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은 부푸는데
일월 둘째 수요일은 문학 동인 서넛과 근교에 피는 매화를 완상하러 나갈 일정이 잡혀 있었다. 자여 우곡저수지 둘레길과 시내 봉림동 창원 컨트리클럽 진입로 부근 분재원에 피는 매화였다. 저수지 둘레길 매화는 단감농원이었고 분재원에 피는 매화는 운룡매로 가지가 옹글고 비틀어져 자랐다. 그런데 동행할 회원 가운데 가벼운 감기기 있는 분으로 탐매 일정은 후일로 넘겼다.
지난해 초봄 내가 정년을 마치고 창원으로 복귀했을 때 몇몇 지기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이후 그 밥값에 상응한 자리를 가져 빚은 갚은 셈이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 연상인 교장과 나눈 점심 한 끼는 되갚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다가오는 설을 앞두고 그분께는 내가 채집해 말려둔 영지버섯을 보낼 참이다. 아침나절은 집에서 느긋하게 보내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현관을 나섰다.
베란다에 둔 영지버섯을 챙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시장 우체국으로 향했다. 교통문화연수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이웃 아파트단지로 들어 볕이 바른 정원의 매실나무를 살펴봤다. 꽃눈이 달린 매실나무 가지에는 몇 송이 꽃망울이 꽃잎을 펼치려는 즈음이었다. 나는 이웃 아파트단지 뜰에서조차 어느 동 모퉁이를 돌아가면 꽃을 일찍 피우는 매실나무가 있는지도 알고 있다.
이웃 아파트단지의 남향 매실나무를 둘러보고 반송시장 골목을 지나 우체국에 들어섰다. 택배 발송 작업대에서 건재로 말린 영지버섯을 소포로 포장했다. 포장지 겉면에 이십여 년 전 퇴직한 교장의 성함과 주소를 적으면서 그분의 연세를 가늠해보니 여든이 훌쩍 넘어섰을 듯했다. 노년을 병고 없이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은 손 편지로 쓰지 못하고 후일 통화로 전할 참이었다.
우체국을 나서 역시 내가 사는 이웃 아파트단지를 지나 반송공원으로 가봤다. 남향에 자라는 매실나무에서 꽃눈이 얼마나 부풀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몇몇 노인들이 볕 바른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남매인 듯한 두 아이는 체육 기구에 매달려 몸을 단련해 기특했다. 방학을 맞아 학원을 전전하거나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지 않고 바깥에서 놀아 방사형 교육의 표본이었다.
반송공원 남향 조경수 애기동백은 꽃잎이 거의 저물었더랬다. 전정이 되지 않아 가지가 어지럽게 퍼진 매실나무에는 자잘한 꽃눈이 촘촘하게 맺혔는데 이제 조금 부푸는 낌새였다. 아마도 대한과 입춘은 넘겨야 제대로 꽃이 피지 싶을 듯했다. 한동안 매실나무 아래서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려 창원천 천변의 창이대로로 나갔다. 낮이 되니 기온이 부쩍 올라 더운 감을 느낄 정도였다.
봉곡동 주택가를 지나면서 담장 너머 자라는 매실나무를 살피니 아까 반송공원과 마찬가지였다. 나목으로 겨울을 나는 목련의 꽃눈은 보송보송한 솜털이 조금 부푸는 기색을 드러냈다. 주택가 담벼락을 따라 창원의 집으로 들어 경내의 홍매화를 살폈더니 꽃눈은 기지개를 켜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홍매화 곁 산수유나무 가지의 꽃눈도 아직 부푸는 낌새가 아니었다.
창원의 집을 나와 단독 주택 골목을 지나다가 영춘화를 살펴봤다. 이름에 걸맞게 봄을 맞이하는 영춘화가 아니던가. 붉은벽돌이 둘러친 담장에 휘어진 가지를 드리운 영춘화는 여느 목본보다 일찍 꽃을 피웠는데 올해는 고작 한 송이만 노란 꽃잎을 펼쳤다. 주택지 골목에서 시내 중심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청 광장을 돌아 상남동을 지나 가음정시장 골목 어느 의원으로 찾아갔다.
일전 통영에서 동기 모임에 갔더니 한 친구가 내 얼굴에 피는 검버섯을 보더니 시술을 권했다. 이마와 미간에는 주름 하나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양 볼에는 세월의 연륜인 검버섯이 피었다. 간호사가 얼굴의 검버섯에 마취 연고를 바르고 반 시간 남짓 경과 후 시술은 의사가 레이저로 간단하게 끝냈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중년 의사는 검버섯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간단히 처치했다. 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