 인해 내 마음이 상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속이 상한다는 게 어떤 겁니까?
여러분은 속상하다는 게 어떤 걸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간 사람들은 그저 속이 상하니 속상하다고만 했지 정작 속상하다는 게 뭔지는 모른 채 그 말을 써 왔습니다만 속상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매사가 항상 내 맘에 쏙쏙 든다고 하면 과연 속상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당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4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까?
그들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회해서 가는 길’이 자기들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오랜 세월의 지긋지긋했던 애굽에서 벗어나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됐다 하니 맘 같아서는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빨리 가야 내 땅을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할 수 있겠다 싶은데, 그럼에도 성경에선 뭐라고 했습니까?
‘우회하려 하였다가.’
나는 빨리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우회해서 가게 하시니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자기들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자동차를 타고라도 빨리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걸어서 가라고 하십니다. 나는 넓은 길, 쉬운 길로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좁은 길, 힘든 길로만 가라고 하십니다. 나는 빨리 됐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기다리라고만 하십니다.
그래서 못마땅한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나 하시려는 일들이 내 맘에 들지 않다 보니 속이 상하는 겁니다.
결국 불뱀 골짜기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서 하시는 일들을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가 우리에게도 불뱀 골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곧바로 질러가든 빙 돌아 우회하든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따라가 보자는 믿음을 가지는 것만이 불뱀 골짜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속상한 일이 생길 때면 기억하세요. ‘믿음이 답’입니다. 그러니 살면서 혹시라도 내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면 그 일로 인해 속상해하는 대신 그 일들을 믿음으로 해결하려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불뱀 골짜기는 ‘원망의 골짜기’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앞서 속상하다는 건 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 했는데, 5절을 보니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내가 드러났습니다.
‘우리 마음이 싫어하노라 하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한 행동이 무어라 했습니까?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매”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은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원망했고 그 결과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 속으로 있게 되는 것이 ‘속상함’이라고 한다면,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원망함’이란 것을.
우리도 주의해야 합니다. 내 맘에 믿음이 없고 내 생각만이 있게 되면 썩은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악취뿐이듯이 속상한 마음에서 나오는 건 원망뿐이게 됩니다.
혹여라도 누군가가 ‘내 생각대로’만 되기를 원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건 말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거지 실제론 사람들이 만들어서 믿는 이런 신, 저런 잡신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면 우린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를 기대하고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있으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당장에 내 맘에 들지 않는 문제만 보며 원망하는 인생이 아니라, 결국엔 내 맘에 들게 역사해 주실 하나님만 보고 믿음을 지켜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불뱀 골짜기가 믿음 골짜기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입니다.
자동차에는 기어라는 것이 있어서 전진기어를 넣으면 차는 앞으로 가고, 후진기어를 넣으면 차는 뒤로 갑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세상일이란 게 내가 된다 해서 되고 안 된다 해서 안되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살면서 이미 다들 경험해 봐서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행동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진다더니 곧바로 세상일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된다는 마음을 먹으라는 말인가요? 먹지 말라는 말인가요?
우리에게 이런 의문이 있을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절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기에 어떤 마음을 먹을지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근심할 마음’을 먹을 것이냐? 그러지 말라. 어떤 형편에서든 너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마음’을 먹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이런 선택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를 대비시켜 놓으시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를 묻고 계십니다. 그게 바로 불뱀과 놋뱀입니다.
본문 8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광야의 불뱀만 보며 죽겠다고만 할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놋뱀을 보고 살 것인지를.
그리고 오늘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문제만 보며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할 것인지, 아니면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을 것인지를.
이때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 골짜기에서 죽어갈 때도 하나님은 가나안을 향한 전진을 계속 강행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갈 것이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려는 자는 놋뱀을 보고 나를 따르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고자 하면 하나님을 따라야 할 텐데 그러자니 죽어서는 안 되고 살아 있어야 따를 것이기에 하나님은 놋뱀을 본즉 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는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고 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추론해 보자면 불뱀에게 물리고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는 모두 죽었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불뱀 골짜기의 이스라엘을 위해 불뱀이 있는 그 자리에 놋뱀의 축복도 같이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장대에 만들어 매단 놋뱀이 무슨 영험한 효력이 있어 죽어가는 자를 살렸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걸 본 자가 살았다는 말은 살리시는 은혜가 놋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쳐다보면 살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놋뱀을 만들어 발밑의 불뱀만 보며 우왕좌왕하고 허둥지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선을 불뱀에서 놋뱀으로 옮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의 근심과 걱정거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찬송가 265장에서도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님의 진노 면하겠네.’라고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놋뱀을 본즉 살더라.’는 말인즉 ‘하나님을 믿었더니 살더라.’는 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서 그 놋뱀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생각보단 먼 곳에서 희미하게나마 놋뱀을 봤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달려 나와 쳐다보았을 거고, 그렇지 못한 어떤 사람들은 기어서나 업혀 나와 놋뱀을 봤을 것입니다.
게 중엔 누군가가 ‘이놈아. 저거 안 보면 너 죽어.’라고 하며 잡아끄는 믿음의 손에 질질 끌려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떻게 왔느냐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의 경우에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와서 무엇을 보느냐, 가서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사는 중에 여러분의 마음이 빨리 가고 싶고, 빨리 됐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이 자꾸 우회하게 하시는 것 같아 속이 상하셨던 적이 있으셨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아직은 모르고 지금은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결론은 나를 살리시려는 것임을 믿음으로써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을 보고 산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놋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기를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생의 문제는 불뱀 골짜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답은 불뱀 골짜기에서라도 어떤 믿음을 가지느냐에 있습니다.
불만을 이겨내는 믿음, 낙심을 극복하는 믿음, 가나안의 복을 확신하는 믿음,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믿음... 등등의 이런 믿음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이후로는 항상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선 불뱀 골짜기가 있었기에 놋뱀의 은혜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견디고 해결하기 힘든 형편들이 있기에 그걸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을 것을 믿으셔서, 그 믿음만 붙들고 결국엔 인생의 불뱀 골짜기를 빠져나와 감사와 만족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