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드라마 자문위원이신 중앙대 권중달 명예교수님의 글을 인용해 왔습니다.
대하사극 연개소문을 보면서 '연태조'를 제갈량으로 만들려는 데 대한 비판이 많다. 비바람을 부린다든지 하는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구려가 중국대륙과 당당히 맞서는데, 하필이면 제갈량의 수법을 고구려에 동원될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제갈량이 비바람을 부린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삼국지 연의를 읽은 사람들은 연태조도 중국의 대 전략가로 알려진 제갈량이 한 것과 같은 일을 하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전략을 사용했으면 하는 기대이리라.
그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삼국지 연의는 소설이고, 역사적 내용을 가지고 자기의 의도를 드러내려고 쓴 소설일 뿐이다. 그리고 소설은 문학작품이고, 픽션이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 사실 자체가 아니다.
여기서 '자치통감'에 나오는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마의와 대치하고 있는 부분을 보자. 이 내용을 보면 실제로 제갈량은 연의에서 쓰여져 있는 만큼 뛰어 나지 않은 결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자치통감++++
사마의(司馬懿)와 제갈량은 서로 지켜보면서 100여 일을 보냈는데, 제갈량이 자주 도전(挑戰)을 하였으나, 사마의는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제갈량은 마침내 사마의에게 건괵(巾幗)과 부인의 복장을 보냈다.1) 사마의가 화가 나서 표문을 올려서 싸우게 하여 달라고 청하였더니 황제는 위위(衛尉)인 신비(辛毗)로 하여금 부절(符節)을 가지고 군사(軍師)가 되어 그를 제지하게 하였다.
호군인 강유(姜維)가 제갈량에게 말하였다.
“신좌치(辛佐治)2)가 부절을 가지고 도착하였으므로 적(賊)들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본래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굳이 싸우게 해달라고 청한 까닭은 무력을 그들의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일 뿐이요. 장군이 군대에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요.3) 정말로 나를 제압할 수 있었다면 어찌하여 천리까지 가서 싸우게 해달라고 청하였겠소?”
제갈량은 사자(使者)를 파견하여 사마의의 진영으로 보냈더니, 사마의는 그가 잠자고, 먹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만 묻고 전쟁에 관하여서는 묻지를 않았다.4)
사자가 대답하였다.
“제갈공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는데, 하루에 20판(板) 이상의 징벌(懲罰) 문제를 모두 친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먹는 량은 몇 승(升)5)에 이르지 못합니다.”
사마의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제갈공명은 밥은 조금씩 먹으면서 일은 번거롭게 많이 하고 있으니, 그가 능히 오래 버틸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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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보면 제갈량은 최고 지휘자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최고 지휘관이 할 일과 부하가 할 일을 가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는 열심히 한다고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한 것 같다. 그 위에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않고서.....
물론 개개의 사건을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말한다면 제갈량이 부하보다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하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하여 그것을 빼앗아서 자기가 처리한다면 모든 일은 혼자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원칙을 잘 아는 사마의는 제갈량이 보낸 사자에게 간단히 물었다. 요즈음 제갈량의 근황은 어떠한가 하고, 이 사자는 멋도 모르고 사실대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강조 하였고, 사마의는 그 대답을 듣고, 제갈량이 곧 죽을 것을 알아 차렸다.
전쟁이란 이러한 것이다. 사마의는 몇 마디만 듣고도 제갈량이 곧 죽을 것을 알았으니 제갈량은 잔 재주를 잘 부리는 사람이라면, 사마의는 큰 틀로 보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사마의는 그 국내외의 사정을 큰 틀 속에서 보면서 처신하였고, 끝내는 중국을 통일할 기초를 만들었다.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하였는데, 나관중은 왜 제갈량을 그리 높여 두었을까? 무엇을 의도하여 그렇게 소설을 꾸민 것일까? 그것은 주자학 영향이다.
주희는 북쪽 중국지역을 금나라에 내주고 남쪽으로 쫓겨온 남송시대의 사람이다. 남송이 중국 역사에서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힘도, 영역도 금나라를 대항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혈통적으로 예전에 중원지역을 차지하였던 왕조라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주희는 혈통 중심의 정통론을 만들어 냈다. 나관중은 이러한 주자학적 정통론을 그의 연의에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주자학과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혈통론적 정통론이 만연하다. 주자학을 비판하면서도 주자학에서 주장하는 정통론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정통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보면 대체적으로 주자학적 정통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한 것은 호칭문제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우리도 황제라고 불러야 근사한 것 같고, 왕이라고 하면 어딘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것이다.
