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연재할 산골일기는 꼭 10년 전 이곳 게시판과 조선블로그에 연재했던 것으로 한동안 열심히 올렸지만 그 사이 조선블로그가 폐지되며 동력(?)을 잃고 함께 중단 했던 것을 이제 다시 이어 나갈까 한다. 갑자기“산골일기”가 등장함으로 의아해 하시는 분이 계실까 저어하여 산골일기가 태동한 동기와 그 맥을 잇기 위해 지난 날 올렸던 부분을 재차 옮기기로 한다. 혹시라도 향후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산골 또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이 계신다면 약간이라도 참고가 되셨으면 하는 심정이다. 이상
혹자는 그런다. 은퇴 후 도시와 멀지 않은 한적한 곳에 아담한 전원주택 짓고 텃밭을 가꾸며 유유자적하는 게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글쎄다. 그런 게 모든 남자의 로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런 꿈을 꾸게 된 동기는 한 편의 서부영화를 보면서였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때일 것이다. ‘그레고리 팩’, ‘찰톤 헤스톤’, ‘진 시몬즈’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명우들이 공연한“빅 칸츄리(The Big Country)”라는 영화(내가 본 서부영화 최초의 것)였다. 워낙 명화였기에 토요명화나 설 또는 추석 특집으로 여러 차례 우려먹은 영화이다.
솔직한 얘기로 당시 영화의 내용보다는 영화 속의 장면에 시쳇말로 뻑이 갔다. 무한대의 초원에서 말달리는 선구자 아닌 카우보이들의 모습에 그날 저녁 잠자리를 설쳤던 만큼 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아~! 내가 어른이 되면 저런 초원에 살며 말을 달려 봤으면....정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소년의 야무진 꿈은 세파에 흔들리며 잊혀 갔는데,,,,
수년 뒤 소년의 가슴에 불을 다시 집힌 사건(?)이 터졌다. ‘카사비앙카(Casa Bianca)’라는 칸초네 풍의 노래가 나오며 세계 음악팬들의 심금을 울리자, 약삭빠른 미국의 팝 음악이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백악관이 아닌 글자 그대로의 하얀 집, 카사비앙카도 이태리 말로 하얀 집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그때 알았음)로 고쳐 부르며 이 또한 공전의 히트를 치자, 이번엔 우리의 뽕짝들께서‘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문주란, 패티 김’등이 불러 크게 히트를 시킨 노래가 있었다. 그냥 카사비앙카 였고, 그냥 화이트 하우스였으면, 소년은 내용도 모르고 그냥 얼만 간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잊어버렸겠지만,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대목에서 지난날‘빅 칸츄리’영화가 연상이 되며 다시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어째서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빅 칸츄리’로 연결 되었는지는 정확히 유추가 안 되지만 아무튼 그렇게 연상되자 말자 또 다른 사건이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만다.
남진의‘님과 함께’라는 노래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가사의 첫머리에‘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어~~’ 바로 이 대목이다. 정리를 해 보면, ‘빅 칸츄리’에서 시작하여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이어져 내려오다 끝내‘저 푸른 초원 위에~~...’........소년의 희망은, 꿈은 도저히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특히 그즈음엔 소년의 대가리가 점점 굵어(?) 소년에 머물지 않고 청년으로 접어든 시기였으니‘님과 함께...’라는 단어는 가슴까지 절절하가 못해 먹먹하기까지 한 대목이 아니었던가. 그래! 언젠가 어른이 되고 돈을 벌고 여유가 생기면‘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 거야~!’어디서? 저 푸른 초원에서... 무엇을? 그림 같은 하얀 집을 짓고.....
그랬든 소년의 꿈이 환갑이 지나고 두어 해 흘러 이루어지려고 한다. 사실 좀 더 일찍 이루어져야 했으나 준비해 둔 장소가 너무 멀다하여 마누라가 반대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한 장소를 찾아냈으니..(충청도 하고도 제천 땅, 천등산이 안개에 쌓여 있다. 금봉이가 노닐던 박달재는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어쨌든 나름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약간의 채마 밭과 여유 있는 땅위에 우리나라에서 구 할 수 있는 모든 유실수를 23그루 심어서 철철이 나오는 과실을 아들딸 손자손녀에게 공급해 할 것이라는 꿈도 가끔씩 꾸었다. ‘꿈은 이루진다.’라는 얘기가 있지 않든가. 지금의 이 땅을 가장 마음 들어 했던 부분이 크게 두 가지였다. 나름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여유가 있으면, 노래방과 운동 실을 꼭 따로 꾸며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