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보다 힘들어” 폭염과 싸우는 코로나 전사들
생치센터 간호사 “에어컨 무용지물, 방호복 입고 30분도 버티기 어려워”
8개월째 파견근무 “외박은 딱 한번”
선별진료소 땀 흘리는 구청공무원… “폭염경보 속 근무, 식사는 도시락”
백신호송 대원 “지구 8바퀴 거리”, “냉수 건넨 시민 격려에 힘 얻어”
체감온도가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23일 광주 북구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지친 의료진이 검사부스 안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광주=뉴스1
“칼로 살을 베는 것 같은 추위보다 지금 폭염이 더 힘드네요.”
경기 북부 최북단 생활치료센터에서 8개월째 근무하는 안선화 간호팀장(43·여)은 요즘 폭염과 싸우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방호복 덕분에 체감온도 영하 40도 안팎의 추위에도 2시간가량 버티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폭염에는 30분을 견디기가 어렵다. 수은주가 35도 정도면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 방호복 속 열기는 이보다 더 뜨겁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현장은 끝을 모르는 4차 유행에 대한 불안감에다 폭염까지 겹쳐 그야말로 악전고투 상황이다.
경기 북부 최북단 생활치료센터에서 8개월째 근무하는 안선화 간호팀장.
○ 7개월 동안 외박은 단 하루
안 팀장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A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파견 근무가 해를 넘겨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딱 한 번 외박했다. 안 팀장을 비롯한 의료인력 13명은 모두 센터 안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생활치료센터는 확진자 중 경증 환자를 격리한 곳이다. 하지만 A센터는 고령이거나 천식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모이는 ‘거점’ 센터다. 입소자 5명 중 1명꼴로 상태가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된다. 안 팀장은 인터뷰가 진행된 22일 “오늘 하루만 환자 9명이 상태가 악화돼 센터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며 “의료진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 보호 안경, 페이스실드 등을 동시에 착용하면 에어컨을 켜도 소용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새로 설치된 임시선별검사소 앞에선 박허준 팀장이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22일 오후 4시.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임시선별검사소에서는 박허준 총괄팀장(53)이 땀을 흘리며 검사 안내를 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영등포구청 세금부과과 팀장이다. 하지만 12일 여의도공원에 임시선별검사소를 열면서 현장 책임자로 투입됐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전신 가운을 입고 12시간 동안 일한다.
폭염경보(33도 이상)가 내려지는 오후 2∼4시에는 임시선별검사소 운영을 중단하라는 정부 권고가 있었지만 현장은 쉴 틈이 없었다. 박 팀장은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데 검사를 하지 않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곳은 하루 평균 5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곳이라 혹시 모를 코로나19 전파 위험 때문에 매일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 백신 호송 거리만 ‘지구 8바퀴’
무더운 여름 전국 각지로 백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육군 특전사 백신 수송단이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을 옮기는 곳이면 어디든 호송한다. 수송 일정에 따라 이르면 오전 2시에 출발해 하루 17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협 하사와 아버지 이민우 기장
이상협 하사(25)가 속한 부대는 2월 이후 누적 수송거리가 32만 km에 달한다. 지구를 8바퀴 정도 돌 수 있는 거리다. 이 하사 아버지는 민항기 기장으로 해외에서 백신을 수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아버지가 하늘로 들여온 백신을 아들이 육상에서 이어받아 전국으로 호송하는 셈이다. 이 하사는 “코로나19 이후 아버지를 집에서 만난 지 1년이 넘었다”면서도 “지나가던 시민이 냉수 한 잔을 따라주며 ‘고생 많다’고 격려해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백신 수송 작전 중인 육군 특전사 김보석 중사는 조수석 창문 너머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보석 중사 제공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니 아찔한 사고에 노출될 때도 적지 않다. 실제 같은 특전사 소속인 김보석 중사(26)는 6월 호송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다가 대구 인근에서 고속도로 3중 추돌사고를 목격했다. 김 중사와 동료들은 즉각 호송 차량을 정차한 뒤 사람들을 구조했다. 김 중사는 “호송 임무에 임할 때면 백신, 더 나아가 국민 안전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강조했다.
○ 변이 최전선, 외국인 센터
김기운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기운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49)는 경기도의 외국인 전용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한다. 이곳엔 인천공항 검역소 등에서 확진된 외국인 환자들이 온다. 최근 델타 변이 유행 이후엔 인도네시아계 환자들이 많다. 현재 환자 170명 중 약 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한국 내의 ‘변이 최전선’인 것이다.
변이 바이러스일수록 격리해제 기준이 엄격하다. 최장 45일 격리된 환자도 있다. 김 교수는 “변이 바이러스 유입의 국내 최전선인 만큼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