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446장 ( 구 500장 ) / 히브리서 11 : 32 - 40
● 다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44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32절 – 40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는 모두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천차만별입니다.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믿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하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눅 18:8) 문제는 예수님이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해도 1200만 성도라는데, 전 세계에서 약 20억 명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데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무슨 걱정을 하신 것인가요? 왜 걱정하실까요? 문제는 예수님이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기준 - 예수님이 인정하는 믿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장이라는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 그러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모세의 믿음을 설명하면서,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의 기준이고, 우리가 이 믿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는 분처럼 바라보며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증인들이 한 둘이 아니고 정말 많다고 말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 그리고 오늘 본문 32절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아멘! 우리 눈에 보기에는 찾아보기 정말 힘든데, 실제로는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는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는 것일까요? “너도 믿음으로 사는 그 사람이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 시간 상상의 눈을 떠서 주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함께 예배드리고, 예배 후 함께 예배당을 빠져 나가는 다른 성도님들을 볼 때에, 앞에 노아가 가고, 아브라함이 가고, 모세가 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옆에는 이삭이 가고, 야곱이 가고, 요셉에 가고, 뒤에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주간 살아갈 때, 이 느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옆에 안 보입니까? 그러면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증인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대열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아멘! - 시편 84편 5절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아멘! 마음에 천국 가는 시온의 대로가 있으니, 시온성을 향해 가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천국으로 가는 대로가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천국 가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의 증인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정신병자, 미치광이, 광신자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식양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야 합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난히 다른 사람의 말이나 평가에 예민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어떤 사람이 뭐라고 말만 하면, 신경을 쓰고, 상처받아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주변의 말에 너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그분의 부인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 사람의 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신경을 덜 쓰십니까?” 그분이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농담거리로 여깁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말 표현에 강조하느라 사용하는 ‘너무’ 라는 표현은 엄밀하게 말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답니다. ‘너무 좋다.’ 는 말은 정확한 의미로는 ‘안 좋다.’ 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너무 바쁘다.” - 살다 보면 바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면 너무 바쁜 것입니까? 주님 바라보는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기도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이, 요즘 너무 바쁜 것입니까? 그런데 그건 바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라, 시간에 지배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에게 지배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바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먼저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생활, 찬송생활을 하면 내가 시간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다.” 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이면 너무 어려운 것입니까? 십일조 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다면 너무 어려운 것입니까? 그런데 그건 돈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마귀가 돈을 가지고 나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재정적인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합니다. 재정적으로 많이 어렵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먼저 십일조하고, 감사하고, 나누어주면, 내가 돈을 지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난다.” 고 말합니다. 화가 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너무 화가 나는 경우는 죄가 됩니다. 하루가 지나도 분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도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가 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용서를 선포하고 오히려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 내가 화를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이 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죽지 않으려는 우리 자아가 문제이지, 복음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제는 정말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산다는 것은 한 번 결단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강한 체험을 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합니다. 믿음도 사용하지 않으니 믿음으로 사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다루려면 익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날이 선 검일수록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는데도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시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는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연단이구나!’ 생각하시는 분, 믿음이 달라지셨습니까? 고생만 하셨습니까? 연단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이 눈에 보이듯 바라보아지는 믿음을 가졌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연단만 받다가 죽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실험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이 남은 세월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길입니다. 자신도, 가족도, 이웃도 다 살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믿음의 증인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 첫 사람 - 믿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믿음의 증인 대열에 서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기준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는 분처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믿음으로 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