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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요수(樂山樂水)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樂:좋아할 요(木/11)
山:메 산(山/0)
樂:좋아할 요(木/11)
水:물 수(水/0)
(유의어)
인자요산(仁者樂山)
인자요산지자요수(仁者樂山智者樂水)
지자요수(智者樂水)
출전 :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한가로이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본래는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는 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인데, 이런 문장이 뒤를 잇는다. '슬기로운 자는 동적이요, 어진 자는 정적이며, 슬기로운 자는 즐기며,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이때 조심해야 할 글자가 요(樂)이다. 세 가지로 발음되는데 다음과 같다.
○ 즐길 락/낙 : 낙천적(樂天的), 쾌락(快樂), 오락(娛樂)
○ 풍류 악 : 음악(音樂), 악기(樂器)
○ 좋아할 요
논어(論語)의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는 구절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며, 그러한 것들을 즐기며 산다.
이에 비하여 어진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 그 중후함이 산과 같으므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또 어진 사람은 대부분 고요한 성격이며, 집착하는 것이 없어 오래 산다는 것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원래의 뜻은 이와 같으나, 오늘날에는 보통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산수의 자연을 즐기고 좋아하다. 산과 물의 경치와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 요산(樂山)이고 요수(樂水)다. 요산은 부산에서 활약한 소설가 김정한(金廷漢)의 아호로 친숙한 말이기도 하다.
즐길 락(樂) 글자는 악기 북을 나타내는 백(白)을 작고 작은(幺; 요) 실로 나무(木; 목) 받침대에 묶은 것을 형상화하여 풍류 악(樂)을 뜻하고, 누구나 즐기고 좋아하니 좋아할 요(樂)가 되었다고 한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이 말은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고 한 공자(孔子) 말씀에서 나왔다.
자연을 좋아하는데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은데 처음 뜻을 살펴보자.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서 지자가 물을 좋아하고 인자가 산을 좋아한다면서 앞의 말 뒤로 이렇게 이어진다. '슬기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知者動, 仁者靜).'
대체적인 풀이는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롭기 때문에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그래서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데, 어진 사람은 심지를 한 곳에 굳히고 쉽게 움직이지 않아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그 다음은 이렇다. '슬기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知者樂, 仁者壽).'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를 좇고자 항상 움직이므로 여러 가지 지식과 견문이 넓어지니 자연히 세상만물을 즐기게 되고, 어진 사람은 남과 맞서 싸우지 않고 화합하려 하기 때문에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이 오래 살 수 있다는 풀이다.
물론 지자(知者)의 즐거움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서 다스리는 데서 찾는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완성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이라고도 한다.
또 어진 사람의 장수는 오래 산다기보다 안정되었기에 떳떳함이 있어 오래 갈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슬기로운 사람, 어진 사람 어떻게 풀이하든 다 좋은 말이다.
우스개로 낚시하러 바다로 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등산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은 슬기롭기 때문이라고 서로 자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내세울 뿐 다른 취미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지혜로움과 어짊이 모두 중요한 덕목이지만 단지 어느 쪽이 더 두드러지는 것인가에 따라 성질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더라도 지혜가 지나쳐 속셈만 차리고, 인자함이 넘쳐 매사에 맺고 끊음이 없이 물러터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6, 雍也篇(옹야편)
第1章
子曰, 雍也可使南面.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남면하게 할 만한 사람이다.'
(解)
공자의 인물평은 계속된다.
염옹(冉雍), 성은 염씨, 이름이 옹. 자는 중궁(仲弓)으로 공야장편 제5장에 이미 나왔던 인물이다. 공자의 문하에서 덕행으로 이름난 사람인데, 여기서 공자는 이 사람의 인물됨에 대하여 짤막하지만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을 하고 있다.
남면(南面)한다. 남쪽으로 본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황제인 천자나 왕인 제후가 궁궐에서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회를 하거나 종묘에 제례를 행할 때에 황제 스스로는 남쪽을 향하며, 신하들은 그 황제를 향해 북쪽으로 조아린다. 즉, 남면한다는 것은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과도 통하며, 때로는 남면이라는 단어자체가 황제를 뜻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뜻은, 염옹을 천자로 옹위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공자는 제자 염옹에게서 천지만물을 품에 안은 천하적 세계관과 그 세계를 다스릴 만한 덕(德)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곧 염옹이 글자 그대로 군자(君子)라는 소리다.
염옹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가어'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난에 처하여 손님 같았고, 신하를 부림에 빌림과 같았으며,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깊이 원망하지 않았으며, 옛 죄를 굳이 들추어내지 않았다. 이것이 염옹의 행실이다.'
손님 같다는 것은 긍지를 잃지 않고 자세를 흐트러지게 하지 않는 것, 빌림과 같다는 것은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히 한다는 것이다.
第2章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겠지. 대범한 사람이니라.'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중궁이 말하였다. '몸가짐이 경건하면서 그 행하는 바가 대범하여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펼친다면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몸가짐도 행하는 바도 줄곧 스스럼없기만 하다면 대범한 것도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니겠습니까?'
子曰, 雍之言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 그대로구나.'
(解)
簡(간)은 간략한 것, 자잘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고 대범한 것을 말한다. 자상백자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노나라의 군자라고 한다. 행동에 구애됨이 없는 사람이어서 공자를 만났을 때에도 제대로 의관을 차려입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에 대한 염옹과 공자의 평가인데, 염옹의 말이 정론이라 공자도 그냥 인정하고 있다. 앞장에서 '지나간 잘못을 캐묻지 않는다'고 한 염옹이 이렇게 따질 정도면 자상백자의 그 '대범함'이 좀 지나쳤다고 보아야 할까.
第3章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애공이 물었다. '제자분들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孔子對曰, 有顔回者, 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이가 있어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고, 지금은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만한 자에 대해 들은 일이 없습니다.'