그러나 한족들에게는 황제가 제일 높은 칭호이지만, 북방에서는 가한 또는 대가한이 가장 높은 칭호로 불리는 곳도 있고, 선우 또는 대선우를 제일 높은 칭호로 여기고 있는 민족도 있다. 우리 나라, 예컨대 신라에서도 제일 높은 칭호를 마립한, 차차웅 등으로 불리지 않았는가? 마립한은 낮은 칭호이고 왕은 높은 칭호인가? 각기 지역, 민족에 따라서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얼마든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가지고 따지는 것은 마치 우리는 대통령이라하고, 미국에서는 프레지던트라고 하며, 대만에서는 총통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로 높낮이를 가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에 그 차이가 있다면 이는 각 나라의 사정에 의하여 결정될 뿐, 호칭이 바로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연개소문에서 '삼국지 연의'적 수법을 빌려 왔다는 것 만으로 민족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일 뿐이다. 아마도 작가도 작품의 구성상 바람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였는데, 이것을 적당히 빌려 올 곳을 못 찾고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제갈량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른 일이다. 그것은 작가의 몫이다. 이러한 점도 고려하면 민족적 감정을 가지고 기운 뺄 일이 아닐터.
첫댓글 연개소문 홈피에서 보고 왔습니다.^^
단순히 삼국지연의 내용을 빌려온 것만으로 비판받는 건 아닌듯 합니다. 물론 당태종이 눈알씹는거부터 한두개가 아닌 삼국지 차용으로 이환경씨의 작가적 역량이야 이미 수준미달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지만 정작 비판의 핵심은 작가의 근본적인 역사인식자체에 있는것 같더군요. 초반에 여러 금석문에 나타난 고구려의 시조전승의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환인,단군등을 들먹이는거 하며 치우천황이 어쩌구 하는데서 거의 작가가 속된말로 환빠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적어도 명예교수란 분이 자문을 한다는 드라마가 기본적인 역사고증을 얼치기 환빠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 가는것에 대한 비판이 핵심인 것 같았습니다.
제국의 아침에서도 환단고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학계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는 내용들을 일반 대중들에게 드라마로서 방영하다니요? 이건 공인으로서도 결코 옳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구려는 조선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건가요? 단군의 이름을 전혀 알지를 못할까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무엇으로 고구려가 우리것이라고 주장하죠? 중국은 자기네 역사는 아니지만 자기네땅에 있었으니 자기꺼다라고 우기잖아요. 우리도 수도가 우리나라에 있었으니 우리꺼라고 우기는건가요? 조선 >> 부여 >> 고구려의 계승관련을 알아야 우리것이라고 할수있는거잖아요. 치우천왕보다는 단군을 들먹이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어떻게 같은지 어떻게 같은민족임을 증명할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가 평양에 단군사당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냈다고 들었습니다만.
쓰신 글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앞부분의 이야기는 삼국지 연의에서 제갈량의 능력이 부풀어지게 된것이 주자학의 혈통정통론 영향때문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뒷부분에서 말씀하신 "따라서 연개소문에서 '삼국지 연의'적 수법을 빌려 왔다는 것 만으로 민족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일 뿐이다." 라는 말과 어떻게 연관되는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가 단순히 틀린 오류라면 무엇이 진실을 논할 수 있는 근거기 되는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연개소문을 보면서 꺼림찍했던 부분들에대한 답이 될 줄 알았는데.. 제가 글을 잘 이해를 못하는것 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저분의 글의 요지는 괜히 삼국지 같은 문제로 드라마의 민족정신이 훼손된 것은 아니다 우연일 수 있지 않느냐 딴지 걸지마 정도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도 위의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족이 붙은 것 같기도 하고... 뭐 교수님이 쓰신 건데 제가 잘못 본 것일 수 있겠지만요.
바람을 부르는 인물 설정은 우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첫회부터 대강이라도 본다면 삼국지연의를 베낀게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가의 몫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몫이어야 마땅합니다. 고구려의 기상을 드높인다면서 막상 구상하는 것이 겨우 삼국지연의 베끼기에 급급한 것이라면, "주몽"처럼 해외에 알려지기를 기대하기는 커녕, 국내에서조차 외면당할 것입니다.
조선 >> 부여 >> 고구려의 계승관련을 꼭 연개소문 드라마에서 나타내어야만 되는가? 좀 그렇네요 차라리 고구려 건국사를 다루는 "주몽"편에서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적어도 연개소문 장군시대라면 중국 수.당에 당당히 맞서서 통쾌한 자주적인 전쟁의 승리역사에 비중을 두는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놈들에게 웃기지말라고 만드는 작품이 아닌가요? 연개소문이 왜 그들과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런 취지로 시작된 것이지만 너무 오버하고 조금 억지스러워서 문제입니다. 굳이 연태조나 개소문이를 제갈량 들먹이며 어거지로 띄어주지 않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말입니다. 사극이 드라마라고 하지만 정도가 있는 법인데, 저건 정도를 넘을 뿐 아니라 너무 억지스럽게 힘을 주어서 본래 취지조차도 퇴색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