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올림픽과 스타일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주로 알몸으로 벌였던 경기에 스타일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는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고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옷을 벗어 제치고 방패를 들고 200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달리는 경주를 벌였다. 그러나 오늘날 조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남성의 멋진 나신(裸身)은 궁극의 스타일로, 모든 사람들의 숭배 대상이었다. 올림픽의 경건한 분위기를 흐릴까 두려워한 주최 측이 기혼 여성들의 관람을 금지시킬 정도였다.
오늘날 올림픽은 더욱 더 노골적인 스타일 경연장이 돼 가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푸마 같은 국제적 스포츠 브랜드가 각국 대표팀을 후원하면서 각 종목 경기복을 제작해온 지는 오래됐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에는 명품 브랜드들도 스타일 경쟁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표팀 선수단복과 경기복은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인 랄프로렌이 디자인했다. 그런가 하면 샤넬·구치·카르티에·불가리 등의 올림픽 기념 컬렉션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역대 최고 수준인 이번 올림픽의 스타일 경쟁을 중간점검 한다.
◇개막식 최고의 패션=약 8억5천만명의 중국인들을 포함해 수십억명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봤다. 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204개국, 1만5천여명의 선수들의 패션에 쏠렸다. 이는 각국 후원업체들이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스포츠브랜드인 훼르자가 제작한 우리 선수단복 상의는 흰색, 바지는 감색이었다. 연한 하늘색 셔츠에 건곤감리 무늬를 주조로 한 타이가 눈길을 끌었다. 당초 예고됐던 대로, 외신들은 랄프로렌이 디자인한 미국 선수단복에 가장 주목했다. 감색 블레이저와 흰색 바지에 스트라이프 타이를 매치시킨 이른바 프레피 스타일(명문학교 교복을 주조로 한 모범생 스타일). 포인트라면 헌팅캡이었다. 언론매체와 달리 일부 디자인 전문가들은 미국 선수단복에 대해 지나치게 밋밋하다는 평가도 내렸다. 이들은 베레모로 멋을 부린 프랑스 여성 선수단복이나 과감한 원피스 스타일을 선보인 폴란드 여성 선수단을 백미로 꼽았다.
우리 선수단복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아테네 올림픽 당시보다 나아졌다는 평이다. 당시는 빨간 재킷에 흰 하의로 강렬함은 두드러졌지만, 왠지 우리 체형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터넷 스타일 블로그 ‘즐거운 이경씨’(blog.naver.com/marimo)의 운영자는 아테네 올림픽 당시와 비교해 우리 선수단복이 “색깔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도 일만이천배쯤 예뻐졌다”고 평가했다. 선수단복을 포함해 주요 경기복을 디자인한 훼르자의 디자이너 안순운(28)씨도 스타일에 크게 신경을 쓴 눈치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옷이 촌스럽고, 평상시에 입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되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했다. 재킷 허리 부분을 잘록하게 했고, 구김이 잘 안가는 여름용 울 소재를 사용해 시원한 느낌을 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디자인계 일각에서는 타이에서 보듯 지나치게 태극기 문양에 집착하고, 전체적으로 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번 올림픽 최고의 스타일 가이는?=세계의 시청자들은 베이징 올림픽 28개 종목의 선남선녀들을 찾느라 바쁘다. 네티즌들도 외모와 패션뿐만 아니라 성적까지 뒷받침 되는 훈남·완소녀 물색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가장 멋진 선수로는 스페인의 테니스 스타인 라파엘 나달(22)과 제 2의 코마네치로 불리는 미국의 체조 스타 나스티야 류킨(19). 현재 세계 랭킹 2위인 나달은 섬세한 팔 근육을 드러내는 민소매 패션으로 유명하고, 각 경기에서 어떤 패션을 선보였는지가 기사화될 정도다. 그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테니스 남자 단식 부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반면 여자 체조 개인종합 금메달을 딴 류킨은 타고난 몸매에 여성스러움을 접목한 스타일로, 현재 스포츠 광고모델로도 활동중이다. 이 밖에 토미타 히로유키(일본·체조), 톰데일리(영국·다이빙), 에먼 설리반(오스트레일리아·수영) 등의 인기가 높다. 여자 선수로는 여자 싱크로 다이빙 3m 스프링보드에서 금메달을 딴 궈징징(郭晶晶)이 화젯거리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인 그는 대회 전부터 홍콩 재벌과의 염문설 등 스캔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다이빙 해설자가 미모 때문에 점수를 후하게 받는다는 평까지 했을 정도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올림픽 초반 단연 박태환(19)이 꼽혔다. 경기 직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헤드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장면 때문에 해당 헤드폰에 대한 수요까지 폭증했을 정도다.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을 획득한 이용대(20)는 대회 중반 떠오른 스타다. 그는 결승전 승리 직후 코트에 잠시 드러누웠다 일어나며,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윙크 세리머니를 펼쳐 온국민을 매료시켰다. 반면 여자양궁 단체전 6연패의 주역 중 하나인 윤옥희(23)는 유니폼과 양궁을 분홍색 일색으로 맞춘 바람에 ‘핑크 공주’라는 별명이 유명세를 탔다. 펜싱 플레뢰 은메달리스트 남현희(28) 역시 펜싱 글로브를 벗으며 선보인 형형색색의 네일아트가 개성 있는 스타일로 인정받았다.