(解)
애공은 위정편 19장에 나오는 노나라의 임금이다. 제자 중의 훌륭한 사람에 대해 물어본 이 질문에, 공자는 땅 속이 아니라 가슴속에 묻은 애제자 안회의 얘기를 한다.
가난했지만 학문을 배우는 즐거움에 그 가난을 잊었던 천재 안회. 그 호학의 성과가 바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 행동철학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가난과 고초로 안회는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마는데, 70세의 나이에 이 자식같은, 아니 어쩌면 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 제자의 죽음에 공자는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
안연이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도다. 하늘이 나를 버렸도다.' (선진편 9장)
안연이 죽었다. '공자께서 통곡하다 쓰러지셨다.' (선진편 10장)
不遷怒, 不貳過(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공자가 바치는 묘비명(墓碑銘)이기도 하다.
第4章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자화가 제나라에 사자로 떠나게 되자, 염자가 그의 모친을 위하여 곡식을 주고 싶다고 청했다.
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부(釜)를 보내 드려라.' 염자가 더 주겠다고 하자, 공자께서, '한 유(庾)를 보내 드려라.'
하셨는데, 염자가 5병(秉)의 곡식을 보내자,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赤)이 제(齊)로 떠날 때에는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털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듣건대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돕지만 가진 자에게 보태 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解說)
자화(子華)는 공야장편 8장의 인물평에 나온 공서화(또는 공서적)를 말한다. 의용(儀容; 거동과 용모)이 빼어나고 외교에 능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도 강대국 제나라에 가는 사자로 뽑혔다.
염자(冉子)는 역시 같은 공야장편에 나오는 염유(또는 염구)로, 노나라의 실력자 계씨네 집의 집사로 있었다.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그 주인과 나라를 위해 힘썼으나 무도한 세도가 계씨를 막지 못하여 공자에게 번번이 쓴소리를 들었다. 여기서도 한소리 듣는데, 살펴볼 만하다. '염자'라는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 장은 염유의 제자가 기록한 것으로 본다.
당시에는, 누가 공무로 어디 먼 길을 떠나면, 남은 가족들에게 얼마간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모금의 총무를 염유가 맡았나 보다. 그래서 '스승님도 좀 도와주십시오' 하고 돈, 아니 쌀을 걷으러 왔다.
이 부조는 공자 개인 차원에서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공자 문하의 공금일 수도 있는데, 각자 십시일반 조금씩 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자는 한 부(釜; 6되 4홉)를 주라고 했다. 이게 작았나보다. 염유는 '아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한다. 공자는 한 유(庾; 16되)를 주라고 한다. 염유는 이번에는 더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염유 자신이 내는 걸 나중에 보니 5병(秉; 16섬, 5병이면 80섬)을 냈다. 대략 5병은 1부의 125배라고 한다. 요즘 단위로 다시 말하자면 공자가 만원 냈는데 좀 더주세요 해서 2만 5천원 내니까 염유는 125만원을 내 버린 것이다.
공자는 가만히 보다가 드디어 염유에게 한소리를 한다. 관습상 성의를 표시하는 건 나쁘지 않다. 그래서 공자도 군말 없이 내었다. 문제는 액수다. 아마도 한 부는 최소 단위였을 것이다.
공자는 자기가 간략한 성의표시만 한 데 대해, 공서화의 부유함을 들어 말한다.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털가죽옷을 입었다'는 것은 공서화가 가난을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 잘 산다는 것을 뜻한다. 남아 있는 가족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인 부유한 제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조를 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다.
第5章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鄰里鄕黨乎.
원사가 공자의 읍재(邑宰)가 되었는데, 9백의 곡식이 지급 되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공자께서는 '사양할 것 없다. 이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解)
원사는 공자의 제자로, 원(原)은 성, 이름은 헌(憲), 자는 자사(子思)이다. 공자보다 36세 연하로, 노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송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청빈한 사람의 대표로 후세에도 전해지고 있다.
공자는 정공 9년부터 11년까지의 3년간 꽤 높은 벼슬살이를 했는데, 그때 이 제자를 자기 가신으로 삼아 영지의 관리를 맡겼다.
9백이라고만 하고 단위가 얼마인지 나오지 않아 이게 얼마나 되는 액수인지는 알 수가 없는데, 아마 이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 따로 표기하지 않은 것 같다.
사기 공자세가에 보면 공자가 자기를 스카웃 하려는 위나라 영공의 질문에 '6만을 봉록으로 받았습니다'고 대답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원사의 봉록과 비교해 볼 만하다.
아무튼 그 얼마 되도 안한 월급을 원사는 사양한다. 공자는 그냥 불우이웃돕기에 쓰라고 한다.
第6章
子謂仲弓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공자께서 중궁을 평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잘났으면, 제물로 쓰지 않으려 한들 산천의 신들이 그냥 두겠느냐?'
(解)
중궁은 이 편의 첫 두 장에 등장하는 염옹의 자다. 염옹은 말했다시피 호평에 인색한 공자가 그냥 군말없이 군자라고 말했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염옹은 출신이 천했다고 한다. 염옹의 아버지는 천인(賤人)이었을 뿐더러 행실도 아주 악했다고 한다. 그러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염옹은 훌륭하게 자랐다. 공자는 이것을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붉은 색을 숭상했기에, 의식에 제물로 쓰는 소는 털이 붉어야 했다. 그런 소는 어릴 때부터 잘 먹이고 고이 길러서 중요한 의식에 썼다.
이우(犁牛)는 얼룩소인데, 젖소마냥 흰색 검은색 얼룩이 아닌 울긋불긋한 털을 가진 소를 말한다. 이런 소는 희생에 쓸 수 없어서 그저 논밭을 가는 농사일에만 썼다. 공자는 염옹의 신분을 이 얼룩소에 빗댄다.
그러나 그런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아주 붉게 잘 빠진 소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소가 자라매 뿔도 아주 잘 생긴 미남 소가 될 수도 있다.
