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상 성균관대 교수]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우리들 삶에 있어서의 희로애락은 바로 우리들 마음의 눈에 달려있는 듯하다. 같은 사물이라도 이것을 느끼고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슬프게도, 혹은 기쁘게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이 곱고 긍정적이라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일찍이 '안톤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 속에서 우리들 인간의 삶과 생활 주변의 온갖 사물들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서글픈 마음을 얄밉도록 정교하게 집어내어 우리의 심금을 울린바 있지만 사물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꾼다면 '안톤슈낙'이 느낀 사물의 실체가 그처럼 서글프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지금은 고속도로에 밀려서 국도라는 이름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예날의 신작로에는 대부분 길 양편에 포플러 나무가 기다랗게 줄을 지어 도열해 서 있다. 고향을 시골에 두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그 신작로의 양편에 도열해 서있던 포플러 나무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한여름에도 폴싹폴싹 흙먼지를 일으키며 친구들과 어울려 걷던 시원한 포플러 그늘 밑의 하학길, 그리고 포플러 나무 꼭대기에서 청아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 바람이 불 때 마다 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던 포플러나무 이파리, 이런 것들이 빚어내는 고향의 이미지는 어쩌다가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펵 정감어린 추억 속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향을 등지고 살아왔던 어떤 흉악범이 한밤중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어 이 길을 걷고 있을 때 길가에 도열해 서 있는 포플러 나무는 정감어린 추억 대신에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도열해 서 있는 나무 뒤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경찰관의 출현이 두렵고, 심지어는 도열해 서 있는 포플러 나무 그 자체가 자기를 체포하기 위해 지키고 서 있는 경찰관의 행렬처럼 보이는 무서운 밤길이 될 것이다.
이처럼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사물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따라서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매사에 좀더 긍정적인 사고와 순수한 마음을 가질 필요를 느낀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가난하게 평생을 살아온 어느 할머니가 그동안 모아온 돈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체 교육기관에 희사했다는 어느날의 신문기사도 기쁘고 쓰레기더미 속에서 거액의 돈뭉치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청소미화원의 이야기도 아름답고 기쁘다.
오랜 병실생활 끝에 퇴원하는 날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 기쁘고 학창시절에 읽던 책갈피 속에서 발견한 노란 은행잎 하나, 그리고 그 은행잎에 쓰여진 깨알같은 한 구절의 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가. 창밖에 눈이 내리고 난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조용히 곁에 다가와 있는 생활의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깃배에서 금방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들의 은빛 요동, 이제 막 목욕을 끝낸 알몸의 어린아이처럼 과일가게 앞에 진열된 오갖 과일들의 싱그러운 몸매, 이른 봄 거무튀튀한 묵은 등걸을 뚫고 솟아오는 매화 꽃망울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결국 기쁨은 결코 멀리있지 않고 이처럼 우리 곁에 하찮고 작은 모습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