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오후 6시30분(한국시간 3월 25일 오전 8시30분) 미국 CNN 방송이 인기 프로그램 ‘뉴스룸(newsroom)’에서 한국 대학의 한 학과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3분가량으로 길었다. 북한의 ‘3·20 사이버테러’로 우리의 일부 방송사와 금융기관의 전산망이 마비돼 난리가 난 지 며칠 안 되던 때다.
이 학과는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다. 지난해 3월 첫 신입생을 받았다. CNN이 이 학과를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북한은 물론 대한민국을 위협할 만한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사이버 전를 양성하는 곳이 사이버국방학과이기 때문이다.
이 학과는 국방부가 고려대와 협약을 맺어 개설했다. 정부가 대학과 협약을 맺어 사이버보안 전문장교를 육성하기 위해 학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다. 이 학과의 산파 역을 맡은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임종인(57) 원장을 5월 1일 만났다. 고려대가 이 학과를 유치한 것은 정보보호대학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3월 첫 신입생을 받은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은 해마다 130명 선의 정보보호 인력을 배출해 국내 이 분야 인력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다.
정보보호대학원의 학부 격인 사이버국방학과는 정부가 작심하고 만든 학과인 만큼 지원도 파격적이다. 우선 학생들은 4년간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50만원씩 나라에서 학업보조비 명목으로 용돈을 받는다. 본인이 원하면 기숙사 거주도 우선 배정한다. 학생 전원에게 아이패드나 갤럭시노트 10.1을 무상 제공한다.
조건은 단 한 가지다. 대학 졸업 후 사이버국방 분야에서 7년간 근무하는 것이다. 사병 근무가 아니라 100% 소위로 임관돼 장교로 근무한다. 임종인 원장은 “의무복무 기간 중에도 석·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어차피 대학 졸업하고 장교로 군대 가면 3년인데 거기에 4년 동안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우리 나이로 서른한 살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있으면서 박사학위까지 딸 수 있는 셈이다.
커리큘럼도 다채롭다. 크게 나눠 교양 10과목, 군사학 8과목, 전자학 22과목, 정보보호학 22과목이고 이수학점도 145학점이나 된다. 일반 학과가 130학점 정도이니 좀 많다. 과목이 많고 학습량이 많아서 그런지 기숙사 생활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생들은 매월 받는 50만원 중 기숙사비로 20만원을 내고 30만원은 용돈으로 쓰니 부모에게 손 벌릴 일이 별로 없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은 교수진, 인력배출 실적, 논문 등이 우수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임종인 원장은 “우리가 이 분야 세계 톱 5 안에 드는 명문이 된 것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진을 구성하면서 철저하게 그 분야의 일인자를 모셔온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고려대가 절반이 안 되고 서울대, 카이스트, 서강대 등 다양하다. 전원 실무 경험이 풍부한 것도 장점이다.
임 원장은 “사이버국방학과는 졸업 후 진로가 폭넓은 것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요즘 어떤 대학을 나와도 취업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우리 과 출신은 취업난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의무복무 기간 후 직업장교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IT기업, 삼성·LG·국민은행 등 대기업, 청와대·국가정보원·검찰·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등 정부 산하 연구소, 딜로이트·안랩 등 국내외 보안업체, 김앤장 등 로펌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건이 좋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런지 학생들의 입학 성적은 그야말로 최상위권이다. “한 학년 정원이 30명으로 수시 20명, 정시 10명입니다. 수시 입학생의 대부분은 카이스트 등 최상위권 대학의 동시 합격자였습니다. 출신 고교를 기준하면 1기 때는 영재고 학생이 4명이 왔고 2기 때는 9명이 입학했습니다. 영재고 출신은 전국에서 380명밖에 안 나오는 수재들입니다. 이공계 최상위권 대학의 하나인 모 대학에 영재고 출신이 총 8명밖에 안 간 것을 보면 우리 과 학생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죠. 서울과학영재고 출신으로 서울대 4년 장학생으로 붙은 학생도 우리 과에 왔습니다. 정시는 수능 1% 이내의 학생이라야 합격할 수 있습니다.”
공부는 ‘빡세게’ 시킨다. 다소 느슨한 일반 대학과 달리 1학년 입학하자마자 바로 실전형 교육에 돌입한다. 나랏돈을 들여 가르치는 특성화 학과이기 때문에 교수진도 학생들도 각오가 남다르다. 교양과목의 경우도 일반심리학이 아닌 사이버심리학으로 하는 식으로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500쪽 분량의 수학책 원서를 일반 수학과에서는 한 학기 동안 배울 것을 우리는 반 학기 만에 배웁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매일 새벽 2~3시에 잡니다. 힘들지만 우리 학생들은 표정이 밝습니다. 다들 자신을 위해 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나라를 위해 공부하고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죠.”
사이버국방학과 첫 졸업생이 배출되면 주목받는 인재가 될 것이다. 후각이 예민한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이미 대한민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버보안 콘퍼런스로 해마다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블랙햇(black hat)’이라는 행사가 있다. 삼성은 지난해 이 행사에 사이버국방학과 학생 4명의 참가비를 지원했고 올해는 6명을 지원한다. NHN, 안랩 등에서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임 원장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이버 전사를 길러내고 MIT 등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 명문 학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박영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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