곱게 잘 기른 붉은 소보다 막 키운 얼룩소의 인물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러한 잘난 소를, 얼룩소의 새끼라 하여 제물에서 빼어 버린다면, 그 제물을 받아야 할 산천의 신령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얘기다.
第7章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자왈, 회야, 기심삼월불위인, 기여칙일월지언이이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는 마음이 석 달이나 인(仁)에서 떠나지 않는데, 그 밖의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쯤 어쩌다가 인에 이를 뿐이다.'
(解)
회(回)는 이번 편에 직간접적으로 많이 나오는 안회이다. 불위(不違)는 떠나지 않는다,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지(至)는 겨우 다다른다는 뜻이다.
공자의 안회에 대한 평가다. 인(仁)을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학습목표라고 보았을 때, 공자 문하의 제자들도 각각 그 학업성취도의 편차가 있었을 것이다.
아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하루 이틀 반짝 좀 뭐가 되는 듯도 했던 사람, 한 달 정도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 안회의 석 달은 정말 딱 삼개월이 아니라 그 정도로 긴 시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第8章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계강자가 여쭈었다. '중유(자로)는 정치를 시켜도 될까요?'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과단성이 있지요. 정치를 못할 이유가 있나요?'
曰, 賜也可使從政也與.
계강자가 여쭈었다. '사(자공)는 정치를 시켜도 될까요?'
曰, 賜也達, 於從政乎何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앞일을 내다봅니다. 정치를 못할 이유가 있나요?'
曰, 求也可使從政也與.
계강자가 여쭈었다. '구(염유)는 정치를 시켜도 될까요?'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다재다능하지요. 정치를 못할 이유가 있나요?'
(解)
노나라의 그 당시 최고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의 제자들을 임용하기 위하여 공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자로, 자공, 염유의 능력에 대해 묻고 있는데, 공자가 박자에 맞추어 대답하고 있다.
이런 문답은 이 앞에도 있었다. 맹무백이 공야장편 8장에서 자로, 염유, 공서화에 대해 같은 의도의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질문의 방식과 태도에서 계강자와 맹무백이 다른 점이 있다.
맹무백은 저 세명에 대해 그들이 '어진지(仁)'를 물었다. 최대한의 경의다. 거기 대한 공자의 대답도 조심스럽다. 제자들의 능력은 가능한 한 어필해 주되, '그가 어진지는 알 수 없다'고 말을 맺는다. 이것도 예의이다.
계강자는 다르다. 직선적이고 노골적이다. '얘 좀 쓰려고 하는데, 얘 일 잘해요?' 까지는 아니라 할 지라도, 굳이 예의를 갖추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공자의 대답도 거침이 없다. '못 할 이유가 없지.'
물론 세 제자들의 재능을 강조하여 추천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한쪽 말만 듣고도 옳고 그름을 어김없이 판단할 수 있는' 자로의 과단성을,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할 줄 아는 자공의 혜안을, 무슨 일이든 맡기면 해내는 염유의 다재다능 함을 들어 그들의 등용을 돕는데,
계강자는, 용감하지만 자기 말에 굽히지 않을 듯한 자로와, 자신의 검은 속마음까지 꿰뚫어볼 듯한 자공은 임용하지 않고, 자기가 어떻게든 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염유를 집사로 채용한다.
第9章
季氏使閔子騫, 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계씨가 민자건을 비(費) 읍의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민자건이 찾아온 사람에게 말했다. '나를 대신해서 좋게 거절해 주십시오. 만약 나를 다시 찾아온다면 나는 틀림없이 노나라를 떠나서 문수의 북쪽(제나라)로 가 있을 것입니다.'
(解)
민자건(閔子騫)은 공자의 제자인데 비교적 나이가 많다. 15살 아래. 공자의 초창기 제자로 볼 수 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덕행으로 안회 다음이었다고 한다.
宰(재)는 지방 장관, 汶(문)은 문수를 가리키는데 강 이름이다. 노나라와 제나라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강으로, 남족은 노나라. 북쪽은 제나라이다. 汶上(문상)은 '문수가'라는 뜻인데 방위를 포함하는 개념일 때는 북쪽을 뜻한다. 문수라는 강의 북쪽이다.
第10章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 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백우가 병에 걸렸다. 공자께서 문안하러 가서, 창문 너머로 그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운명이라는 것이냐! 이만한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만한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解)
백우는 공자의 제자 염경(冉耕)의 자이다. 염경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겨우 7세 어린 초기 제자로, 민자건, 안회와 더불어 덕행으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염백우가 몹쓸 병에 걸렸다. 한센병(나병, 문둥병)이었다고 한다. 공자가 문병을 가서도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창 너머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그런 말이 있는데, 옛 사람들은 이러한 병을 천형(天刑; 하늘의 형벌)이라고 불렀다.
공자는 기가 막힌다. '이럴 수가 있나!' 왜 이렇게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일까. 원망과 허망함과 의문이 다음 말로 이어진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람을 살리면 더 훌륭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하늘은 왜 그런 일을 용인하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니 다시 억울하고 가슴이 막힌다. '이만한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슬픔을 증폭시킨다. '이만한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第11章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회야! 한 그릇 밥, 한 바가지 물에 누추한 오두막에 살면서, 다른 사람이라면 그 시름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배우는 즐거움을 바꾸려 하지 않는구나. 어질구나 회야!'
(解)
안회의 전설적인 가난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은 그의 의연함, 그리고 그에 대한 공자의 찬사다.
簞(단)은 대나무통, 瓢(표)는 쪽박.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 함은 거의 거렁뱅이의 식사다. 안회는 참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공자는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안회에게 감탄한다. 가난하면서도 학문에 뜻을 두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군자란 꼭 가난해야 하는 것일까?
이번 장까지 덕행으로 이름난 제자들, 민자건, 염백우, 안회가 연달아 나왔는데, 이들은 모두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했다. 부유하다고 알려진 자공, 염유, 공서화는 모두 공자에게 그다지 후한 평을 받지 못한다.
