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저수지를 둘러
날씨가 무척 포근한 일월 둘째 목요일이다. 늦은 밤부터 남녘엔 제법 많은 겨울비가 예보되었다. 일 주 전 따뜻한 소한을 넘겼고 일 주 후 다가올 대한과 함께 설을 앞두었다. 올겨울 몇 차례 엄습한 추위로 두꺼운 잠바에 방한모를 쓰고 산천을 누비기도 했다. 앞으로 입춘 전후까지 빙점 아래 떨어질 날도 있겠지만 겨울의 터널은 한복판을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 이른 즈음이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보온도시락을 준비해 현관을 나섰다. 배낭에는 오후 일과 중 냉이 캐기가 예상되어 호미를 챙겼다. 집 앞에서 동정동으로 나가 주남저수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타려니 같은 노선에 종점이 다른 42번 버스가 먼저 왔다. 42번은 남마산에서 출발해 주남 들녘을 지난 송정까지 가는 버스였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지난 동월에서 내렸다. 주남저수지는 지난해 가을 철새가 날아온 직후부터 탐방로가 폐쇄되어 탐조객 출입을 통제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철새 폐사체가 발견되어 겨우내 일반인들의 출입이 봉쇄되었다. 주남 들녘에는 중앙의 주남저수지가 날개처럼 거느린 북쪽 산남저수지와 남쪽 동판저수지 둘레길은 탐방이 가능해 동월에서 내렸다.
주남저수지와 좁은 수문을 사이로 동판저수지가 펼쳐진다. 동월마을에서 판신마을로 이어지는 저수지라 동판이라 불린다. 동판저수지는 주남저수지보다 담수 용량이 적고 수면은 좁을지라도 무성한 갯버들과 수초에는 주남저수지만큼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지내기 알맞았다. 동월마을 언덕에서 저수지를 굽어보니 엷은 안개가 낀 수면의 갯버들은 흑백 필름으로 찍은 풍경 사진 같았다.
동월마을에서 저수지 가장자리로 내려서니 갯버들 사이로 오리들이 오글거리고 더 먼 곳에는 덩치가 큰 고니들이 고시랑고시랑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오늘 아침은 왜 이다지도 포근해.’라며 날씨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소리인가도 싶었다. 남녘 곳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철새 군상들은 아직 북녘 본향으로 귀환하기는 시기가 좀 이른 듯했다.
갯버들이 둘러친 가장자리를 따라 판신마을로 나갔다. 판신마을의 배수문에서부터 일자형 긴 둑은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길로 알려진 곳이다. 오래전 무점마을 살던 독지가 한 분의 노력과 정성으로 가꾸던 꽃길이 나중 해를 거듭하자 마을 주민 전체가 나서서 꽃길을 조성해 행정 당국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해마다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길 명소였는데 근래 코로나로 시들해졌다.
둑길 아래 들녘에는 기러기들이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먹잇감은 추수 때 떨어진 벼 낱알이나 보리밭 새싹이지 싶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먼 비행의 나래짓을 위한 힘을 비축해야 할 듯하다. 저수지 둑 안에는 여러 마리 고니들과 오리들이 수초를 뒤지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쉼터에서 녀석들의 먹이활동을 바라보면서 나는 배낭의 도시락을 꺼내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둑길에는 주남저수지를 대체한 탐조객이 간간이 보였다. 무점마을에 이르러 농로를 따라 덕천동으로 향했다. 용잠삼거리 예전 경전선 철길엔 덕산역이 있었는데 이제는 선로가 폐선되어 흔적만 남았다. 육군 정비창 부근은 25호 우회국도가 14호 국도와 겹친데다 작년에 감계 신도시로 연결되는 구룡산 터널까지 접속되어 교통망이 혼잡했다. 덕천에서 중앙천 천변 둑길을 따라 걸었다.
볕 바른 곳에는 자주색 광대나물꽃과 엷은 하늘색의 봄까치꽃이 꽃잎을 펼쳤다. 중앙천 천변에는 자연학교 학생에게 오후 과제가 기다렸다. 추위를 견뎌 온 냉이가 방석처럼 지표면에 납죽 붙어 자랐다. 배낭에 넣어간 호미를 꺼내 땅속 깊이 뻗어 내린 냉이를 뿌리까지 오롯이 캐 모래흙을 털었다. 채집한 냉이는 우리 집 식탁의 일용할 찬거리로 삼고 남을 듯해 꽃대감과도 나누었다. 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