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到處有上手(1)
‘인생도처유상수 人生到處有上手’란 말은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의 제목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상에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거나 따라가기 힘든 무수한 상수上手들’이 있었거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강호에는 고수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앞으로의 생활 목표를 단순화시켜 ‘읽고 걸어라.’로 정하였으나 사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독서를 많이 하고 나보다 훨씬 걷기를 많이 하는 무수히 많은 ‘고수’들이 있다.
당장 독서도 그렇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빗도 애서가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고(그들은 고액 기부자로도 유명하다.) 토크쇼의 일인자인 오프라 윈프리도 어릴 적 무지 어려운 시기를 독서로 버텼다고 한다. ‘독서가 인생을 바꿨다.’는 말을 한 적도 있는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역정을 보면 독서가 얼마나 그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갈 때 책 1000여권을 싣고 떠났다고 하고 히틀러도 그의 서가에 16,000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오직하면 그의 광적인 심리 성향을 히틀러가 소장하고 읽은 책의 주제에서 찾는 연구들도 많이 있다. 세종대왕, 링컨, 에디슨 등등 소위 위인들은 모두가 책벌레들이었다.
또한 지금도 독서광들은 많이 있다. 그중 일본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유명하다. 그의 개인도서관(일명 고양이 빌딩)에는 35,000권(5만권이라는 설도 있음)의 장서가 있고 서가의 길이가 700m로 프랑스 지리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다카시는 고양이 빌딩이외에 다른 두 개의 서고를 합쳐 20만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식의 거장’이란 별명을 가진 그는 이미 4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는데 책 한 권 쓰기 위해 500권의 책을 읽는 다독파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양호 조달청장이 유명한데 그는 현직임에도 불구하고 이틀에 한 권씩 한 달에 15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2008년부터 온라인 서점인 ‘에스24’에 블로거로 활동하며 1300여권의 북 리뷰를 올렸다고 하니 과히 독서광 중 탑이다. 이밖에도 도처에 독서 고수들은 많다. 일본에서는 ‘북 앤 베드’라고 서고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 나지막한 침실형태의 방이 있어 독서를 하다가 자는 모텔 비슷한 것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 이안수씨가 운영하는 ‘모티프 원’이라고,
13,000권의 장서가 있고 책을 읽으면서 숙박하는 북 스테이가 있다. 이렇듯 독서광들의 얘기는 한도 끝도 없이 많다.
물론 내 주변에도 많다. 얼마 전에 영태 출판기념회 하는 날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친구 영중이가 책벌레였다. 2차 맥주 집에서 뭘 얘기하다가(아마 저자 서명에 대한 얘기였을 것이다.) ‘헌책방’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는 주로 동숭동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을 몇 십 권씩 구입하는데 2000여권을 소장하고 있고 3일에 1권정도 읽는데 지금은 중세 십자군(1095년-1429년)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미 CEO 북 클럽에 가입하였고 특히 우리나라 보호수(16,000개)에 대한 자료는 자기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보호수’에 대한 책을 하나 쓰라고 했다. 나는 단순히 영중이가 등산이나 울트라 산악마라톤 등 주로 다리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인줄 알았는데 ‘읽고 걷기’계에서는 엄청 고수였다.
당장 내 형님도 무지무지한 독서광이다. 장서의 크기나 독서량은 대충 짐작하지만 거실 전체가 책으로 되어 있고 널찍한 책상에는 책이 수십 권씩 쌓여 있다. 그래도 서가가 좁아 오래된 책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것 같다. 가끔 찾아볼 때면 항상 한결같이 독서하시는 모습이다. 현직에 계실 때도 꾸준히 독서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아는데 요즈음은 현직에서 물러나셨기 때문에 더욱 독서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분이 쓴 글이나 저서에는 수없이 많은 도서의 인용구가 나온다. 최근에 내신 책을 온라인에서 구입해서 읽어보신 내 엄마 조명실여사(92세)께서는 나에게 ‘네 형 책은 너무 인용 구절이 많아 자기 생각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한 마디로 재미없다고 논평까지 하셨다. 참 그 분은 걷기도 많이 하셔서 하루에 3시간씩 2만보를 걸으시고 재작년에는 네팔 히말라야도 다녀오셨다.
이렇듯 ‘독서불패’를 외치며 세상을 주름잡는 독서 고수들은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있다. 한 마디로 ‘인생도처유상수’인 것이다. 독서를 하는 방법도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리커교수는 3년 정도의 주기로 관심 있는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독서)한다고 한다. 3년은 경제학, 3년은 심리학, 3년은 미술사 등 이런 식이다. 조선 중기 문인인 김득신(1604-1784)은 ‘백이전’을 1억1만3천 번 읽었다고 한다. 어떤 책은 2만 번, 어떤 것은 14,000번. 물론 그 때의 1억 번은 지금의 10만 번으로 1/1000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마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했을 것이다.