이들의 잘못은 부유함에 있는 것일까? 가난과 부유함, 이것은 덕행이나 군자의 도와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정명도(程明道)는, '안회가 즐거워한 것은 그 가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큰 즐거움이 있어서 가난의 괴로움을 잊은 것이다. 여기에 큰 뜻이 있다'고 했다.
第12章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염구가 말하였다. '스승님의 도(道)가 기껍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따르기에 힘이 부족합니다.'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서 포기하는 법. 너는 지금 스스로 선을 긋고 있구나.'
(解)
염구는 자주 등장하여 매번 혼나는 공자의 제자 염유다. 여기서도 혼나고 있다. 이인편 6장에 '하루만이라도 인에 힘을 쓰는 경우에, 그것을 할 힘이 부족한 사람을 나는 만난 적이 없다. 있을 테지만 나는 만난 일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편과 뜻이 통한다.
공자는 애제자 안회가 어려운 형편에도 도를 익히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안쓰럽지만 대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잘먹고 잘 살면서도 '에이, 스승님 말하는 대로 하려면 사람이 살수나 있나요. 힘들어서 못해요' 하는 염유가 있다. 공자의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다.
第13章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라. 소인 같은 선비가 되지 말고.'
(解)
자하는 학이편 7장에 나오는 공자의 제자다. 공문십철(孔門十哲) 중에서 문학에 뛰어난 제자로 꼽힌다. 그런 자하에 대한 공자의 걱정어린 평가이자 당부다.
儒(유)는 선비. 지식인. 교양이 있는 사람. 선비면 다 선비지 군자다운 선비는 뭐고 소인 같은 선비는 뭘까.
군자유(君子儒)는 그 교양과 행위가 천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백성을 안정시키는 유용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며, 소인유(小人儒)는 시야가 좁고 기껏해야 유식쟁이이거나 또는 길흉의 의식을 주관할 만한 정도인 자를 말한다.
자하는 문학과 고전에 대해 아주 박식한 사람이었는데, 디테일에 치중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공자는 그런 것을 걱정한 것이다.
第14章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耳乎.
자유가 무성의 재(宰)가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인재를 얻었느냐?'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자유가 말하였다.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을 감에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무가 아닌 한 제 방에 오지 않습니다.'
(풀이)
자유는 이인편 7장에 나오는 공자의 제자이다. 무성은 산동성 비현 서남쪽에 있는 성으로, 노나라 국방의 요충지였다. 자유가 그곳을 다스리게 되자, 공자가 제자에게 훌륭한 인재를 채용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자유가 말하는 담대멸명이라는 사람도 공자의 제자인데, 성이 담대, 이름이 멸명, 자는 자우(子羽)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주 못생긴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공자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인물로 여겼다가, 나중에 그 실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자유가 말하는 담대멸명이라는 인물은,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사적인 일로 수령을 찾지 않는 사람이다.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다'는 것으로는, 모든 행동을 반드시 바르게 해서, 작은 것을 보고 빨리 하려고 서두르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고, '사적인 일로 수령을 찾지 않는다'는 것으로는, 스스로 지킴이 있어, 자기를 굽혀 남을 따르는 사사로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第15章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다. 패하여 달아날 때 후위를 맡아 보았는데, 성문에 도착했을 때 자기 말을 채찍질 하며 '내가 후위를 맡아 본 게 아니라, 말이 잘 달리지 못했을 뿐이다'고 말하였다.'
(解)
맹지반은 노나라 대부로 이름은 측(側)이다.
伐(벌)은 공로를 자랑하는 것, 奔(분)은 싸움에 져서 후퇴하는 것, 殿(전)은 그러한 후퇴전에서 후방을 맡아 수비하며 적의 추격을 막는 것을 말한다. 공격할 때의 선봉이 중요한 것처럼, 후퇴할 때의 후위도 매우 중요하다. 책(策)은 채찍질하는 것이다.
맹지반이 전투에서 후위를 맡았던 것은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애공 11년의 일이다. 맹지반은 패주하는 아군의 안전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맨 뒤에서 후위를 지켰지만, 스스로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가 늦게 온 이유를 '말이 잘 달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第16章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자왈, 불유축타지녕, 이유송조지미, 난호면어금지세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축타의 달변이나 송조의 미모가 없다면 지금 세상에 살아남기 어렵다.'
(解)
축타(祝鮀)는 위나라의 대부로, 축(祝)은 태축이라는 벼슬 이름, 타(鮀)가 본명, 자는 자어(子魚)이다. 굉장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냥 말만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공자가 '위나라를 지탱하는 세명의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노나라 정공 4년에 소릉에서 제후들이 회합하였을 때, 자기 나라의 대표로 나와 토론으로 다른 나라 대부들을 모두 발라 버렸다고 한다.
송조는 송나라의 공자 조(朝)이다. 아주 미남자였다고 한다. 위나라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의 젊은 시절 애인으로 유명했다.
어떤 인물의 덕행이나 인품은 도외시되고, 말을 잘하고, 인물이 잘난 것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된 것을 공자는 개탄하는 것이다.
第17章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누구도 이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길로 가려하지 않는 것일까.'
(解)
공자는 자신의 도(道)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든 이 진리에 공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길은 전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며, 우주의 섭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것이 공자의 눈에는 번히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도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공자는 그런 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위험하고 우스꽝스러운 확신일 수도 있다. 어떻게 영감쟁이 지 생각이 백프로 맞다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가 아무도 공감해 주지도 동의해 주지도 않는 얘기를 하면서 그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공자는 당대에 그런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소수의 식자들은 공자의 생각과 말에 진리의 숨결이 배어 있음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나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은 공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저런 탄식도 하는 거다. 그렇게 배척 받았지만 공자의 말이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기에 오랜 세월 뒤의 우리가 이렇게 보고 듣는 것이겠지...