◇올림픽에서 가장 스타일리시 한 종목은?=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양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인들이 가장 스타일리시 하다고 꼽는 스포츠는 승마 가운데서도 마장마술 종목이다. 아무리 더워도 연미복 재킷을 벗지 않고, 장갑만 안 껴도 실격 당할 정도로 예의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스포츠다. 최근 들어서는 말에 대한 치장도 점점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홍콩에서 마장마술 경기를 관람중인 이은정 승마협회 교관(34)은 “경기 전날, 선수가 말의 갈기를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직접 땋아준다”고 귀띔한다. 최근 유행은 말갈기를 군데군데 말아 올리는 일종의 레게 머리 형태다. 탄탄한 근육질의 말과 어우러진 섬세한 스타일의 여성 선수는 관람객들을 아찔하게 할 정도라는 평이 많다. 다만 이번 대회에서는 마장마술 종목이 날씨와 경기장 시설을 고려해 홍콩에서 열리는 데다 국내에 TV 중계조차 되지 않아, 이 스타일이 넘치는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거의 없다. 이 종목에는 우리나라의 최준상(30·삼성승마단) 선수가 출전했다.
◇최고의 매너, 최악의 매너=스타일에 매너와 태도가 빠질 수 없다. 이번 대회 최고의 매너와 태도를 보여준 이로는 단연 이번 대회 수영 8관왕의 위업을 이룬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23)가 꼽힌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7일, 올림픽에서만 14개의 금메달을 따낸 그를 ‘이번 대회의 아이콘’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단순히 성적뿐만 아니라 그의 적절한 매너와 겸손한 태도까지 고려한 발언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펠프스를 두고 역대 최고의 올림픽 선수냐 여부에 대한 논란이 한창 벌어졌다. 이를 두고 한 가 그에게 ‘당신이 최고의 올림피안이냐’고 물었다. 펠프스의 담담한 대답이 전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전 그저 수영을 할 뿐입니다(I just swim).”
반면 중국 대표팀은 벨기에전 후 자국 언론으로부터도 ‘국가의 수치’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경기에서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던 중국 대표팀은 2명이 퇴장당한 끝에 0:2로 패배했다. 경기가 끝난 후 중국팀은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중국이 이번에 2개의 적(red)메달을 받았다’거나 ‘중국 축구대표팀은 상대팀을 장애인올림픽으로 확실히 보내준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국내에서는 우리 양궁 대표팀의 집중력을 흔들어 놓은 중국 관객들의 응원이나 야유가 최악의 매너와 태도로 꼽힌다. 반면 유도 남자 60kg급에서 최민호(28) 선수의 준결승 상대였던 루드비히 파이셔(27)는 진심으로 승자를 축하해주는 모습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경기 후 와의 인터뷰에서 ‘유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최민호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덧붙여 아름다운 패자의 전형을 보여줬다.
◇장외 경기 스타일 경쟁 결과는?=각 방송사의 중계방송 진행자와 해설자의 스타일을 두고도 시청자와 네티즌의 평가가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중간 평가 결과는 세련된 패션과 자연스러운 진행이 돋보인 MBC가 다른 방송사를 조금 앞질렀다는 분석이다. 쇼커트에 앤티크 악세사리를 매치시킨 방현주와 자연스러운 노타이 차림을 선보인 김정근 아나운서가 비교적 무리 없는 진행을 선보였다는 평가다. 현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 방송사가 선보인 선수 출신 해설자들은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논란거리가 돼 왔다. 해설자들이 중계방송 내내 막말을 하는가 하면 선수에 대한 비하 발언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의 스포츠 담당 PD는 “경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냉철하게 분석한다기보다는 해당 선수를 내 편이나 내 후배, 내 제자로만 여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방송 3사가 유명 선수 출신 해설가 확보 경쟁을 벌이는 통에 자질을 검증하거나 해설을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심권호 SBS 레슬링 해설위원이 최악이었다면, 경기 내용을 비교적 차분하고 조리 있게 전달한 이은경 KBS 양궁 해설위원이 가장 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