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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보시면 웅장한 그림이 환영한답니다- 다음-카패-자유인산악회,
이 시대 白頭大幹과 국내외 명산명소를 탐사하고 있는 傳說속 자유인의 英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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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 숨은 보배 명산+명소을 찾아서, |
<아산 영인산>- 철쭉 명산 영인산 수목원 철쭉 동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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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 다음카페- 자유인산악회02-834-1777, 일시:2026년 4월 28일 기록: 한문희총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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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산 수목원(靈仁山樹木園)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이다.
수목원은 수목유전자원의 수집·증식·보전관리 및 자원화를 위한 연구와 국민들에게 자연학습장으로 제공하고 영인산자연휴양림과 연계하여 상호보완 기능을 갖도록 함은 물론 일부 산불피해지를 복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7년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2년 5월 11일에 정식 개원하였다. 규모는 52만㎡이고, 1,047종의 수목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벚나무 80종, 단풍나무 60종, 목련 82종, 무궁화 100종, 왜성침엽수 35종 등 특화수종이 식재되어 있다. 영인산수목원은 영인산자연휴양림사업소에서 자연휴양림, 산림박물관 등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
영인산 철쭉 동산,
26년 1월 영인산 전 구간을 종주 탐사하며 신선봉-깃대봉-연화봉-닫자봉-상투봉을 만나며 영인산 수목원과
장미공원의 park 공원 조성에 와~~ 산정에 이렇게 훌륭한 철쭉과 장미공원을 조성한 수목원에 감동하였습니다,
| 하여 4월28일 다시금 찾은 영인산에 약간 늦은 감은 있으나 산정 안부(鞍部) 드넓은 평원에 어림잡아 몇~만평 붉은 철쭉과 연분홍 철쭉 색시가 방긋 웃는 거대한 물결에 다시 한번 감동에 빠졌습니다. 봄에 정원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곳곳 색색 온 산 전체가 숨은 철쭉동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산행하며 휠링한 벅찬 가슴에 심금을 울린 영인산 천상의 화원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자유인 한문희총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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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金玉均, 1851~1894) 묘비명(墓碑銘)
오호, 포비상지재. 우비상지시, 무비상지공, 유비상지사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김옥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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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정치가, 개화사상가. 1851년(철종 2)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계몽 운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서구 문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급진 개화 세력에 참여하여 1884년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동했으나 실패하고, 국외로 도피했으나 홍종우에 의해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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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김옥균에 관한 평가에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당시 조선 정국에 비추어 선구자적으로 시세를 파악했던 개화사상가로서의 면모, 청의 내정 간섭을 배제하고 새로운 정부를 건설하여 개혁 정치를 추진하고자 했던 갑신정변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으며, 일본을 맹신하고 정변을 일으키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렸다는 것이나, 민중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일본의 지원이 떨어지자, 청나라의 반격으로 정변에 실패했다는 점 등에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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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모범으로 삼고 일본식 개화를 통해 한국을 개혁하려고 했었으며 일본의 힘을 빌려서 이를 성공하려 했던 인물이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시 잘 나가는 일본을 따르려고 한 그를 혜안이 있는 자로서 칭송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후쿠자와 유키치가 그를 후원했으니 당대에도 비슷한 평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김옥균에 대한 높은 평가는 부분적으로 신중하게 고찰해야 한다. 일본과 가까웠던 개화사상가라는 점을 들어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김옥균의 업적을 부각시킨 적도 있기 때문이다.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2000년에 낸 <새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2탄에서 김옥균의 망명 동기에 대해 "후쿠자와의 진심을 알고도 망명을 한 건지, 후쿠자와가 근대 일본의 개혁가라서 존경해서 그랬는지 모르나 어찌 됐건 잘못된 선택이다"라는 식으로 딱 잘라 비판했다. (중략) |
| 조선의 근대화를 빠르게 이뤄버리려던 그의 뜻은 갑신정변 이후, 당시에 존재했던 개혁의 흐름을 절단 냈고 한시라도 빨리 개혁해야 할 시기에 더욱 후퇴하게 했다. 급진개화파의 강력한 친일 성향과 반역 시도로 인해 고종과 급진 개화파에게 당한 온건 개화파가 급진적인 개혁 움직임에 더욱 경계했고 김옥균이 갑신정변으로 살해한 인물들은 급진개화파의 이익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수구파로 몰린, 온건 개화파의 핵심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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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루(慮民樓):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있는, 조선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웠던 문루 건물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조선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웠던 문루건물로,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게 지은 다락형식의 집이다. 조선 태종 11년(1411) 현감 최안정이 낡은 객사를 고쳤다고 하는데, 태종 13년 백성들의 도움을 얻어 객사 동편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날개 모양인 익공양식이다. 기둥 사이에는 꽃받침 모양의 건축 재료를 가운데 칸에 3개, 나머지 칸에는 2개씩 만들어 처마를 받치면서 건물의 무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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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3칸에 각각 문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는데, 양쪽 문 윗부분에 화살 모양의 나무(홍살)를 나란히 세워 놓았다. 2층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좌우는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작은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앞면 가운데에는 백성의 뜻을 취한다는 뜻의 ‘여민루(慮民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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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긍정의 하루입니다.
2026년 건강 무탈 긍정의 시간들 되시옵소서!..
추천과 댓글 남겨주신다면 福 받는 답니다 ^(^ ,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백두대간종주대,
명산종주와 한문희총대장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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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역사이며 역사는 기록에서 시작됩니다.
댓글 하나 기록원이 힘이 난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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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희망 넘치는 긍정의 세상을 만들어 봅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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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인산 상투봉 표지석에는,
상투봉은 산에 형상이 상투와 같이 뽀족하게
솟아 있다하여 상투봉으로 불리고 있다.
아산영인 향토지에 의하면
동림산의 주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동림산으로 불려졌던 것 같다.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묘비명(墓碑銘)
오호, 포비상지재. 우비상지시, 무비상지공, 유비상지사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조선 말기의 정치가, 개화사상가.
1851년(철종 2)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계몽 운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
서구 문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급진 개화 세력에 참여하여
1884년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동했으나
실패하고, 국외로 도피했으나 홍종우에 의해 피살되었다.
▶여민루(慮民樓):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있는,
조선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웠던 문루 건물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