第18章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성이 교양을 누르면 야인이고, 교양이 천성을 누르면 헛똑똑이다. 천성과 교양을 겸비한 연후에야 군자가 되는 것이다.'
(解)
質(질)은 사람이 타고 난 자질, 천성, 성품. 문(文)은 학습된 교양, 예절. 야(野)는 배운 바가 없는 야인, 야만인. 사(史)는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있으나 자신의 생각이 바탕이 되지 못하고 그저 겉치레로 남의 지식만 외워 되뇌일 뿐인 사람.
타고난 성품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아 아는 것이 없으면 그저 온순한 야만인에 지나지 않고, 반면에 올바른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영혼 없이 남의 지식만 헛되이 쌓았을 뿐이라면, ... 그 지식을 무엇에 쓰지?
군자란, 지와 덕을 함께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위정편 15장의, '지식을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한 망상에 그칠 뿐이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체계를 세우지 못해 어지러워진다'와 비교해 보아도 좋겠다.
第19章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정직한 것이니, 그렇지 않은 인생이란 겨우 죽음만 면한 것이다.'
(解)
이런 장에도 설명이 필요한가? 진정으로 사는 것과, 그저 죽지 않을 뿐인, 아니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 뿐인 삶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第20章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解)
유명한 구절이다.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것의 목적어는 아마도 도(道)일 것이다. 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 그 도를 좋아하며 가까이하고자 하는 자, 이미 도를 체득하고 그것을 즐기는 자를 들어 배움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第21章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中)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지식을 말해줄 수 있지만, 그 이하의 사람에게는 말해줄 수 없다.'
(解)
지식과 학습의 차별대우다. 알아먹을 만한 놈에겐 진리를 말해줄 수가 있지만, 알아먹지 못할 바보에게는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양화편에도 '아무리 해도 최상의 지자(智者)와 최하의 바보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말해줄 필요가 없는 자와, 말해줘도 소용이 없는 자를 뺀 그 중간쯤을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다.
第22章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가 지혜에 대하여 여쭈어보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옳다고 하는 일에 힘쓰고, 신(神)을 존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혜롭다 할 수 있을 것이다.'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인(仁)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자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이익을 얻는 것은 그 뒤의 일로 하니, 그리하면 가히 어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解)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위정편 5장에서 공자의 수레를 몰았던 사람이다. 여기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있다. 지(知)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仁)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여기서 '백성의 뜻'을 이야기한다. 왕이 지배하고, 제후가 권력을 갖던 시절이지만 공자는 '백성의 뜻'을 헤아려 그에 힘쓰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낱 '귀신'에 불과할 뿐인 '신'에게는, 존경을 바치는 것으로 족하지 거기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2,500년 전의 말로는 파격적인 소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공자 당대에도 '백성이 곧 신의 주인이다'는 말도 있었고, '나라가 바야흐로 흥하려 할 때에는 백성에게 묻고, 바야흐로 망하려 할 때에는 신에게 묻는다'는 말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 때도 깨어있는 사람들은 있었나보다.
이 문답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래서 이 장의 대화를, 번지가 벼슬살이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인(仁)을 물었을 때의 답,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그 뒤에 이익을 구한다'는 것도 벼슬아치가 해야 할 덕목이다. 공직에 복무하는 제자에게 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리고 받아 들이는 제자의 인품에 맞추어 각기 다른 가르침을 주었던 공자의 평소 교육방침으로 보아, 번지는 평소 저 말과 반대되는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즉, '백성의 뜻은 묻지 않고 신에게만 매달리며, 힘써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익을 먼저 찾으려 하는 벼슬아치' 였기가 쉽다. 실제로 그랬다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꽤나 붉어졌을 것이다.
第23章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자는 정적이다. 지혜로운 자는 낙천적이고,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린다.'
(解)
유명한 장이다. 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나가다 한번쯤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번지에게 지(知)와 인(仁)을 말한 김에,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영리하다. 민활하게 움직이는 그의 머리와 생각은 마치 물과 같아서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아주 자유롭다. 그래서 부드럽고 동적이다.
또한 지혜롭기에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 법(流水不爭先)'을 알아서 순리를 거스르는 무리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삶은 항상 즐겁고 낙천적이다. 바위를 만나도, 폭포를 만나도 결국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멀리 바다로 갈 것을 아니까 원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어진 자는 흔들림이 없다. 착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굳건한 확신이 있다. 인(仁)과 의(義)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호연지기는 든든히 대지에 뿌리를 내려 마치 거대한 산과 같다.
그 산은 아주 넓고 커서 풀과 나무, 새와 짐승을 내치지 않고 가득 품어 안아도 남음이 있다. 작은 돌이라고 해서 하찮다고 저버리지 않고, 큰 바위라고 해서 무겁다고 하지 않는다.
비바람이 쳐도, 땡볕이 내리쬐어도,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그 산은 조금도 힘들어 하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조용히 굳게 서 있다.
第24章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나라는 한번 변하면 노나라에 다다르고, 노나라는 한번 변하면 도(道)에 다다르리라.'
(解)
이 두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백이숙제 때 주나라 무왕의 역성혁명을 말해야 한다.
당시는 은(殷또는 상(商))나라의 시대였는데,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그 앞 왕조 하나라 걸왕에 못지 않은 폭군이었다. 그 무도함을 응징하기 위해 주 무왕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 무왕의 책사(策士)가 유명한 태공망 강자아 여상, 즉 우리가 잘 아는 강태공이다.
혁명이 성공하자, 강태공의 지대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무왕은 제나라를 그에게 영지로 봉하여 준다. 제나라의 공실은 그의 후예들이다.
노나라로 가보자. 노나라의 시조는 무왕의 동생 주공 단(周公 旦)인데, 이 역시 혁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혁명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고, 웅변과 연설로 사람들을 모으고 설득했으며,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형에게 천하를 주었다.
주공의 업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형인 무왕이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고 어린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주공은 섭정으로 조카를 보필한다.
