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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은 그리스어 케이로(cheiro:손)과 프락티카(praktika:실용적인 또는 시술하는)에서 유래한 말이며, 19세기 말에 대니얼 데이비드 파머가 이 치료법을 창시했다. 파머는 미국 중서부에서 식료품 상인이자 '최면술치료사'로 일했는데, 어느 날 사고로 청력을 잃어 최면술에 반응을 할 수 없는 환자를 만났다. 그는 환자 목 뒤의 제4경추 근처에 매우 큰 혹이 나 이쓴 것을 보았다. 파머는 그 경추를 바로잡으면 청력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머는 그 경추를 '억지로' 바로잡았고, 그랬더니 환자가 곧 들을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귀의 달팽이신경은 목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믿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어쨌든 파머에게는 '유레카'의 순간이었으며, 카이로 프랙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파머는 거의 모든 질병이 신경에서 기인하며, 잘못 놓인 척추때문에 신경이 눌려서 병이 생긴가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척추교정기법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오와에 학교를 세우고(이 학교는 오늘날에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아들인 파틀릿 조슈아에게 운영하도록 했다. 파머의 아들은 아버지가 구상한 카이로프랙틱 치료의 원리인, 몸속에 있는 '내재된 지적 존재'의 생명력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면 몸이 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설파했다.
이러한 카이로프랙틱의 원리는 감염성 질환이 병균 때문에 생긴다는 의료계의 관점과 충돌했다. 파머의 아들은 감염질환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를 부인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전염되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척추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의 세균설에 대한 반대는 백신에 대한 고집스러운 반대로 이어졌다. 오늘날까지도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의 상당수가 백신을 계속 반대한다. 특히 소아마비 백신의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상황의 심각함을 잘 보여준다.
솔크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 세상에 나오기 일 년 전인 1954년에, 미국에는 38,476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있었다. 1955년에는 28,985명이었고, 1956년에는 15,140명으로 떨어졌다. 1961년에는 1,312건만 보고되었다.
공공보건 당국이 백신을 장려하는 노력을 펼치는 동안,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자신들의 캠페인으로 맞섰다. 다양한 출처의 몇몇 소식지들을 보면, 놀랍도록 무지하고 위험한 말과 주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백신의 효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있었다. [국립 카이로프랙틱협회 저널]에 실린 한 논문은 이렇게 반문한다. "시험관으로 소아마비와 싸우는 것은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 논문은 백신을 접종하는 대신 급성 소아마비가 일어나면 첫 3일 동안 모든 척추에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공중위생국장에 따르면, 새로운 소아마비 발병 사례 10건 가운데 9건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다(솔크 백신은 여러 차례에 걸쳐 투여해야 한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카이로프랙틱 치료과 급성과 만성 소아마비 모두에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급성 소아마비 사례의 71퍼센트가 완치를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 수치는 소아마비에 감염된 환자들의 60퍼센트는 근육의 약화나 마비를 보이지 않고 회복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일반 의사들은 증상이 심각한 소아마비 환자들에게 기관절개관, 음식물 관, 혹은 철제 호흡보조장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치료를 실시했다. 하지만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이 조치들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척추교정만을 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질병의 원인이나 진단에 대한 아무런 짓기 없이 무턱대고 백신접종을 반대했다. 콜로라도에 돌던 한 팸플릿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죽은 동물의 세포를 주입해 인간의 몸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신은 분명 싫어하실 것입니다. 신은 우리만의 세포로 우리를 채웠고, 우리의 세포는 동물의 세포와 혼합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아마비 캠페인이 성공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은 이 난센스가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1994년에 171명의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을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예방접종이 질병을 예방해준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1998년에 보스턴 지역의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을 조사한 결과, 30퍼센트만이 적극적으로 예방접종을 권고했고. 7퍼센트는 예방접종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으며, 63퍼센트는 아무런 권고도 하지 않았다. 또 2002년 캐나다의 카이로프랙틱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예방접종에 대한 지지가 점점 감소했으며, 4학년 학생들의 4분의 1이 "예방 접종이 감염성 질환을 예방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진술에 동의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자신들이 설파한 것을 몸소 실천한다. 1999년의 한 조사에서,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의 42퍼센트가 자녀를 예방접종시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예방접종이 천연두(오늘날 사실상 지구상에서 박멸되었다.),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 유행성 이하선염, 홍역, 풍진, 간염 등을 예방한다는 게 명백한데,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합리적이고 자신들의 환자와 가족에게 심각한 위험을 끼칠 수 있는 견해를 취할 수 있을까?(미국에서 최초의 어린이 디프테리아 사망 사례는 1998년에 예방접종을 믿지 않았던 한 카이로프랙틱 치료사의 아들이었다).
