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부부의 ‘이렇게 정주며 살고 있습니다.’ 와 젊은 아이들 ‘나 이렇게 연애합니다.’ 하는 비유는 전혀 다른 속성이다. 사랑은 격정적이지만 짧고 정은 은근하지만 길다. 사랑에서는 쉬이 이별이 떠올려지지만 정은 그러하지 못할 것이란 예의 생각을 갖는다. 미운 정으로 산다는 삶을 나는 많이 보았다.
속을 무던히 썩인다고 하지만 그로 이별의 사유로 연결지지 않는 데는 찌든 욕망으로는 어쩔 수없지만 장 담그듯 묵힌 사람냄새가 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남녀유별을 하던 시대를 갖았던 우리로서는 정의 표출에 대해서 지극히 엄격하다. 그래야만 위엄이 있고 체통을 갖은 양 하며 살아온 긴 세월이어서 그런지 과감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야박하다.
나이 든 부부가 손을 잡고 다정히 걷는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극히 이례적이다. 오히려 그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부가 맞는가 하며 곁눈질 해 살펴본다. 손잡고 걷는 모습은 단순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걸으며 생각하며 상대를 의식하고 동질이 된다. 손 잡고 걷다 때론 손을 놓는 경우를 본다. 상호 뜻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손을 내밀면 쉬이 손을 잡기 마련이다.
신혼 시절처럼 낭만과 여유 그리고 다가서는 마음으로 정답게 걸어 가는 길이다. 나는 호들갑스런 신혼여행은 그만두고 살만큼 산 쯤에 결혼 여행을 하는 것이 풍속으로 자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다. 얼마 전부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걷는다. 처음에는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훨씬 낫다. 손을 잡지 않으면 마냥 허하고 마음이 숭숭 뚫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