형은 죽고, 조카는 어리며, 천하의 인심은 안정되지 못한 때, 욕심이 있는 자라면 찬탈을 꿈꾸었을 것이고, 능력이 없는 자라면 흔들리는 천하를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공은 깔끔하고 훌륭하게 해낸다.
노나라 공실은 이 훌륭한 주공의 후예다. 공자가 평생 존경하고 꿈꾸고 숭배하며 닮으려고 했던 인물이 바로 이 주공 단이다. 물론 자기 나라 시조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두 나라는 갈 길을 달리한다. 제나라는 아주 국력이 강한 나라여서, 춘추오패(춘추시대의 다섯 패자), 전국칠웅(전국시대의 일곱 강국)에 항상 끼며, 남쪽의 초나라, 서쪽의 진나라와 더불어 항상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힘에 의존한 패도정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노나라는 아주 약했다. 다른 나라에 싸움을 좀체 걸지도 못했고, 싸웠다 하면 지기 일쑤였다.
공자의 말년에 제나라가 대규모로 침공해 올 기미를 보이자, 공자는 자공을 보내 외교술로 겨우 막아내는데, 그때도 대놓고 노나라는 아주 약하다는 말이 자공의 입에서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그렇다면, 이 강대국인 제나라가 한번 변혁하여 겨우 노나라에 이르고, 약소국인 노나라는 변혁하면 선왕들의 도에 이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반대로 되어야 상식적으로 옳은 소리가 아닐까?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 당시에 제나라의 풍속은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고 과장과 속임을 좋아했으니, 바로 패도정치의 남은 습속이요, 노나라는 예절을 중히 여기고 신의를 숭상하여 아직도 선왕의 유풍이 남아 있었다. 다만 어진 사람이 죽고 훌륭한 정치가 그쳐 폐지됨과 실추됨이 없지 않았다. 도는 선왕의 도이다. 두 나라의 정치는 풍속에 아름답고 나쁜 차이가 있으므로 변화하여 선왕의 도로 감에 어려움과 쉬움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국력을 키우기 위해 인의와 예절을 저버린 제나라보다, 비록 약소하지만 도의와 예절을 지키는 노나라가 더 낫다는 말이다.
第25章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고(觚)가 고가 아니니, 고야! 어디로 갔느냐, 고야!'
(解)
이 이야기는 공자가 고스톱을 치다가 점수가 나서 고를 외치는 소리는 물론 아니고, 아마도 공자가 술을 마시다가 한 말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고(觚)는 네모나게 각진 술잔을 말하는데, 이 잔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일까?
고(觚)는 말했다시피 각진 술잔이다. 그런데 이 무렵, 그 모서리가 없어졌다. '네모난 술잔'의 '네모'가 없어졌다면, 그 술잔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공자의 시대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중이었다. 왕이 왕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그런 시대였다. '네모나지도 않은 네모진 술잔'의 세상이 된 것이다. 공자는 술잔에 빗대어 그것을 개탄한 것이다.
第26章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재아가 여쭈었다. '어진 사람은, 다른 어진이가 우물에 빠져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구하러 따라 들어가야 합니까?'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는 거기까지 갈 수는 있지만 구덩이에 빠지지는 않는다.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아예 사려를 잃게 할 수는 없다.'
(解)
재아는 공야장편 10장에서 낮잠을 자다가 공자한테 심한 꾸중을 들은 제자이다. 말솜씨가 아주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 덕이 변설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그 재아가 여기서 또 공자의 심기를 건드린다. 어진 이가 우물에 빠졌다고 한다. 다른 어진 이가 그것을 들었다. 자, 그를 구하러 자기도 따라 들어가야 하는가?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재아는 공자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말했다시피 재아는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고,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공자는 그것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공자 문하에서 '말만 잘하는 사람'은 인(仁)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말까지 듣는다.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가 슬로건인 것이다.
재아는 그것이 불만스럽지 않았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아의 저 질문이 도발로 보인다. 극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자, 그 잘났다는 너희는 어떻게 해볼래?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그 훌륭하다는 어진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 구해야 한다 구해야 한다 말만 할 거냐? 아니잖아 너희들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애들이니까. 뛰어들어야지? 그렇지? 자 대답해 봐 공자영감. 재아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다음의 공자의 대답 때문이다. 그냥 '구하러 가야지' 라거나 '그래도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라'고 하지 않고, 구덩이(함정)에 빠진다거나, 속인다거나, 사려를 잃는다는 둥의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재아의 말을 함정이나 말장난이라고 여기는 것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본문의 欺(기)와 罔(망)은 둘 다 속인다는 뜻이 있으나, 欺(기)는 이치가 있는 것으로 속이는 것, 罔(망)은 이치가 없는 것으로 속이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한 말, '우물가로 갈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은, 몸이 우물가에 있어야 우물 안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나, 같이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안의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군자가 비록 사람을 구제함에 간절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나 응당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第27章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문(文)에 널리 배우고, 예(禮)로 단속한다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解)
문(文)은 그저 단순히 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서예악의 고전문화와 교양일반을 말한다. 박학(博學)은 널리 배움. 약(約)은 단속하여 다잡음. 불(弗)은 불(不). 반(畔)은 배반함을 말한다. 어긋난다는 것은 도(道)에서 어긋남을 가리킨다.
학문을 닦고 예를 지킨다는 것이 군자와, 또 그 군자가 되려고 하는 공자 문하의 제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第28章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께서 남자(南子)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만약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解)
남자(南子)는 위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으로, 이 편 16장에 잠깐 그 이름이 나왔다. 시호에 영(靈)자를 붙인 것은, 최악이라는 뜻으로, 실체의 사람이 아니고 혼령에 가까운, 그러니까 있으나 마나한 군주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위영공의 행적을 보면, '그의 규문 안에 자매가 따로 없었다'고 할만큼 여색에 빠졌는가 하면, 총신 미자하와의 남색에도 빠져있었고, '술을 마시고 음악에 빠져 국가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사냥을 하느라 제후의 회맹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수준 이하의 군주였다.