‘걷기’도 그렇다. 지난 번 내 글‘ora et labora’의 댓글에 명서가 걷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했는데 명서는 아침에 마포 자기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프레스 센터까지 한 시간이상을 걸어서 출근한다. 지난 번 얘기로는 하루에 13,000에서 14,000보를 꾸준히 걷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위 ‘러너스 하이(러닝 하이)’라고 매일 꾸준히 달리는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 이상을 달리면 신체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현상이 있는데 명서는 분명 ‘워커스 하이(워킹 하이)’도 있다고 하며 자기는 걷기 시작해서 40분 정도를 경과하면 쾌감을 느낀다고 하니 역시 ‘걷기’계의 상수다. 뇌에서 분비되는 베타 엔도르핀이 마약을 투여할 때 느끼는 느낌과 같다고 하니.
또한 우리 동창 중에도 매일 꾸준히 걷기를 하거나 등산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엊그제 자녀 혼사란 경사를 맞은 홍순이도 작년에 산티아고 순례길(800km)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2007년 개장된 제주 올레길의 모태가 된 길로 1년에 약 30만 명이 찾는데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1년에 약 5000명)이 비서양인 중 가장 많이 찾는 길이다. 그리고 1년 선배인 유장근씨는 부인과 산티아고 순례길를 다녀와서 ‘산티아고 길의 소울 메이트’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스테디셀러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걷기 열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둘레길 열풍을 불게 한 제주 올레길 뿐만 아니라 전국에 535개 길 1602개 코스가 있을 정도로 걷는 인구가 많다.(한국관광공사 통계)
캠핑장도 1655개나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산티아고이외에 네팔 히말라야와 안나푸르나 트랙킹 코스나 1200km에서 1400km나 되는 일본 시코쿠의 오헨로 순례길(88개 사찰과 20개의 번외 사찰)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고 있다.
이렇듯 이 세상에도, 또한 내 주변에도 고수들이 너무 많아 나의 ‘읽고 걸어라.’ 작업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부질없는 짓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또 아주 천천히 읽고 걸어볼까 한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네~
근데 나도 요즘은 관심분야를 읽어보면 진작에 독서 하는 습관을 가질껄 하는데 한두장 넘기면 앞장의 기억이 날라가는 함정이~~ㅎㅎ
기훈 님의 글 감사합니다. 도전할 용기를 주십니다.
내게 부족함을 깨닫게 합니다. 형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요샌 젊은 사람들이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던데 아무튼 난 지금은 읽을거리를 몇장 보면 눈이 가물거려서...
글에 너그러움과 편안함이 배어 있네. 잘 읽고, 많이 배웠다. 그리고 오늘자 국민일보 1면 톱인데, 한국판 산티아고길을 만들기로 했다고 하네. 강화에서 동해안 고성까지 민통선 따라 456km. 2021년 완공 예정이라니까, 앞으로 4년 뒤. 잘 준비해서 함께 가자. 모두 다!!!
좋은 길이 많으니까 잘 찾아서 자주 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종이책만 읽어. 전자책을 한두번 봤는데 당초 눈에 안 들어오더라. 물론 창연이 말같이 바로 잊어버리지만 지식보다 지혜를 터득하면 되지 않겠니? 댓글 감사!!!!
읽을 맛이 나는 글이로고. 정말 고수가 주변에도 많고. 그러나, 병진씨 엄살 부리는 것 봐라.ㅎ
읽기, 걷기, 쓰기, 오르기 에.. 높은 경지에 오르른 친구들이 많네... 한 수라도 배워야 하는디... 쩝
어허 "읽고 걸어라".. 늘 삼보 이상 승차인 나, 아직도 "벗고 누워라"인 나...이 글 읽으며 반성합니다...쩝
기모나 학준아 너무 많이 반성하지 마라. 나도 부러워서 이 글을 썼는데 너희들은 읽고 걷기 이외에 더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하잖아. 하여간 댓글 감사!!!
읽고 걸어라
마음에 와닿는 말이긴 한데
걷는건 나름 자신있어서 진짜 강화서 고성까지 한국판 산티아고가 완성되면 가장먼저 달려갈것 같은데
읽는다는건 학창시절에도 나에겐 수면제와 같아서 늘 마음만 있는것 같아
ㅋㅋㅋ 나는 지금도 수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