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40칙 남전화상과 육긍대부
“분별심 갖고 ‘만물일체’논하는 건 무의미”
〈벽암록〉제40칙은 남전화상과 육긍대부(陸亘大夫)와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육긍대부가 남전화상과 대화를 나누면서, 육긍대부가 질문했다. “승조(僧肇)법사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정말 훌륭한 말이군요.” 남전화상이 정원에 핀 꽃 한 송이를 가리키며 대부를 부르면서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이 꽃 한 송이의 꽃을 마치 꿈을 꾼 것과 같이 보고 있다.‘
擧. 陸亘大父, 與南泉語話次, 陸云, 肇法師道,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也甚奇怪. 南泉, 指庭前花, 召大父云, 時人, 見此一株花, 如夢相似.
이공안은 〈전등록〉 제8권 남전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는데, 남전화상에 대해서는 이미 〈벽암록〉 제28칙에서 언급하였다. 육긍대부(陸亘:764~834)는 당나라 헌종을 모셨고,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 관리들의 잘못을 바로 잡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일찍이 남전화상을 참문하고 뛰어난 지혜를 체득한 거사로서 〈전등록〉 제8권에는 남전화상(南泉和尙: 738~834)과 많은 선문답을 남기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육긍대부는 남전화상을 오래 참문하였다. 평소 불법의 대의(理性)에 마음을 두고 깊이 〈조론〉을 연구하였다. 하루는 앉아 있다가 이 두 구절이 훌륭한 말이기에 제시하여 질문하였다. “승조법사의 말에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했는데, 매우 훌륭한 말이군요.” 승조(僧肇: 374~414)법사는 후진(後晉)시대의 고승으로 도생(道生), 도융(道融), 도예(道叡)와 더불어 구마라집(鳩摩羅什) 문하의 4대 철인(四哲)의 한 사람이다.
어린시절 〈장자〉와 〈노자〉를 탐독하고 그 뒤에 고본(古本) 〈유마경〉을 베껴 쓰다 깨치고, 〈장자〉 〈노자〉에는 참된 진실이 없음을 알고, 여러 경전을 종합하여 네 편의 논문을 저술하였다. 〈장자〉 〈노자〉에서는 천지란 큰 형체를 갖고, 나의 형체도 또한 그와 같아 모두 허무(虛? 그 가운데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장자〉의 대의는 만물이란 본질적으로 똑같다(齊物)는 것을 논했을 뿐이지만, 승조법사가 주장한 대의는 만물의 자성이란 모두 자기에게로 귀결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듣지 못했는가? 승조법사의 〈열반무명론〉에서 “훌륭한 사람(至人)은 텅 비어 아무런 형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만물을 그가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만물을 모두 자기로 삼는 자가 어찌 성인뿐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신(神)이나, 사람, 현인(賢人), 성인(聖人)이 각기 다르지만 모두 같은 성품과 같은 바탕을 지녔다.
본칙에서 육긍대부가 제시한 말은 〈조론〉 ‘열반무명론’에 나오는 말인데, 원래 〈장자〉 ‘제물론’에서 ‘천지는 나와 함께 살아있고,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이란 말을 승조는 불교사상에서 천지동근, 만물일체(天地同根 萬物一體)라는 말로 만들어 새롭게 주장하고 있다. 승조의 〈조론〉은 삼론종과 천태종, 화엄종 등 중국의 교학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인데, 석두희천은 이 책을 읽고, ‘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로 삼는다’라는 말에 크게 깨닫고 〈참동계(參同契)〉라는 저술을 지었다.
육긍대부는 승조법사의 이 말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남전화상의 의향을 떠보기 위해 묻고 있다. ‘기괴(奇怪)’라는 말은 본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지만, 원오가 ‘평창’에 ‘기특(奇特)’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뛰어난 안목을 갖춘 훌륭한 말이라고 찬탄한 것이다.