딱 한 가지, 그가 잘한 일이 있다면, 현인(賢人)을 우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위나라에는 중숙어, 축타, 왕손가라는 세명의 대부가 있어 나라를 지탱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에게 정치를 맡겼다는 것일 뿐, 스스로는 관심이 없었다.
위영공이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다보니, 실권은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손에 가게 되었는데, 그것을 틀어잡은 것이 바로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였다.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한 이 여자의 인품이 훌륭했다면 다행한 일이었을 것이나,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이 여자, 남자(南子)의 품행도 좋지 않았다. 미남공자 송조와의 젊은 시절 일은 로맨스라고 치더라도, 이 여자가 나오는 모든 기록마다 따라붙는 단어는 '음란'이다.
이런 문제적 여인을 공자가 만나러 갔다. 아마도 정치적인 포부를 펴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위나라에서 그 뜻을 펴려면, 허수아비 위영공과 얘기를 해선 될 일이 아니었기에 남자(南子)를 만나서 담판을 지으려고 한 것일 지도 모른다.
자로는 이런 것을 싫어한다. 공자는 이 외에도 노나라의 배반자 공산불유를 만나러 가려고 한 적도 있었고, 진(晋)나라의 배반자 필힐을 만나러 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두번 다 제의를 받은 것인데, 공자는 거절하지 않았다. 자로는 그때도 싫어했다. 우직하고 외골수인 이 제자는 스승이 그런 찌질이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싫은 거였다.
게다가 이번엔 그 대상이 소문도 더러운 여자다. 자로는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질문이 돌직구라 그랬는지 공자의 대답도 아주 직선적이다.
第29章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이라는 덕은 참으로 지극히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중용을 지키는 사람이 적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解)
정이천의 말에 따르면 '치우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하고, 변치 않음을 용(庸)이라 하니, 중은 천하의 바른 도(道)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理)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한 후부터 사람들이 중용의 도를 행하는 데 흥기하지 않아서 이 덕을 간직한 이가 적은 지 오래된 것이다'고 하였다.
유교의 경전을 말할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든다.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사서(四書)라 하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을 삼경(三經)이라 한다. 중용은 그 경전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려니와, 덕목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보통 중도(中道)라 하면, 흑과 백, 그 가운데의 회색분자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중용의 길은 그렇지 않다. 흑도 백도 그 안의 수많은 것들도 다 떠안는 왕도(王道), 그것이 군자가 나아갈 중용의 길이다.
第30章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은혜를 널리 백성에게 베풀 수가 있고 환난으로부터 민중을 건질 수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에 그치겠느냐. 그야말로 성(聖)일 것이다. 요임금도 순임금도 그것으로 애태웠을 것이다. 인자(仁者)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며,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남에게 이루게 한다. 자기를 미루어 남을 이해한다면 가히 인(仁)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解)
옹야편의 마지막 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편들과 마찬가지로 약간 이질적인 장이 붙어있다. 유독 긴 분량도 후대에 덧붙여진 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부채질한다.
자공의 질문을 쓰면서 입으로 되뇌어 보았다. 은혜를 백성에게 베풀고 환난으로부터 민중을 건진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민주정이든 뭐든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저런 위정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원론적으로 위정자란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말에 시선이 못박혀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내가 저런 위정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은 있었으되 내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공자도 나와 크게 다른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보통 공자는 인(仁)의 가치를 최상으로 치기에, 좀체 인(仁)의 경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맹무백이 제자들이 어지냐(仁)고 물었을 때(공야장편 8장)도 어질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문, 진문자처럼 훌륭한 사람들에게도 '글쎄다 인(仁)과는 조금 다르지 않겠느냐(공야장편 19장)'고 했다. 자공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엔 인(仁)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성스럽다고까지 말한다. 요(堯)와 순(舜)은 전설적인 성군으로, 중국인들의 꿈의 시대를 다스렸던 위대한 지도자가 아닌가. 그들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는 것이다. 최상의 찬사다.
그 뒤의 말은, '어떠한 마음이 인(仁)의 바탕이 되는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와 소망을 살펴보고 그것으로 미루어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하여, 그것을 이루어 주는 마음이 바로 인(仁)이라고 한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것으로(吾心卽汝心),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易地思之)이며, 내가 받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己所不欲 勿施於人) 것이다.
