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용은 꽃이 피기전 순을 제거해야만 잎이 큰다.
옛 충주지역 잎담배 농사 이야기.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20여년전 까지만 해도 충주는 황색종 엽연초 담배
생산지였다. 마을, 집집마다 당시 거의 대부분이 잎담배를 건조하는
건조실을 가지고 있을 정도었다.
충주는 1910년부터 잎담배의 산지였단다. 무슨 지역적 특성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
만 이곳은 담배농사가 주된 농업이였다. 제가 아주 어릴적부터 담배농사를 짓는 집에
서 태어나 담배농사가 어렵고 힘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충주엔 담배 농
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고향 마을엔 한 집도 없다.
담배인삼공사에서는 담배원료를 어떻게 수급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언론보도
에 의하면 2025년도 잎담배 국내 구매액이 793억이였는데, 금년도에는 815억으로
책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금액이 적은 것으로 보아 많은
잎담배가 수입되는 모양이다.
담배농사는 아무나 자유롭게 짓을 수 없다, 반드시 국가의 재배허가를 득한 후 농사를
지어야 한다. 대신 허가를 득하고 농사를 지으면 전량 국가에서 매입해 주어
판로 걱정이 없는 소득기반 안정적 품목이다. 담배는 전매물이기 때문이다.
잎담배농사는 노동 집약적이다. 지금의 인건비 수준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짓기 어려울
지도 모르는 농산물이다. 담배는 모종을 파종하는 3월초부터 납품하는 날까지 노동의
연속이다. 거의 쉴 날일 없을 정도였다. 담배 파종부터 이식, 키우며 농약주기, 이파리
옆 겹순따주기, 4~5차례 1주일 간격으로 잎따기와 엮어 건조실에서 석탄불때며 건조
하기, 그리고 같은 색깔과 종류끼리 분류하여 묶어 주는 담배조리까지. 그리고 포장하
여 지정 일에 납품까지 하여야 1년 농사일이 모두 끝난다.
하지만 내 어릴적엔 농사로 수확한 쌀, 보리, 콩등 농산물로 먹고는 살았지만 현금
을 만들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그래도 담배농사는 수매와 동시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
어서 아이들 학자금이나 농지구입 등으로 많이 이용할 수 있어서 대부분 담배 농사
를 지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농기계나 자동 건조시설이 없었기에 모두를 노동으로 해
결 해야 했다. 참 힘들고 고단한 일의 연속이였다.
가끔 고향에 가보면 이젠 담배 밭은 볼 수가 없고, 건조실도 모두 철거되고 한 두채 창
고로 활용되는 정도다. 젊은 이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고 연세드신 어르신들이 마을을
지키고 계시기에 담배농사 같은 일은 생각지도 못한다. 수익성도 떨어지고~.
지금은 스마트팦이라 부르는 하우스내 특용작물이 주를 이루고있다. 고추농사는 아직
충주에서 주된 밭농사다.
이맘때쯤이면 늘 건조실에서 담배불 때시던 아버님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당시는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지금 충주박물관에 가면 잎담배 농사에 대한 각종 자료와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언제 고향 가는 길에 한 번 찾아 볼 예정이다.♧
♬ - 고향무정 / 오기택
첫댓글 중학교 1학년때
시골 한적한 곳에 앵두가 올망졸망 열리던 초 여름였지 싶습니다
키가 내보다 더 큰
삼 을 재배하던 시골
넓고 넓은 밭 고랑사이를 내쳐 달리던 어릴적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엄격히 금지된 "대마초"의 원료가 되던 그 시절..
잎 담배 농사이야기에 옛생각이 나네요..머물다 갑니다
네 “음 산” 님 옷감을 만드어지는 삼백모시 애기인듯 합니다요.
이젠 폭염도 물러난 저녁시간도
더욱 강건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