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日本人, 개방 中國人, 반개방 韓國人>
오만이/사회복지사
註) 아래 글은 학자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국적의 金文學(킨 분가 쿠)의 저서 중 <日中韓 表の顔 裏の顔(일본, 중국, 한국의 겉모습과 속모습)>에서 재미있는 것을 골라보았습니다. 번역기를 이용하였으며, 문맥이 맞지 않거나 번역 오류를 나름대로 수정하였습니다마는...
-金文學은 비교문화학자, 문명비평가, 작가이며 독자적으로 韓中日 비교문화를 개척한 제1인자이다. 1962년 중국 선양에서 한국계 중국인 3세로 태어났으며 1991년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원에 유학 와서 석사, 히로시마(廣島)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년 일본으로 귀화하였으며, 한중일 3개 국어로 출간한 책은 100권이 넘는다.
주요 저작으로 <벌거숭이 3국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 <조국의 영웅을 매국노로 단죄하는 가엾은 한국인>, <한국인이 모르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신 NO로 말할 수 있는 일본>, <조선족 개조론> 등이 있다.
-본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본인-
세균, 때, 피부접촉 등 여러 이물질에 대해 일본인들은 특유의 거부반응을 보인다. 내 주위에는 일본에 온 지 5~6년이나 되었는데도 일본인 친구가 한 명도 없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일본에 와 있는 외국인 사회에서는 외국인끼리만 어울리다가 그대로 귀국해 버리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나와 같은 사람은 모처럼 고생을 해서 일본에 왔으니 가능한 한 일본 사회에 들어가 가족적인 교제나 그룹 차원에서의 교제를 하지 않으면 일본 문화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몇 년 전에 알고지낸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 온 B라는 남학생은 그토록 동경하던 일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버렸다. 상하이에서는 유명 대학의 조교수였던 그가 자신만만하게 일본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정신적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려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만났을 때 “왜 몸이 쇠약해져 있지?”라고 묻자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일본인은 모두 겉으로는 상냥해 보이지만 실제로 마음속은 차가워요. 우리 연구실에는 유학생도 많지 않고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하는 탓도 있지만, 일본어가 서투르다고 해서 괴롭히는 거야.”
옆에 있는 일본인 학생에게 모르는 일본어 漢字 읽는 법을 물었더니 “중국인이 漢字도 읽지 못해? 사전을 찾아봐”라며 퉁명스럽게 대하는 거야.
같은 漢字라도 일본식 발음은 중국인도 모르잖아요. 타국에 와서 고학을 하는데 일본인 친구는 한명도 생기지 않았어.
연구실의 일본인 학생은 매우 차갑다. 그래서 노이로제에 걸려 밤에 잠도 잘 못 잤어요. 연구실에서 꽃구경 갈 때도 나중에 들었는데 일본말이 서툴다고 나만 따돌려 버렸어요. 심한 충격을 받았지요.
몇 달 후 어느 날 밤 B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金씨, 저는 내일 귀국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일본인의 마음은 결코 고귀하지 않아요. 중국으로 돌아가 대학원에 다니는 게 훨씬 나아요.
결국 B는 일본을 등지고 돌아갔다. 사실 이러한 예는 B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 유학 온 중국 유학생 중에는 나중에 反日家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무수히 있다.
그래서 미국에 유학한 학생은 유미친미(留美親美)로, 일본에 유학한 학생은 유일반일(留日反日)이라고 야유를 받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본인의 외국인에 대한 수용 자세에서 오는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다.
일본에 살면서 일본의 친구들 가정에 초대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1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한 번도 일본인 집에 초대받은 적이 없는 유학생도 있었다.
가정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집의 생활상을 모두 드러내는 프라이버시의 공개이며, 그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일본인 중에는 자기 집을 보여주기 꺼릴 정도로 마음을 닫는 사람이 많다. 외국인과 어울리며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인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본인은 이런 보통의 폐쇄적인 일본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존재다.
나는 그런 사람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일본인과는 많이 다른 성격의 소유자!라고 내심 놀랐다.
-개방적 중국인-
중국은 일본과 대조적으로 길에서 알게 된 사람조차 집으로 데려가 밥이나 술을 대접하기도 한다. 열차 안에서 마주 앉아 말을 걸었더니 친해져서 서로 주소나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고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질적으로는 일본처럼 풍요롭지 못하고 국가는 아직 개발도상에 있지만 마음만은 크고 개방적인 성격의 대륙인이다. 장기간 같은 일본어만을 사용해 온 단일문화 섬나라의 폐쇄적인 국민성과는 정반대인 것이 중국 대륙 사람들이다. 먼 옛날부터 오래도록 다민족 사회에서 서로 다른 민족에게 시달리며 살아온 역사적 체험이 대륙인을 개방적인 성격으로 만든 것이다.
대륙은 물도 혼탁하고 더러워 보인다. 중국인들이 생수를 마시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더럽고 열악한 환경은 중국인들에게 일본인과 같은 결벽증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너무 결벽하면 서로 어울려 공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중국인은 옛날부터 채득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대륙에 붙어살기 때문에 성격상으로는 대륙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소탈하고 의젓할 때는 허세가 강한 면도 있지만, 일본인처럼 결벽증에 걸려 배타적이지도 않고 대륙인처럼 지나치게 개방적이지도 않다. 말하자면 반개방성과 반폐쇄성의 혼재라고나 할까? 특히 대륙과 섬나라의 틈새에 위치하여 무한한 외래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개방과 폐쇄를 반복하면서 대륙과 섬나라의 성격을 절반씩 절충한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국제화` `글로벌` `전 지구의 공존`이라고 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떠들썩하게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다. 그런데 가장 국제화를 외치는 나라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국제화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동안 `차별` `외국인 참정권` 문제가 해결조차 안 된 요인도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의 국제화 적응을 위한 대책으로 일본 정부에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일본이 국제화 사회로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획기적인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다민족 사회, 미국과 같은 이민사회로 변할 수 있는 큰 전제조건을 갖춘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국민성에 숨어있는 폐쇄성, 이것을 타파하고 해방하는 것이 일본의 이민정책, 타민족국가 창출의 문화적 기반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