인자(仁者)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며,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남에게 이루게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인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에 대해서 공자께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린 글로 유명하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 山(메 산)은 ❶상형문자로 산의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떴다. 옛 자형(字形)은 火(화; 불)와 닮아 옛 사람은 산과 불이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山자는 '뫼'나 '산',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山자는 육지에 우뚝 솟은 3개의 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산'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山자를 보면 가파른 능선이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도 이것이 산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山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산의 이름'이나 '산의 기세'나 '높다'와 같이 '산'에서 연상되는 여러 의미로 활용된다. 그래서 山(산)은 (1)둘레의 평평(平平)한 땅보다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部分). 메 (2)산소(山所) (3)사물이 많이 쌓여 겹치거나, 아주 크거나, 매우 많은 것에 비유한 말, 또는 그것 (4)산이나 들에 절로 나는 것을 뜻하는 말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메(산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뫼 ②산신(山神: 산신령), 산의 신(神) ③무덤, 분묘(墳墓) ④절, 사찰(寺刹) ⑤임금의 상(象) ⑥산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큰 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여러 산악이 잇달아 길게 뻗치어 줄기를 이룬 지대를 산맥(山脈), 들이 적고 산이 많은 지대를 산지(山地), 산과 물으로 자연의 산천을 일컫는 말을 산수(山水), 물건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임을 산적(山積), 산과 숲 또는 산에 있는 수풀을 산림(山林), 크고 작은 모든 산을 산악(山岳), 산 꼭대기를 산정(山頂), 산 위에 쌓은 성을 산성(山城), 무덤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산소(山所), 산 속에 있는 절을 산사(山寺), 산과 산 사이로 골짜기가 많은 산으로 된 땅을 산간(山間), 산의 생긴 형세나 모양을 산세(山勢), 산 속에 있는 마을을 산촌(山村), 산에 오름을 등산(登山), 강과 산으로 자연이나 나라의 영토를 강산(江山), 높고 큰 산으로 크고 많음을 가리키는 말을 태산(泰山), 높은 산을 고산(高山),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신령스러운 산을 영산(靈山), 연달아 잇닿은 많은 산을 군산(群山), 조상의 무덤이나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선산(先山), 산에 들어감을 입산(入山), 나무가 무성하여 푸른 산을 청산(靑山), 돌이나 바위가 없이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을 토산(土山), 유용한 광물을 캐어 내는 산을 광산(鑛山), 눈이 쌓인 산을 설산(雪山),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의 싸움과 물에서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겪어 세상일에 경험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산전수전(山戰水戰),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뜻으로 산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명(山紫水明),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이란 뜻으로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든 맛이나 좋은 음식을 일컫는 말을 산해진미(山海珍味), 경치가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산천의구(山川依舊), 산천과 초목 곧 산과 물과 나무와 풀이라는 뜻으로 자연을 일컫는 말을 산천초목(山川草木), 산이 앞을 가로막고 물줄기는 끓어져 더 나아갈 길이 없다는 뜻으로 막바지에 이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산궁수진(山窮水盡), 산의 초목이 자줏빛으로 선명하고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려(山紫水麗),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한 말을 산고수장(山高水長),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 위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에 관하여 행한 설교를 일컫는 말을 산상수훈(山上垂訓), 산꿩과 들오리라는 뜻으로 성미가 사납고 제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 다잡을 수 없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산계야목(山鷄野鶩),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선비를 이르는 말을 산림처사(山林處士), 산이 울면 골이 응한다는 뜻으로 메아리가 산에서 골짜기까지 진동한다는 말을 산명곡응(山鳴谷應), 산 밑에 절구공이가 더 귀하다는 뜻으로 물건이 그 생산지에서 도리어 더 품귀함을 이르는 말을 산저귀저(山底貴杵) 등에 쓰인다.
▶️ 水(물 수)는 ❶상형문자로 氵(수)는 동자(同字)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 수(水)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水자는 '물'이나 '강물', '액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水자는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水자의 갑골문을 보면 시냇물 주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액체나 '헤엄치다', '범람하다'와 같이 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氵자나 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水(수)는 (1)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빛깔로는 검정을 나타냄 (2)수요일(水曜日)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물 ②강물 ③액체(液體), 물과 관련된 일 ④홍수(洪水), 수재(水災),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⑤수성(水星: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⑥별자리의 이름 ⑦물을 적시다, 축이다 ⑧물을 긷다, 푸다 ⑨헤엄치다 ⑩물로써 공격하다 ⑪평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바다 명(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뭍 륙/육(陸), 불 화(火),빌 공(空)이다. 용례로는 물 속에서 몸을 뜨게 하고 손발을 놀리며 다니는 짓을 수영(水泳), 축축한 물의 기운을 수분(水分),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물의 겉을 이루는 면을 수면(水面), 홍수로 인한 해를 수해(水害), 물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수력(水力), 물의 깊이를 수심(水深), 저수지에 설치하여 수량을 조절하는 문을 수문(水門), 물의 양을 수량(水量), 물 속에서 자라는 풀을 수초(水草),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임금과 신하 또는 부부 사이처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이르는 말 또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수어지교(水魚之交) 또는 수어지친(水魚之親), 물이 모이면 내를 이룬다는 말을 수적성천(水積成川),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미미한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적석천(水滴石穿), 산과 바다에서 나는 진귀하고 맛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륙진찬(水陸珍饌), 산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물을 일컫는 말을 수륙진미(水陸珍味), 물이 맑으면 큰 고기가 없다는 뜻으로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그 몸을 감출 곳이 없어 그곳에는 살지 않음과 같이 사람이 너무 똑똑하거나 엄하면 남이 꺼려하여 가까운 벗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물이 샐 틈이 없음으로 단속이 엄하여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수설불통(水泄不通), 깊고 넓은 물에는 큰 고기가 깃듦을 일컫는 말을 수관어대(水寬魚大), 물결이 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수파불흥(水波不興), 물과 불은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원수같이 대함을 일컫는 말을 수화상극(水火相剋),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뜻으로 과거사가 흔적이 없고 허무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수류운공(水流雲空), 바다 멀리 수면과 하늘이 서로 맞닿아 그 한계를 지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천방불(水天髣髴), 물 위에 뜬 기름이란 뜻으로 서로 잘 어울릴 수 없는 사이를 이르는 말을 수상유(水上油), 물은 그릇의 모남과 둥긂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사람은 상종하는 사람의 선악에 따라 달라지므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말을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물이 흐르면 고기가 다닌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때가 되면 이루어짐을 일컫는 말을 수도어행(水到魚行),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물가의 겨울 경치를 일컫는 말 또는 나중에 사건의 진상이 명백하게 드러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수락석출(水落石出), 바다와 육지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이르는 말을 수륙만리(水陸萬里),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꽃이라는 뜻으로 볼 수는 있어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월경화(水月鏡花), 바다 멀리 수면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그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한 가지로 푸름을 일컫는 말을 수천일벽(水天一碧),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외로운 넋을 일컫는 말을 수중고혼(水中孤魂),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을 이룬다는 뜻으로 학문을 열심히 하면 스스로 도를 깨닫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도거성(水到渠成), 오행에 수기가 왕성한 절기로 곧 겨울을 일컫는 말을 수왕지절(水旺之節), 시문을 짓는 데 재주가 샘솟듯 풍부하여 빨리 이루어 놓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수용산출(水湧山出), 물과 불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친교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화불통(水火不通)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