이들의 증거를 무시하는 논리를 좀더 자세하게 폭로한 사람들은 예방접종반대 철학을 거부한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이었다. 캐나다의 카이로프랙틱 치료사인 제이슨 부세와 스티븐 이녜안은 미생물학자 친구 제임스 캠벨과 함께 권위 있는 의학전문지 [소아과학]에 기고하여,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과 교수들이 예방접종을 반대할 때 사용하는 몇 가지 논증과 진술들을 밝혔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진화 반대론자들이 취하는 논증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자신들이 반대하는 과학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비슷한 동기가 있다.
예방접종을 반대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섯 가지 논증과 전술은 다음과 같다.
1.과학을 의심하라.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특정 질병이 점점 줄고 있는 추세를 백신의 효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하려 한다. 백신 회의론자들은 질병 발생의 주기적 패턴을 지적하면서, 소아마비의 감소도 자연스러운 주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위생과 같은 부차적인 조치들만으로 특정 질병의 감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규모 대조군을 설정한 임상시험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그 자료들이 조작되었다는 식으로 설명을 회피한다. 이 것은 두번째 공격포인트와 직결된다.
2. 과학자들의 동기와 진의를 의심하라.
자료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에 더하여, 백신 회의론자들의 일부는 과학자들과 제약회사가 공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의사들의 예방접종 지지는 공공보건 때문이 아니라 탐욕 때문이라는 암시를 준다.
3. 과학자들 간의 의견 차이를 부풀리고, '성가신 쇠파리'들의 말을 인용하라.
모든 과학은 정직한 의견 차이를 허용한다. 예방접종의학의 경우, 백신의 접종 시기와 용량, 나이 들어 접종할 필요가 이쓴지, 면역체계가 손상된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이론운지 해로운지(예를 들어 HIV환자, 화학치료를 받는 환자들, 노인)와 같은 논의들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이러한 기술적 차이를 부풀려 마치 백신의 가치를 두고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또 한 가지 전술은, 의사면허를 보유한 열성 비판가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가 아무리 일반적인 의견과 동떨어져 있고 근거가 없더라도.
4. 잠재적 위험을 과장하라.
예방접종도 다른 의료시술처럼 백신과 환자집단에 따라 다양한 위험을 수반한다. 부작용 발생률은 잘 밝혀져 있으며, 위험과 관련단 정보는 항상 동의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제공된다. 예방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방접종의 위험은 강조하고 과장하면서, 정작 예방접종을 받지 않아서 감염이 일어날 때 생길 위험과 영향은 인정하지 않는다.
5. 개인의 자유에 호소하라.
취학 아동의 예방접종 의무화를 개인과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미국인의 기본적인 자유를 파괴하려는 음모다."덴버의 한 카이로프랙틱 클리닉의 말이다. 대법원은 개인의 신념이 전체 사회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주장을 기각했다.
6.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철학을 버리는 것이다.
