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 신기료장수 최씨 (3)
그가 세상의 인정을 갈망하는 것은,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리 높여 세상에 자기를 알리는 것은, 맨 날 이렇게 잠자코 있다가는 백날이 가도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방대학에 있다고 나를 깔보는 것이 아닐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녀석들이 말이야. 웃기는 일이지. 구두수선코너에,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무엇이 있겠어? 기술 차이가 조금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래. 기술로 치면 나도 누구한테 빠지는 편은 아니거든. 심지어 전주 시내에서 일하는 녀석들까지 나를 깔보는지 몰라. 내가 한 때 전주 시내 요지에 코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이거 왜 이래. 나도 젊었을 때는 돈 좀 만져봤어. 자식 농사로 치면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최씨를 이해한다. 공감하기까지 한다. 아마 공자님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을 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한가?” 공자님이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공자님도,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비록 성을 낸 적은 없지만) 상심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는 일의 덧없음을 갈파하였지만, 바로 그 점이, 철인 황제 자신도 사람들의 인정에 마음이 동요된 적이 있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을 내거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자기를 내세우고 떠벌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 공자님에 의하면, 그것은 군자답지 못한 짓이다. 그리고 철인 황제에 의하면, 그것은 덧없는 짓, 어리석은 짓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철인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들의 인정을 갈망하는, 그 사람들이라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한 마디로 말해, 하나같이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조만간 세상을 떠날 존재들이라는 점은 아주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도, 너처럼, 남들의 시선에 전전긍긍해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라는 점도 아주 분명하지 않은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아니면, 대학교 교양 국어의 교재에서 읽었지만, (‘아유자’라는 낯선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아직도 이렇게 기억되는 것을 보면, 나는 그 때 이 글에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 때 감동을 받았던 것은, 물론,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최씨는, 자기의 작업장에 들어와 자기 맞은편에 앉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곤 하는 이 남자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최씨가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문제다. 내가 최씨에게도 한 권 건내주었던 그 책이 문제다. 그 책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는 한 남자가, 자기가 갈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바쁘게 길가는 사람들을 붙들어 세워놓고는 난 데 없이 자기 자랑을 해대는 그런 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시점에서 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남의 프라이버시가 문제가 아니구나. 내 책 머리말의 말미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내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마치 나는 나 자신을 위해 — 내가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해 -- 책을 낸 듯이 적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남을 위해 — 남에게 내 삶을 보여주기 위해 — 책을 낸 것인지 모른다.
최씨와 달리 책을 써서 자기를 내세우는 것은 한층 더 악랄한 일인지 모른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더 오랜 기간 동안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쓰는 사람이 그런 점을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한층 더 악랄하다기보다 한층 더 덧없고 한층 더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인 황제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너는, 네가 본 적도 없고 너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갈망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한 인정은 너의 허영심을 채워주겠지만, 그것이 그 이상의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냐?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 관하여 쓰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에 관하여 쓰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프라이버시로 이야기를 시작하였으면서도 이야기가 엉뚱한 쪽으로 흘렀는데, 프라이버시에 관해서도 나중에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최씨의 프라이버시에 관해서도 그렇다. 지금 생각해 보니, 최씨에게 혼 날 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최씨가 내 책의 해당 부분을 읽는다. 기분이 좋아졌다가, 어떤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아들한테 전화를 건다. “최변호사 좀 바꾸어 주세요.” 하필이면 아들이 변호사야. (끝)
첫댓글 장고끝에 악수난다고. 프라이버시든 자기 PR이든 너무 나간듯 하다. 순수성만 있다면....
너무 나간 것 같지? 그래, 역시 순수(이노슨트)하냐가 문제인 것 같아. 일요일, 삼례도 따뜻하다. 그러나 하늘이 뿌얘서 봄볕을 쬐러 나갈 수도 없네.
영태교수 제 자랑하려 책 낸거 아닌거 아니 알지 못하지 아니하고...별걸 다 걱정?? ㅎㅎ
영태야 조금만 많이 말고 조금만 뻔뻔해져봐 그럼 그런 고민은 없어질걸 ? ㅎㅎㅎ
그러니까 영태와 최씨는 닮은 꼴? 유유상종?? 저녁에 만나 속마음 터놓고 한잔 해봐. 말 뿐만 아니라 마음도 잘 통할 것 같은데...잘 읽었다^^
그래 닮은 꼴 맞아. 동갑이기도 하고. 많이는 말고 조금만 뻔뻔해지라고? 알긋어. ㅎㅎ 별걸 다 걱정하는거구나. 잘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