승조법사가 말한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란 불교에서 제시한 일체 만법의 근본은 공(空)이라는 ‘일체개공(一切皆空)’과 〈신심명〉에서 ‘만법(萬法)은 하나(一如)’라고 말하고 있는 불교의 근본정신을 말한 것이다. 일체의 만법(만물)이 인연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삼라만상의 차별세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만물의 상대적인 차별경계에 집착된 중생은 자타(自他)와 주객(主客), 천지(天地)의 만물을 상대적인 분별심으로 나누고 비교하여 차별심을 일으키며 업장을 만들고 이에 따른 과보의 고통을 받게 되는 중생이 된다. 그러나 일체 만물(만법)의 본래 모습은 절대 평등한 세계로서, 둘이 아닌 하나(一如, 不二)의 경지인 텅 빈 공(空, 同根)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장자〉의 말에 의거하여 중국적인 표현으로 주장한 것이다.
인간이 병이 났을 때 먹는 한약은 돌가루나 풀과 나무 열매, 뿌리, 씨앗을 비롯해서 동식물의 신체 일부 등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수집하여 조제하고 물을 붓고 불로 달여서 만든 액체를 마시며 인간의 육체적인 본래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고 있다. 병을 회복하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물은 동물과 식물, 광물성을 먹고 마시며 인간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자료나 영양분을 섭취하는 모든 자료가 자연의 일체 만물인 것이다. 만약 일체 만물과 같은 동질성의 뿌리(근거)가 아니라면 먹고 마시고 호흡하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나눌 수가 없는 것이며 나의 존재나 삶을 영위할 수도 없다.
자연의 일체 모든 만물과 하나 된 경지에서 자연인 인간의 육체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 만물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만물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인 마음도 절대 평등의 입장이 똑같은 하나의 뿌리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사상이다.
남전화상은 육긍대부의 이러한 질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냥 정원에 핀 목단 꽃 한 송이를 가리키며 대부의 이름을 부르며, “요즘 사람들은 이 목단 꽃 한 송이를 마치 꿈을 꾼 것과 같이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육긍대부의 질문은 매우 기특하기는 하지만, 교학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만일 교학의 이치를 지극한 법칙이라고 한다면 세존께서 무엇 때문에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셨으며, 또한 달마조사는 서쪽에서 왔겠는가?’ 즉 승조법사가 말한 것처럼, ‘천지가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이치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천지 만물과 어떻게 똑같은 뿌리(同根)이며, 어떻게 한 몸(一體)이 되는 것인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꿈도 꾸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천지 만물이 모두 제각기 제멋대로이며, 한 뿌리(同根), 한 몸(一體)이 되지 못하고 있고, 일심(一心)은 일심대로 만물은 만물대로 제각기 따로따로 주객의 차별경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만법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승조법사가 좋은 말을 했다고 인용해도 세상 사람들은 한 송이 목단 꽃을 보는 것과 같이,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하는 것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정법의 안목으로 제법의 참된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과 꽃을 주객의 대립과 상대적인 차별경계로 나누어 보고 있으며, 꽃과 자기가 하나 된 만법 일여(一如)의 경지에서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의 지혜로운 생활이 되지 못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말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듣고, 보고, 자각하여 아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다’라는 말은 ‘천지동근 만물일여(天地同根 萬物一體)’를 반대 측면에서 읊은 말인데, 일체 만물을 보고 듣고 자각하는 마음(주체)과 객체인 만물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법(萬法)은 오직 인식(唯識)에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인식하는 그 가운데 천지 만물과 하나 된 경지인 것이다. ‘산하(山河)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 천지 만물은 각자의 마음 거울(心鏡)에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이 일체 만물이 그대로 무심의 거울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은데, 누구와 함께 하랴! 맑은 연못에 차갑게 비치는 그림자를.’ 달이 지고 깊은 한밤중에 만물과 하나 된 적정의 세계(一如平等)에서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심의 경지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누구와 함께 이러한 깨달음의 풍광(風光)을 나누랴! 천지가 한 뿌리며, 만물이 일체라는 이치나 주장을 논의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성본 스님/ 동국대 교수
[출처] [벽암록] 제40칙 남전화상과 육긍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