마침내 정보 부족의 안개가 걷히고 백신의 효능이 입증되면, 위 논증들의 대부분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마지막 카드는, 예방접종이 카이로프랙틱의 대전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캠벨, 부세, 이녜얀에 따르면, 모든 질병이 척추의 변형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은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아닌 신념의 문제로 여겨진다." R.B.필립스는 [카이로프랙틱 인문과학 저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신념에 기반을 둔 접근법에서는 확률에 기초한 귀납적 추론이 필요 없다. 절대적 진리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적 관찰을 통해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아이러니는 예방접종을 부인하는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이중맹검 대조군 실험으로 검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이자 카이로프랙틱 박사인 로버트 앤더슨은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은 "의학적인 모든 것들을 덮어놓고 악의적이로 해롭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의 "신념은 임상실험이나 실험실 연구로 검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따라서 과학적 진리이기보다는 믿음의 문제이다. 백신을 옹호하거나 백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보수적인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상징의 구실을 한다(강조는 첨가)."
앤더슨은 부인의 근거를 제대로 포착했다. 이들의 부인은 과학적 결론이 아니라 문화적인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부세, 이녜얀, 앤더슨이 입증하듯 모든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들이 그러한 신념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입증된 과학보다 더욱 힘이 세다는 뜻이다.
출처: 션B. 캐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Making of the Fittest].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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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리플 후감상! 천천히 읽어보는수밖에;
저희 어머니께서도 카이로프랙틱치료 받으셨는데 어느날 그사람이 갑자기 면허정지되었더군요. 얼마뒤 편지가 왔는데 카이로프랙틱으로 맹인이 눈뜬 사례가 있다는 신문기사카피를 같이 동봉하면서 자기가 면허정지에 관해 법적으로 호소할 예정이니 서명해주면 감사하겠다는 편지였는데... 뭐 결국 안했지만서도... 훨씬 나중에야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고 카이로프랙틱이 대체의학이라는 사실을 알았습죠. 피지오더래피나 포다이어투리스트처럼 정식의학(?)인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평생을(그래봐야 서른줄 ㅠ) 건강하게 살고있는데용;; 수년전에 그냥 정기검진 하러 병원에 갔더니, 당신은 오년안에 100% 죽을병에 걸렸다더군요. 읭? 아프거나 뭐 보이는거도 없는데욤?? 다행히 현대의학의 발달로 치료를 하면 살 확률이 30~40% 정도는 될겁니다. 안되면요?? 말했잖아욤 오년안에 바이바이+_+ ㅎㅎ......젊어서 그런지 우울하다기 보다는... 역시 내 삶은 드라마틱하다는 약간의 희열?까지 느낀, 의사도 인정한 특이한 정신력(그래봐야 안정제 진통제가 듣지 않게 되어 필요도 없는 ㅠ)의 소유자... 이다 보니 덤덤하게 치료를 시작했는데욤... 사실 이 치료라는게 되든 안되는 몇년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게 되어...
저랑 동일하거나 비슷한 케이스의 환우들은 참 힘들어 하더군요... 당장의 힘든 고통과 기대 수명과 삶의질.. 인생의 보람 뭐시기 등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생각보다 참 많더군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노리는 대체의학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던지..-ㅁ- 어떻게 알고 저한태도 몇년간 전화오고.... 결국 적잖은 사람들이 병원보다는 대체의학을 선택하신걸 많이 봤습니당.......... 그리고 효험을 봤다는 사람은 한명도 못본거 같네요;;..... 까페에 돌아오지 않는.;;; 결론은 의사선생님 말 잘 듣는게 최선입니당.. 저처럼 ㅋㅋ...
카이로프랙틱 쪽은 잘 모르지만...대체의학을 많이 접해본 의료인으로써 한마디... 대체의학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생각보다 과장된 것도 있지만 어느정도 효과가 있고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제가 실험을 해보지는 못하지만 직관적 으로 의학에서 시행하는 치료와 그 목적과 원리가 같은 것이 제법 있거든요.) 나는 대체적으로 대체의학에 의미를 두지만 현상에 대한 시각차, 기존의료계의 천대로 술자들과 교류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체 의학 술자들이 자신의 치료법에 대한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